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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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렬, 결국 중심에 서는 그의 저력

D.H.Jung 2012. 3. 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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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그림'의 실질적인 힘, 전광렬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전광렬은 특별한 배우다. 물론 이제 그는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에서는 많이 비껴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막상 진행되고 나면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인공들보다 훨씬 강한 존재감으로 서는 전광렬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드라마가 갑자기 전광렬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강한 극성을 끌어내야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드라마에서, 전광렬의 역할 그 이상의 저력은 때로는 죽어가는 드라마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주몽'에서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 건 주몽 당사자라기보다는 전광렬이 연기한 금와라는 애증의 화신이었다. 해모수와 우정을 나누지만 그를 배신하고 그의 아이 주몽을 잉태한 유화부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이 복잡한 캐릭터는, 전광렬이라는 연기자에 의해 죄책감과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로 탄생했다. 때론 주몽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도와주기도 하는 역할로 이 드라마 초중반부의 팽팽함은 바로 이 캐릭터에서 비롯됐다.

결국에는 팽팽한 대결구도의 중심에 서는 전광렬의 이러한 저력은 그가 나왔던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발견된다. '왕과 나'에서의 조치겸, '태양을 삼켜라'에서의 장민호, '제빵왕 김탁구'에서의 구일중, '싸인'에서의 이명한 등등. 주인공의 배경을 살려주는 카리스마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주인공과 대적하는 악역에 이르기까지 전광렬은 확실하게 극성을 올려주는 역할들을 주로 수행해왔다.

바로 이 점은 때때로 드라마가 주인공이 아닌 전광렬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즉 드라마의 힘이 빠졌을 때, 극성을 끌어올리는 역할로서 전광렬 만한 연기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정은 '빛과 그림자'에서도 다르지 않다. 초기 전광렬이 연기하는 장철환이라는 인물은 물론 강기태(안재욱)의 원수로 자리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의 흐름이 이 인물 중심으로 흘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강기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장철환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전광렬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중정의 김부장(김병기)과 팽팽히 대립하면서 느슨해진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였다. 특히 분노하고, 소리치고,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심지어 발로 밟아버리는 그 광기어린 모습은 드라마에 확고한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을 세움으로써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부여했다.

물론 이러다 보니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드라마가 전광렬의 광기어린 연기에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러자 본래 드라마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 즉 우리네 연예계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려 했던 그 의도가 흐려지게 됐던 것. 최근 몇 회 동안 연예계의 성장 스토리에서 갑자기 탈옥 장르의 이야기로 흐른 건 이 드라마에 강한 자극제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전광렬이 전면에서 이끌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주연과 조연이 뒤집히는,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전광렬만이 가진 특별한 연기자로서의 색깔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주인공 옆 자리에 서서도 스스로 빛을 낼 줄 아는 연기자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주인공에게 그가 만들어낸 극성을 넘겨주고 자신은 물러나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그가 해내고 있는 드라마 속에서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건 아니다. 어쨌든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는 빛으로서의 안재욱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림자로서의 전광렬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