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 한해도 그 화두는 역시 ‘몸’이었다. ‘얼짱’에서부터 ‘몸짱’으로 넘어온 신드롬은 올초에는 ‘동안’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을 성형과 몸 만들기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는 ‘생얼’이라는 극단적 하드코어 뷰티(나 벗어도 이렇게 아름다워요!)까지 유행하면서 이제 외모지상주의는 극단적인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데 일거양득이지, 뭐가 문제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나쁜 건, 보기 좋고 건강 좋은 몸에 자꾸 가격이 매겨지는 느낌 때문이다. 이른바 말 그대로의 ‘몸값’, ‘꼴값’하는 세상에 사는 기분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그 상품화가 가장 첨예하게 벌어지는 연예계를 소재로 이 사회에 만연한 ‘몸 신드롬’을 유쾌하게 뒤집어놓는다.
얼굴 없는, 혹은 얼굴만 있는
공포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얼굴 없는 가수, 한나(김아중 분)가 얼굴만 있는 가수, 아미의 입을 대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69cm의 키에 95kg의 몸무게를 가진 한나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 거대한 몸을 숨기며 살아가는 존재. 반면 노래를 못하나 완벽한 S라인의 몸매와 외모를 가진 아미는 ‘몸만’ 드러내놓고 사는 존재다. 이 둘의 물리적인 조합은 저 공포영화에서나 가능할 이야기지만, 연예비즈니스에서 이 두 존재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틀 속에서 자연스럽게 엮어진다. 그들이 둘다 상품으로서 기능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순간 상품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이 사모하던 상준의 말에 상처를 받고 한나가 사라지는 순간, 아미라는 상품도 사라지는 것이다.
인생 180도로 바꾸어 주는 환상의 몸
재미있는 건 몸을 상품화하는 사회가 한나에게 고통을 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그녀에게 거는 변신의 기대다. 관객들은 그녀의 변신 역시 몸을 상품화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변신했을 때의 달라진 반응을 기대한다. 보상심리다. 너희들의 몸에 대한 매혹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걸 보고 싶은 것이다. 한나라는 무거운 몸이 제니가 되었을 때, 그녀의 과장된 몸짓에 거리의 이목이 집중되고, 자장면 범벅이 되어도 아름다운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보상심리를 갖게된다. 심지어 교통사고를 내고도 피해당사자나 경찰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는 이 사회에 고소함을 느끼고, 자신을 거대한 몸이 아닌 아름다운 몸으로 바라보는 상준(주진모 분)의 눈길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인생을 한 순간에 180도 바꾸어주는 이 환상적인 몸의 변신에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하지만 살 떨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
그러나 부작용은 있다. 그것은 거구의 한나가 얼굴 없는 시절, 얼굴만 있는 아미에게 목소리를 주면서 자신의 몸을 숨겼던 것처럼, S라인 쭉쭉빵빵으로 변신한 한나 역시, 제니라는 가상의 인물 뒤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 여기에 연예 비즈니스가 맞물리고 상품의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제니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얼굴만 있는 아미와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것. 영화는 이렇게 완벽몸매로 변신한 한나의 잘라낸 살 찾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살들을 맞대며 추억을 만들어온 친구와 부모를 되찾는다. 저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분리되었던 몸과 이름은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정말 현실에서도 그럴까하는 의심이 들지만, 어쩌랴 이건 로맨틱 코미디이니,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갈 관객들에게 순간적이나마 행복감을 주는데 만족할밖에.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가히 ‘살 연기’라고 해도 괜찮을, 육중한 살의 무거움과 군더더기 없는 살의 가벼움을 잘 표현해낸 김아중의 호연과 ‘무사’이후 오랜만에 보여준 주진모의 존재감 있는 연기,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맛을 살려준 성동일, 임현식, 박휘순, 이범수, 김용건, 이원종 등의 출연으로 유쾌함을 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 인물은 지긋지긋하게 우리의 귓전에 눌러앉았던 저 ‘몸 신드롬’이란 거구가 아니었을까. 이 거구야말로 수술대 위에 올려 슬림하게 S라인으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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