화생방 닮은 '진짜사나이',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여러 차례 해도 도무지 적응 안 되는 것이 화생방 훈련이라는 걸 잘 알 것이다. 물론 유격훈련이든 혹한기훈련이든 야전으로 나가기만 하면 늘 새롭게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이 눈물, 콧물 쏙 빼고 그 안에서 꼭 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을 부를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라는 가사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던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래서일까. MBC <진짜사나이>여군특집으로 한껏 상승했다 빠져버린 기대감을 신병특집으로 이어가면서 부랴부랴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끼워 넣었다. 역시 늘 봐도 어쩔 수 없는 그 짠함은 이번 신병특집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파이터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때때로 여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김동현은 화생방 교장 안에 가득한 CS가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분리한 정화통이 끼워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김동현을 돕겠다고 나선 임형준은 그러나 제대로 끼우지도 못해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아내 홍은희가 여군특집때 화생방 교장 안에서 의연하게 버티던 모습에 자극받은 유준상은 꿈틀대면 지는 거다라며 고통을 참아냈고, 그 와중에도 주변 훈련병들을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호기심에 들떴던 육성재는 훈련을 받고 나서는 할 것이 못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천식이 있어 자신은 정화통을 분리하고 다시 채우는 훈련에서 열외된 문희준은 동료들이 힘겨워하는데 자신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 말 때문에 울컥한 유준상이 눈시울을 붉히자, 그걸 본 임형준은 말문이 막혀 버렸고, 결국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동료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여군특집에서 굳건하게 버텨내던 홍은희와 김소연에게서 느껴졌던 그 뭉클함이 신병특집의 군대 복학생(?)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김동현도, 그들이 훈련받고 있는 이기자 부대를 나온 유준상도 신병이라는 딱지를 받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어리버리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임형준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적지 않은 나이들은 그 어리버리함마저 짠함으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과연 이 뭉클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군대를 다시 가 체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것은 짠한 감정을 동반한다. ‘힘겨워도 포기하지 않고 애쓴다는 그 힘겨운 몸들의 언어들은 모든 몸 가진 자들의 똑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억지로 짜낸 땀과 눈물, 콧물은 아닐까.

 

바로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진짜사나이>가 주는 그 짠함과 뭉클함은 하나의 최루성의 신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안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연예인들은 그 노력하는 모습의 진정성이 분명 있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온 몸을 던져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 부재한 한 가지는 이런 눈물 콧물을 빼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진정성이다. 화생방 훈련이 한 번 보여질 때만 해도 마치 꼭 느껴봐야 할 군대 체험의 백미처럼 느껴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복해서 계속 보여질 때 슬쩍 보이는 것은 역시 화생방의 고통을 드러내줘야 시청자들이 주목한다는 제작진의 학습효과다.

 

그래서 화생방 교장 안에서 눈물 콧물을 흘려대며 동료들을 챙기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뭉클한 마음을 갖게 되다가도, 그 뭉클함이 혹시 저 교장 안에 퍼져 있는 CS가스 같은 자극을 통한 최루성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어쩌면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군대라는 화생방 교장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의 안전한 방독면을 벗고 CS가스 같은 훈련들 속에서 땀과 눈물을 쏟아낸다.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그곳이 <진짜사나이>가 서 있는 곳이다. 그렇게 보면 왜 이 프로그램이 그토록 호평과 논란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는가 하는 게 새삼 이해될 것이다.

 

<별그대>를 깨운 전지현의 개그본능

 

<별에서 온 그대>가 이제 종영을 앞두고 있다. 최근 들어 이토록 뜨거웠던 드라마도 드물다. 그 힘은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도 들썩이게 했다. 심지어 전지현을 통해 치맥 문화가 전파될 정도라니 말 다했다. 벌써부터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희비극의 공존 때문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별에서 온 그대>400년을 넘는 외계인과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체접촉을 하는 것조차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관계는 그 자체에 근본적으로 비극을 깔고 있다. 천송이(전지현)와 도민준(김수현)이 서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치 헤어짐을 앞둔 연인처럼 비극의 강도도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는 이 비극적 상황을 비극으로 그려내기보다는 유쾌한 희극으로 채워 넣으려 노력했다. 천송이를 살해하려는 이재경(신성록)의 위협 속에서도 그녀와 도민준의 관계는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발했다. 확실히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는 <개그콘서트>를 염두에 둔 콩트 코미디를 드라마에 가미해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전지현의 개그본능은 이 드라마의 천송이 캐릭터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냈다. “하지마- 그러지마-”하며 <개그콘서트>의 오나미를 패러디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마치 <개그콘서트>의 옛 코너 패션 No.5’의 장도연을 보는 듯한 포즈로 빵 터지는 웃음을 제공하기도 했다. 톱배우라는 근자감으로 허세 가득한 그녀가 속내를 들키며 만들어내는 웃음 속에서 여신은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천송이의 소속사가 마치 뿜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것이나, 도민준의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석(오상진)검사와 박형사(김희원)에서 <개그콘서트>의 옛 코너 나쁜 사람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콩트 코미디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 작가로 시작했던 박지은 작가의 구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축조된 웃음들은 그저 웃기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도민준과 천송이에게 하나의 장벽처럼 놓여져 있는 시간(한정된 시간 혹은 시간의 양)에 대한 박지은 작가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도민준이 다가오는 이별 앞에서 천송이에게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은 야속하게 모든 걸 해체시켜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의 행복마저 지워낼 수는 없다는 것.

 

결국 비극을 전제하고도 그 안에 웃음을 가득 채운 <별에서 온 그대>는 그 자체로 우리네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다. 끝없이 개그본능을 드러내며 웃음을 주었던 천송이는 사실상 인생의 행복을 표징하는 인물이었고, 400년을 살아오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웃음마저 잃어버렸지만 그녀를 통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가는 도민준이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에필로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도민준은 이제 천송이가 프로포즈 선물로 남긴 동영상을 보며 울면서 웃는다.

 

우리네 삶이 바로 그런 희비극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헤어질 것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을 때 한껏 웃어주는 것. <별에서 온 그대>가 보여준 99%의 웃음과 1%의 눈물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원 없이 웃고 행복해졌던 것은 운명의 비극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애써 웃으려 노력한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법>, 어쩌다 잔인한 프로그램이 되었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것을 동물학대라 부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글의 법칙> 사바나편에서는 갑작스럽게 동물학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사냥을 하기가 쉽지 않은 오지에서 김병만이 무려 6시간에 걸쳐 만든 석궁으로 작은 새를 잡는 장면과, 촬영 끝날 때까지 올무에 잡히지 않은 딕딕(사슴처럼 생긴 동물)이 카메라를 끈 뒤에 잡히자 그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를 나누는 장면이 모자이크도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방영된 것에 대해서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원주민들도 살기 위해 사냥해 먹는 동물이고, <정글의 법칙>은 어떤 면에서는 그 곳의 생존법칙을 배우는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는 건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끊임없이 동물들을 사냥하고 잡아먹는 장면들을 반복하다 보니 거기에 둔감해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칫 잔인해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을 그대로 내보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즉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것과 그래서 힘들게 석궁까지 동원해 새를 잡은 것까지는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석궁으로 잡아 껍질을 벗긴 새를 나무 위에 얹어놓고 원래대로 나무에 앉아있네하며 낄낄대는 장면을 굳이 자막까지 붙여 내보내는 건 그 뉘앙스가 다르다.

 

물론 현장에서 출연자들이 동물을 학대하는 마음을 갖고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달리 바라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더라도 동물과 자연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과거 <정글의 법칙>에서 강조한 것은 생존만큼 중요했던 게 공존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사냥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생존하게 해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였다. 이런 철학이 프로그램에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글에서의 사냥이나 어로, 채취가 허용되었다. 특히 먹거리가 풍부해 심지어 먹방의 느낌마저 풍겼던 뉴질랜드편에서조차도 이러한 먹거리들은 자연의 선물로 표현되기도 했다. 얼마나 다른 태도인가.

 

사실 동물학대라는 조금은 과한 비판마저 나오게 된 데는 이번 사바나편이 예능적인 재미를 별로 주지 못하고 거의 사냥과 먹방에 거의 집착했던 것에서 비롯된 바도 크다. 또 세렝게티에서 누떼를 보기 위해 기구를 타고 올라가 감탄하는 장면은 아마도 현장에 있는 출연진들이나 스텝들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을지 몰라도 <정글의 법칙>을 즐겨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너무 식상한 장면처럼 여겨졌을 게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동물 다큐들을 통해 더 생생한 동물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접했다. <정글의 법칙>에 시청자가 원하는 건 그런 그림이 아니라 진짜 그 세계 속에 뛰어들어 경험하는 교감이다. 이번 사바나 편과 과거 마다가스카르편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라. 물론 동물의 종류가 다를 것이지만 마다가스카르편에서 출연진들은 동물과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들을 계속 해서 보여주지 않았던가.

 

만일 사바나라는 환경이 마다가스카르와는 달리 생존경쟁의 공간이라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사냥하고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것이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사바나편에서는 출연자들의 내면이나 심리변화 혹은 육체적 상태가 그다지 프로그램에 보여지지 않았다. 즉 그저 겉모습만 계속 보여주면서 그들의 생존상황은 좀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의 과도한 사냥 장면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사냥 그 자체에 대한 집착처럼 보였다는 얘기다.

 

인물들의 내면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걸 단적으로 말해주는 건 이번 편에서 유독 출연진들의 캐릭터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새롭게 합류한 이들을 포함한 출연진들은 만만찮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프로그램을 통해 잘 전달되지 않아 심지어 오인까지 받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글의 법칙>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왜 그 힘겨운 공간에 들어가는가에 대한 명쾌한 이유를 프로그램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생존과 공존 같은 의미는 이 프로그램의 존재 근거를 그저 재미에만 머물게 하는 위험성을 피하게 해준다. 만일 그저 재미만을 위해 정글에 뛰어든 것 같은 느낌을 프로그램이 자아내기 시작하면(그렇게 한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생존 행위는 그 자체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사바나편에서 상대적으로 보여지지 않은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눈물은 그런 점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누떼의 대이동은 그저 장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가 공존을 생각해야 하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물론 조작 논란 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글의 법칙>은 꽤 괜찮은 기획이다. 하지만 이 기획이 괜찮으려면 거기에 합당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자연과 환경을 대하는 철학.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글의 법칙>은 자칫 사냥의 법칙같은 잔인한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초심, 초심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야말로 초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웃다가 짠해지는 김병욱표 희비극의 묘미

 

<감자별>에서 홍혜성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좀체 웃지 않는다. 늘 진지한 표정에 때로는 곧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시고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어쩌다 보니 노씨네 집안의 잃어버린 막내아들 행세를 하고 있다. 빈 집을 전전하며 떠돌던 그에게 생긴 인생 대역전이지만 착한 심성의 그는 늘 불편한 마음이다. 노씨 가족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줄수록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감자별(사진출처:tvN)'

바로 이 홍혜성이라는 인물의 입장과 그래서 연기로 보여지는 여진구의 무표정은 <감자별>이라는 시트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병욱 감독표 시트콤이 지금껏 줄기차게 보여줬던 희비극이 이 인물의 상황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상황이 있고, 모두가 심각해질 때 비로소 웃음이 터지는 상황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나타난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해주는 생일이라며 온 가족이 준비한 특별한 생일파티에서 홍혜성은 좀체 웃지 못한다. 가족들은 모두 박수치고 좋아하지만 그는 그것이 과연 자신이 누려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 노송(이순재)이 준비한 슬픈 곡(?)잃어버린 30이 흘러나온다. 21년만의 생일파티라는 상황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다소 과장된 상황이 부딪치면서 희극과 비극이 동시에 연출된다. 그들은 웃으면서도 어딘지 슬픈 정조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버지의 묘소에서 잃어버린 아들 홍혜성을 찾았다며 그를 안고 과거를 회상하다 눈물까지 흘리던 왕유정(금보라). 이 다소 진지한 상황에서 민망하게 터져 나온 방귀소리는 마치 우리네 삶의 무게를 비웃는 듯하다. 뭐 그리 심각할 필요 있느냐는 것. 하지만 이 민망한 상황 때문에 그녀가 껄끄러워하는 걸 알게 된 홍혜성이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연달아 방귀를 뀌는 모습을 연출하고 그 진심을 알게 된 그녀가 감동하는 장면은 웃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집도 없어 노씨네 가족 주차장에서 살아가는 나진아(하연수)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알바 인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밝은 얼굴이다. 섹시댄스 경연대회 상금을 타기 위해 안되는 섹시댄스를 연습하는 나진아의 이야기는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또 꽃등심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에게 노수동(노주현)이 준 카드로 고기를 사주면서도 더 시킬 때마다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는 홍혜성의 모습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고기 한 점에 이토록 쩔쩔 매는 청춘이라니.

 

결혼기념일에 이벤트를 준비하는 김도상(김정민)이 눈치 빠른 아내를 속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하자, 응급실로 달려온 노보영(최송현)은 그것이 결국 이벤트였다는 걸 알고 나서도 결코 웃지 못한다. 응급실까지 달려오며 그녀가 느꼈을 끔찍함은 이벤트를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결국 화가 난 노보영에게 쫓기던 김도상은 계단에서 굴러 진짜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비극이었다가 희극이 되더니 이내 다시 비극으로 끝나는 이러한 희비극의 반복은 바로 김병욱 감독 시트콤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다.

 

이번 <감자별>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장율(장기하)과 노수영(서예지) 커플의 에피소드에서도 이런 희비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고개를 젓지만 장율이 작곡한 CM송이 좋다며 이곳저곳 기획사를 전전하던 노수영이 카스테레오에서 그 음악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꺼버리는 장면이 그렇다. 장율의 예술가적인 삶과 잉여로서의 삶은 그렇게 순식간에 희극과 비극을 반복한다. 모두가 거품키스니 사탕키스니 하는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말하며 쓰레기 국물 키스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물론 김병욱 감독의 희비극은 이미 <지붕 뚫고 하이킥>의 다소 충격적인 엔딩 논란에서부터 그 전조를 보인 바 있다. 시트콤을 정극의 하위 장르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아마도 김병욱 감독은 깨고 싶었을 것이다. 즉 그가 보여주는 희비극적 상황은 희극과 비극이 늘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희극이라고 해서 정극과 비교해 낮은 가치로 폄하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아마도 <감자별>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희비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상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리라. 마치 보름달이 뜨면 그 기운 때문에 사람들이 로맨틱해지거나 멜랑콜리해진다고 하는 것처럼, 감자별이 뜬 상황 속에서 이 시트콤 속 인물들은 웃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웃게 되는 기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웃음과 눈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트콤 <감자별>의 희비극은 이토록 정극이 절대 주지 못하는 지점에 닿아있다. 무표정한 여진구의 얼굴에서 우리는 이 희비극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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