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영화로 풀어보는 2006년 문화계③가요계 본문

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영화로 풀어보는 2006년 문화계③가요계

D.H.Jung 2006. 12. 31. 11:36
728x90

얼굴 없는 가수들, ‘미녀는 괴로워’, ‘라디오 스타’

가요계는 올해도 역시 장기불황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연초부터 립싱크니 표절이니, 퍼포먼스니 하는 단어들이 부쩍 많이 들렸고, 급기야 우리네 음악계의 거장이라는 전영혁, 신중현씨의 쓴소리가 떨어졌다. 전영혁씨는 “가수는 노래하고, 댄서는 춤추고, DJ는 음반을 틀면 된다”고 했고, 신중현씨는 “무대에 노래하러 나온 거냐 뛰어다니러 나온거냐”고 했다. ‘라디오 스타’의 최곤 같은 노래하는 가수들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중심에는 노래가 아닌, 외모, 춤, 재담으로 기획된 ‘비디오 스타’들이 날치는 데 대한 쓴 소리다.

얼굴 없는 가수들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우리네 외모지상주의의 한 단면을 건드린 영화. 그런데 그 언저리에서 함께 걸려드는 논란거리가 있으니 바로 얼굴만 있는 가수들이 판치는 가요계의 문제들이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보여주는 음반계 립싱크와 대리가수는 종종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과거 사이버가수들의 립싱크는 때론 실제 가수들에게도 코러스라는 형태로 행해지곤 했다. 이로써 ‘노래하는 가수’보다 ‘춤을 추거나 개그를 하는’ 가수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일단 시제품이 나와 히트를 치면, 대량생산되는 것이 시장의 논리. 가창력이나, 좋은 노래를 가진 가수들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던 가요계에 기획사들의 바람이 일었다. 기획사들은 모든 것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상품을 고르듯, 가수를 골라내고(어떨 때는 조합을 하기도 한다), 노래를 붙이고, 댄스를 붙여서 음반을 찍어냈다. 가수의 노래도 중요했지만 거기에 곁들여진 댄스와 무엇보다도 잘 생긴 외모가 더 중요했다. 그러자 기획사들은 얼굴과 춤을 먼저 보았다. 노래는 점점 그 다음 문제가 되었다. 노래는 몇 달간의 합숙과 연습, 그것도 안되면 녹음 과정에서 코러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됐다.

얼굴만 있는 가수들의 딜레마
얼굴만 있는 가수들 뒤에는 당연히 얼굴 없는 가수들이 있게 마련. 그들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가 그랬던 것 같은 심적인 괴로움을 겪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만 있는 가수들이 가수로서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경우, 선택해야 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가수들은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음반작업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상품이었던 가수들은 음반이 팔리진 않는다는 건 자신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가 잠적한 사이, 얼굴만 있는 가수, 아미가 음반작업 대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은 우리네 가요계를 보는 것만 같다. 가수들이 무대가 아닌 각종 예능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음반시장이 불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토요일, 일요일 저녁만 되면 수많은 이름 모를 가수들이 시청자들을 웃기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장기자랑 하듯이 노래와 춤을 홍보한다. 가끔씩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탤런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지경이니 노래는 더더욱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수로서 얻은 이미지를 그나마 살리기 위해 가수 이외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아니면 그렇게라도 홍보를 해야한다는 것. 이것이 얼굴만 있는 가수들이 처한 딜레마다.

위기의 기요계, 라디오 스타들은 어디 있나
간단한 이야기지만 가수들은 노래를 할 때 가수다. 가수들이 노래를 하지 않고 연기를 하고, 개그를 할 때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이 간단한 이야기가 간단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MBC 생방송 100분 토론에서 제기된 ‘위기의 가요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 음원이 그 문제의 바탕을 제공했고, 여기에 가수들의 엔터테이너화는 노래의 쇠퇴, 음악영역의 획일화 등으로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총체적인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대중음악의 질적 하락, 그로 인한 시장 침체가 반복되었다.

가수 탓, 디지털 음원을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 유통사 탓, 상업적으로만 무장한 제작자 탓하며 ‘누구 탓’으로 돌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저 ‘라디오 스타’의 최곤이 TV에서 밀려나고, 중심에서 밀려나, 저 변방의 라디오 진행자로 생활해야 하는 환경이다. 아무리 음반계가 불황이라고 해도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순위 프로그램은 공정성과 권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라 가수 홍보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래보다는 볼거리에 더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가수들은 오히려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가 아닌 입담으로 승부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라이브 형식의 가요 프로그램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순위 프로그램과 달리 이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노래하는 가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성공작으로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KBS2 TV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될 것이다. 가수들의 열창과 거기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이러한 라이브 프로그램들은 실제로 음악을 음악으로 온전히 돌려주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가요계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순위 프로그램이 아닌 순수 라이브형 가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시간대. 대부분의 이들 라이브 무대는 새벽에 열린다. 이 시간대를 저녁시간대 정도로 당길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시간대라도 변방에서 노래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라디오 스타들’이 대거 귀환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