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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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드라마 성패를 좌우하는 연기자들

D.H.Jung 2007. 1. 1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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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를 보면 연기자가 보인다

최근 홀연히 나타나 주말 드라마의 판도를 바꿔놓은 연기자가 있다. 바로 사극의 제왕, 유동근. 그는 갖은 비판과 혹 허우적대던 ‘연개소문’을 단박에 기대감으로 채웠다. 그의 출연과 함께 ‘연개소문’이란 사극은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의 ‘연개소문’이 걸어온 길은 그저 사족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도 어려웠던 시청률 25%를 손쉽게 넘기면서 수위를 지켜오던 경쟁사극 ‘대조영’을 제쳐버렸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단지 유동근이라는 대배우만의 힘이었을까. 여기에는 물고 물리면서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연기자들의 부침이 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지킨 ‘대조영’의 연기자들
주말드라마 삼파전에서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갖고 있는 것이 ‘대조영’이다. 9시부터 시작하는 ‘연개소문’과 10시부터 시작하는 MBC 주말극 사이인 9시30분대에 끼어있어, 양 드라마의 공격을 받는 형국이 되기 때문. 만일 ‘연개소문’의 청년시절이 좀더 존재감 있게 흘러왔다면 ‘대조영’은 맥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시절의 ‘연개소문’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나마 그 드라마의 힘을 이어준 것은 김갑수라는 괴물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로 수양제역을 소화함으로써 연개소문의 공백을 채워 넣었다.

‘연개소문’과 함께 한창 ‘환상의 커플’이 상종가를 치며 앞뒤로 압박해왔을 때 ‘대조영’을 지켜낸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조영’의 연개소문 역을 한 김진태였다. 호랑이 같은 눈빛을 부라리며 안면근육을 떨며 호통을 치는 모습에 빨려들지 않을 시청자가 없었다. 때론 자상한 아버지처럼, 때론 광기 어린 제왕처럼 변신의 변신을 보여주는 김진태 앞에 양만춘 역할의 임동진이 가세하자 그 힘은 하늘을 찔렀다. 심지어 연개소문이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 두 카리스마의 충돌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연기대결이 펼쳐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제목이 ‘연개소문’이나 ‘양만춘’이 아닌 ‘대조영’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 대조영이 차츰 앞으로 나오고 그들은 역사 속에 사라져야할 인물들이었다.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김진태가 사라진 자리를 양만춘 역의 임동진이 채워 넣었으나 그마저 사부구(정호근 분)가 제거해버리자 ‘대조영’의 드라마적인 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빈 자리를 온전히 대조영 역할의 최수종이 채워놓기도 전에 유동근이 출연한 것이다.

진짜 ‘연개소문’을 만드는 연기자들
결과적으로 ‘대조영’에서 만들어놓은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은 새로운 ‘연개소문’을 도와준 격이 되었다. ‘연개소문’이 새롭게 주말드라마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동근 이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선 굵은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책사 역할로 돌아온 우리의 영원한 시라소니 조상구, ‘야인시대’의 나미코 역할은 물론이고 ‘대장금’에서 장금과 열띤 경쟁을 벌였던 이세은,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할을 했던 서인석 등이 가세하자 유동근의 절대 카리스마와 조화를 이루면서 기대감을 만들었던 것. 여기에 ‘대조영’에서 익숙해진 ‘검모잠(안승훈 분)’같은 인물의 출연은 재미를 더해주었다.

따라서 이것은 지금까지의 ‘연개소문’과는 다른 카리스마 넘치는 드라마가 연출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연기자들만큼은 확실한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마치 역사를 가르치는 듯한, 설명조의 지지부진한 전개로 비판을 받아온 이환경 작가가 얼마나 속도감 있게 이들 연기자들의 맥을 살리면서 긴박한 드라마를 엮어나갈 것인가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캐릭터의 설정이나 스토리 진행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금 ‘연개소문’은 그 연기자만으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
이 경쟁에 가세하는 것이 바로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이다. 상황으로 보면 ‘대조영’을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뜨린 것은 바로 이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존재감이 팍팍 느껴지는 외과과장 이주완 역할의 이정길.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굴욕적인 면모 역시 거침없이 보여주는 호연에 힘입어 네티즌들에게 ‘인쇄정길’, ‘굴욕정길’로 불릴 정도다. 의국실로 프린트되는 외과과장후보 이력서를 가로채기 위해 달리는 모습과 노민국의 호텔방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으로 이런 호칭이 붙여졌다.

이정길과 손을 잡았다가 또 뒤통수를 때리는 부원장 우용길 역할의 김창완은 특유의 능구렁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연기는 뒤통수를 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 그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그 놀라운 연기변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물론 주인공 장준혁 역할의 김명민은 특유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악마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쉽지 않은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저 영화 ‘괴물’에서 주목받은 변희봉(오경환 역), ‘영웅시대’에서 천태산의 차남 역할로 나왔던 정한용(민충식 역), ‘제5공화국’에서 허문도 역할로 열연했으며 각종 사극에서 감초 역할을 확실히 해준 이희도(유필상 역) 역시 이 드라마의 힘을 만들어주는 연기자들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들 얼굴
요즘 주말드라마는 유독 클로즈샷이 많다. 그것도 극단적인 클로즈샷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까지 보일 정도로 화면의 거의 2/3를 채우는 이들 연기자들의 얼굴.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성패에 얼마나 연기자들의 존재감이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드라마 속에 확실한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있다면 그 드라마는 그 힘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이들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주연이 아닐 경우, 이들 연기자들 사이에서 그 힘에 눌린다면 드라마의 중심 축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동근이라는 확실한 중심축이 선 ‘연개소문’은 일단 기선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얀거탑’ 역시 차츰 주인공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고정층을 확보한 ‘연개소문’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조영’. 사실 지금의 주말드라마 판도를 가장 도와준 격이 되었지만, 가장 곤란한 시간대에 자리잡아 양측에 공격을 받는데다 아직까지 대조영으로서의 최수종이 확실히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분명한 것은 그 힘을 만들어 드라마를 성공으로 웃게도 하고 실패로 울게도 만드는 이들이 연기자들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