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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계백', 백제를 이렇게 그려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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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어쩌다 치정극이 됐나

'계백'(사진출처:MBC)

아무리 최근의 사극들이 역사를 재해석하고 상상력의 틈입을 더 많이 허락한다고 해도 '계백'은 너무 지나치다는 인상이 짙다. 실제 역사에서 무왕(최종환)이 그토록 나약한 존재였을까. 그래서 사택가문에 의해 왕권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을까. 백제와 신라가 원수지간이었던 당시, 선화공주는 과연 실존하는 인물이었을까. 교활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의자(조재현)는 어떤가. 게다가 은고(송지효)라는 여인 한 명을 두고 벌이는 볼썽사나운 왕과 신하 사이의 줄다리기라니.

'계백'은 도대체 주인공이 누구인지 종잡기 어려운 사극이다. 제목을 '계백'으로 잡았다면 그 인물이 가진 역사성에 천착해야 할 텐데, 이 사극은 계백을 그저 한 여인에게 목매는 평범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나마 사택비(오연수)와 대결하는 국면에서 계백은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를 만나 그 꿈을 슬쩍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사택가문이 모두 물러나고 의자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런 꿈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백제의 삼대 충신들로 불리는 성충과 흥수 역시 기존 권력에 편입되어 살아간다.

사실 역사의 디테일들이 바뀌는 것은 사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뀐 디테일이 역사적 인물들을 폄훼하거나 한 국가를(그것도 당시 엄청난 힘을 가졌던 백제라는) 소국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무런 꿈을 갖지 못한 '계백' 속의 인물들은 멜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 속에서 계백은 의기도 충절도 잘 보이지 않는 평범한 남자가 되어버렸고, 의자는 한 여자를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이는 소인배가 되었으며, 무왕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택비를 닮아가는 은고를 제거하고자 할 정도로 사택가문 앞에 약해지는 졸장부로 그려졌다. 삼한일통을 꿈꿔야할 성충이나 흥수마저 이러한 사적인 치정에 휘말려 있으니, 이렇게 패배주의적으로 그려진 백제를 어느 후대가 수긍할 수 있을까.

이건 차라리 사극이 아니라 치정극에 가깝다. 사극에 멜로나 사랑이야기가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극 역시 드라마이기 때문에 멜로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멜로가 역사적인 인물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버릴 때, 그 사극은 도를 넘은 것이다. 도대체 왜 '계백'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신라를 다뤘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조차 백제는 강성한 나라로 그려졌었다. 이토록 힘없고 지리멸렬하며 용렬한 왕과 왕자들이 우글대는 나라라니. 이것이 과연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백제라는 나라가 맞는 것일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계백'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통해 볼 때 새로운 이야기를 그다지 발견하기가 어렵다. 백제를 다룬다면(우리 사극에 백제를 다룬 것은 그다지 없었다) 뭔가 백제만의 기상을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를 덧붙였어야 하는데, 초반 사택비 설정부터 '선덕여왕'의 틀을 거의 답습해버렸다. 하지만 이 억지 설정이 그대로 문제로 드러나는 건 그 눈 꼬리 분장 논란에서 여겨지는 것처럼, 깊이 있는 캐릭터의 창출이 아니라 그저 분장 같은 외적 장치로 그런 효과를 내려 하는 이 사극의 태도에 있다. 이런 태도로 어찌 캐릭터가 살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살아나지 않는 캐릭터는 역사 속 인물 자체도 폄훼할 가능성이 높다.

'계백'이 사극이 아니라 치정극에 빠져버린 것은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원대한 꿈을 꾸는 영웅의 부재는 그렇다 쳐도, 그들이 치정에 얽혀 소인배로 그려지는 것은 차마 바라보기가 어렵다. 아이디어가 사라졌을 때 대부분 작가들이 그 빈 공간을 멜로로 채우려는 것은 그것이 손쉽게 분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채워진 멜로가 계백이라는 비운의 영웅을, 의자라는 백제의 마지막 왕을, 또 무엇보다 강성했던 백제라는 나라를 이토록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10%에 머물러 있는 시청률이 말해주듯이 '계백'은 대중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백제의 모습을 너무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역사왜곡보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역사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