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개콘 같은 통쾌함, ‘올미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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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같은 통쾌함, ‘올미다’

D.H.Jung 2006. 12. 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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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 없이 영화관을 찾았던 분들이라면 이 ‘개그콘서트 같은 영화’에 푹 빠져서 배꼽 빠지게 웃다가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TV시트콤으로 봤던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즐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거대 블록버스터의 숫자놀음에 질렸던 관객이라면 이 조촐한 잔치에서 풍성한 대접을 받은 기분을 느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 옆구리나 주머니가 허전한 사람이라면 단돈 몇 천 원으로 큰 위안을 받을 지도 모른다. 소박하지만 풍성함을 주는 영화, ‘올드미스다이어리(이하 올미다)’다.

솔로종합선물세트가족이 주는 개콘식 웃음
영화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최미자(예지원 분)의 꿈으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뭔들 못할까마는 그녀는 꿈속에서조차 비행기가 추락하고 벼락을 맞는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이것보다 더 암울하다. 바로 ‘노처녀에 백수’. ‘너무 자서 허리가 아픈’ 그녀를 지켜보는 눈들이 있으니 함께 사는 가족들. 그런데 이 가족들 역시 범상치 않다.

노년에 홀로 남은 할머니 세 자매에, 역시 홀로된 아버지, 게다가 노총각 외삼촌까지 줄줄이 짝 없는 화투패 신세다. 이 ‘솔로종합선물세트가족’은 마치 저 개콘 가족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같이 부족해 보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 굳이 김석윤 감독이 개그콘서트의 연출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최미자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엮어가기보다는 이들 각자의 개콘식 에피소드로 엮어진다.

개그콘서트에서 가끔 한 코너의 아이콘이 다른 코너에 이입되면서 웃음을 만드는 것처럼, ‘올미다’도 세 할머니 자매(영옥, 승현, 혜옥)의 이야기와 소심남인 노총각 외삼촌(우현)의 은행 에피소드, 그리고 최미자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그려지지만 그 이야기는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관계가 중요한데 세 할머니 자매의 상황과 최미자의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은 나이로 구획되어지는 연애담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사랑이라는 보다 큰 주제로 영화를 확장시킨다. 또한 우현과 최미자의 상황 역시 사회적 약자로서 유사한 상황을 그려내면서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포함시킨다. 결과적으로 노처녀 원맨쇼에 머물 수 있었던 소재를, 개콘식 솔로 가족들로 줄줄이 사탕 엮어내자, 영화는 단순한 ‘노처녀 연애 성공기’를 넘어서 진한 페이소스를 갖는 블랙코미디로 나아간다.

정작 웃기는 사람은 슬프다
영화 내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그러나 점점 진행될수록 그 웃기는 자의 심정 속으로 빠져들면서 알 수 없는 애잔함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무대 위에 올랐을 때 그저 당연히 웃음을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던 개콘 식구들이 가끔 저 무대 뒤의 진솔한 모습을 보였을 때 느껴지는 슬픔 같은 것이다.

그 슬픔의 근원은 바로 저 ‘블랙코미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확장시킨 이야기 속에는 이 시대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숨겨져 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가만두지 않느냐”는 원망과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최미자의 절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영화 내내 우리를 웃겼던 그 장면들이 사실은 꽤나 비극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분들을 위한 한 편의 백일몽이다. 시작부터 꿈을 꾸는 최미자는, 무언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마력이 있다. 따라서 영화가 환타지라도 그것은 꿈이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용서받는다. 정작 현실에서 그들은 저 무대 위의 개콘 가족처럼 슬픔이 있어도 겉으로는 웃지 않았던가. 이 영화를 보고 진정으로 실컷 웃다가 눈물이 나왔다면, 영화가 말하듯 당신은 진정한 행복을 꿈꿀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이 영화에서 최미자 역을 해낸 예지원은 연기자로서 망가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마치 저 개콘의 마빡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