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영화로 풀어보는 2006년 문화계① 영화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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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풀어보는 2006년 문화계① 영화계

D.H.Jung 2006. 12. 3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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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흡혈형사 나도열’ 그리고 ‘괴물’

올초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스크린쿼터 축소. 그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미국산 수퍼 히어로들이 극장가를 공격했다. 그 장본인은 ‘미션 임파서블3’, ‘다빈치 코드’, ‘엑스맨3’, ‘수퍼맨 리턴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네 왜소한 히어로, ‘흡혈형사 나도열’이 끼어 있었다. 이 상징적인 장면은 저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에서 수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시다바리’ 역이라도 하며 히어로를 꿈꾸는 우리네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 그것은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에 즈음하여 저 덩치 큰 헐리우드 영화 틈바구니에서 가냘프게 서 있는 우리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열 받아야 변신하는 나도열처럼
‘흡혈형사 나도열’은 열 받아야 비로소 변신한다. 우스꽝스럽지만 심지어 PMP에 저장된 포르노를 봐야만 하는 히어로란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결과물이야 좀 떨어지더라도 나도열의 본래 원대한 전략은 스스로 무너져 헐리우드를 대변하는 수퍼히어로라는 허상을 깨는 데 있었다. 홀홀 단신으로 사실 저 세계와 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쿼터 일수가 축소되고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일제히 융단폭격을 준비하던 시기, 나도열이 그 영화판에 알몸으로 서 있었듯이, 거리에는 영화인들의 1인 시위가 잇따랐다.

하지만 1인 시위는 ‘흡혈형사 나도열’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으로 비판에 나섰지만 정작 관객은 별로 없었다. ‘열 받아야 그제서야 힘을 쓰는’ 나도열처럼, 우리네 정서는 아직 열을 받지 않았다. 올 초부터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의 제 밥 그릇 찾기라는 오명이 씌워지면서 그나마 스크린 쿼터 축소발표로 받은 열은 쉬 식어버렸다. 그 서서히 사라지는 열기 속에서 미8군에 의해 무단 방류된 포름알데히드를 먹고 ‘괴물’은 조금씩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었다.

영화계 재난에 대응하는 자세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알레고리를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수많은 해석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재난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괴물에 대입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면 영화는 그렇게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 그럼 괴물에 우리네 영화계의 재난으로서 스크린 쿼터라는 키워드를 대입해보자. 갑자기 백주 대낮에 나타난 이 스크린 쿼터라는 괴물에 대해 정부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그걸 보고 그 위험을 실감한 사람들은 격리된다. 여기에 우리네 강두 가족이 괴물과 맞선다. 다행스럽게도(?) 괴물을 죽이지만 우리도 현서를 잃는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올 한해 우리네 영화가 가졌던 위기감과 그걸 헤치고 나올 수 있는 방법론을 모두 제시한다. 괴물 같은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하지만 분명히 있는) 우리네 영화의 위기감을 향해 저 나도열처럼 1인 시위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 대신 우리 식의 전략을 가지고 우리 식의 블록버스터(?)를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결국 저 수퍼히어로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올 한 해 우리 영화의 성적표는 위기감이 무색할 정도로 좋다. 하지만 11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우리 영화의 해외수출량이 떨어진 건 상반기에서부터 드러난 징후지만, 지금은 우리 영화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괴물은 죽었는데 뭐가 걱정이냐 하겠지만, 저 영화 속 강두가 야밤에 어둠을 향해 긴장하듯, 여전히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