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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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꼭 '신들의 무대'여야 할까

D.H.Jung 2012. 3. 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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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왜 쉽게 돌아오지 못할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유난히 격정적이고 감정몰입이 뛰어난 탓일까. 우리네 대중들은 '전설'이니, '신들의 무대'니 하는 표현에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물론 비유일 것이다.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상찬. 그래서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를 좀 더 쉽게 준비시킨다. 그 무대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신들의 무대'가 시작된다. 그러니 찬양하라! 노래가 주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그 기적의 순간을 경험하라!

물론 이들을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다름 아닌 대중들이다. 대중들의 음악에 대한 강한 욕구,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열망이 이들을 '신들의 무대'로 만들어 놓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는 노래 한 구절에 마음껏 눈물 흘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호응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신들의 무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적인 이 '나가수'는 그러나 결정적으로 현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순위 발표 시간이다.

혼신의 무대를 통해 신들로 격상된 가수들은 이 순간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 인간임을 증명한 이가 김건모다. 물론 그는 애초부터 신이고 싶어 하지 않은 가수였고(그러니 립스틱을 바르는 광대의 모습을 보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가수들에 의해 '재도전'을 했고, 그것은 대중들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힘겨운 것은 이 엄청난 상승과 그 상승의 폭에 비례해 겪게 될 추락의 충격파 역시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승과 하강은 전적으로 대중들의 선택과 재가에 의해 이뤄진다(고 믿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이 허락하지 않는) 가수가 올라오면 수많은 구설수와 음모론이 제기된다. 신들의 무대는 대중들이 선택한 가수만 오를 수 있다. 즉 그 무대 위에 서는 신은 결국 대중들이 만든 것이다. 가수 선정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누가 대중들의 모든 마음을 대변해서 거기에 딱 맞는 예비 신(?)을 섭외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만한 기량을 갖춘 가수라고 해도 지나친 상찬이나 그로인한 엄청난 충격의 추락을 견뎌내는 것 그 어느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정도의 레전드급 가수들은 굳이 '나가수'를 나오지 않아도 가수로서의 입지에 큰 영향이 없다. 이미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데다가 방송 활동은 조금 뜸해도 공연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빛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세, 이승환, 이승철, 이선희, 윤미래, 이적 등등. 수많은 레전드급 가수들이 러브 콜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확답이 없는 이유에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다.

'나가수' 시즌1을 통해 무대의 문턱이 너무 높아져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가수가 이 무대에 오른 게 되면 이제 '격에 맞지 않는 캐스팅'이 논란이 된다. 하지만 본래부터 '나가수' 무대의 가수들이 모두 레전드급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시즌1의 첫 경연에 올랐던 7인을 보면, 물론 가창력은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처음부터 '레전드급'이라고 이름 붙여지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무대를 통해 '레즌드'가 된 것이지, 이미 레전드인 그들이 '나가수'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가수' 시즌2의 가수들이 모두 '레전드급'일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잘 할 것이라 여겨지는 그들이 잘하는 무대는 대중들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기 어렵다. 오히려 미발굴된 '숨은 고수'를 찾아야 한다. 엄청난 가창력과 음악성을 갖고 있지만 방송에 비춰지지 않아 숨겨져 있는 진주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나가수'의 소명이 아닐까. 그 진심만 전할 수 있다면 '나가수'를 굳이 '신들의 무대'로 세팅된 상태에서 시즌2를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 신들의 무대는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