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꽃할배'의 나영석 PD, PD의 차원을 넘어섰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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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의 나영석 PD, PD의 차원을 넘어섰다

D.H.Jung 2013. 9. 1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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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가 PD의 역할로 새롭게 낸 숙제

 

tvN <택시>에 이서진과 함께 출연한 나영석 PD는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의도한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진심인지 나영석 PD가 택시에 오르자 이 두 사람의 장난스런 툭탁거림이 시작되었다. 텀블러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몰라 나영석 PD가 이서진에게 묻자, 그걸 도와주며 이서진은 “아 진짜 무식해가지고 이런 인간하고 유럽에 다녀왔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고 툭 쏘아댔다. 김구라가 대박 난 프로그램을 축하한다고 하자 또 이서진은 “그냥 하는 거 없이 얻어걸린 거예요.”라고 농담 섞인 폄하 발언을 던졌고 그러자 나영석 PD도 지지 않고 “형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약간 재수 없게?”라고 받아쳤다.

 

'택시(사진출처:tvN)'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멘트들이지만 이 첫 등장에서의 몇 마디 오고가는 독설들은 이 날 방송의 재미를 한껏 만들어냈다. 사실 케이블에서 흔치 않은 7%에 육박하는 대박 시청률의 주역들이고 나영석 PD가 스스로도 ‘신의 한수’라고 얘기했던 이서진이 아닌가. 그러니 만일 이들이 서로 상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방송은 그저 그들의 자화자찬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됐다면 재미도 반감됐을 게 분명하고 심지어 재수 없게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정확하게 방송이 어떤 포인트로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로 추켜세우기보다는 서로를 물어뜯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명콤비(?)의 공기를 보여주는 것. 사실 이건 의도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영석 PD가 방송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몸에 체득된 것일 것이고 또 어쩌면 그의 성격이나 개성이 묻어난 결과일 수 있다. 어찌됐건 이런 점들은 나영석 PD가 어떻게 대중들의 정서를 그토록 잘 건드리고 포섭해내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1박2일>에서부터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유독 화면에 얼굴을 들이미는 건 나영석 PD만의 전매특허였다. 물론 이것은 프로그램의 성격상 리얼 미션을 전달하는 모습을 PD가 직접 보여야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하지만 이서진이 <택시>에서 폭로하듯 ‘연예인병이 있다’고 밝힌 것처럼 나영석 PD는 이제 반드시 자신이 얼굴을 들이밀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만일 이 등장이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족처럼 여겨졌다면 대중들은 아마도 여기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째서 나영석 PD의 등장은 훨씬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까.

 

나영석 PD가 잘 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시청자들이 대리해서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어쩌면 대본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리얼 예능에서 어떤 안전한 가이드라인으로서 기능한다. <1박2일>에서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지만 또한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에게 미션을 내리고 그 복불복의 결과를 수행하는 또 한 명의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대행하는 캐릭터를 보여준 셈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그 역할은 좀 더 세밀해졌다. 나영석 PD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서진이라는 중간 인물을 세운 것. <1박2일>에서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지만 <꽃보다 할배>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어르신들을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 어르신들을 고생시키는 독한 연출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이러니 어르신보다 더 고생하는 캐릭터로서 이서진이 필요했던 셈이다. 또한 이 캐릭터는 어르신 소재의 프로그램에 젊은 세대가 대리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여기서 나영석 PD는 그 스스로도 어르신들을 모시는 것을 버거워하면서 동시에 이서진의 힘겨움을 끄집어내 끊임없이 깐족대는 역할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이 역할이 있어서 이서진의 캐릭터가 부각되고 또 이 전체 여행의 흐름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나영석 PD 같은(때로는 이우정 작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제작진이 이서진이나 어르신들과 함께 걷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가감 없이 보여지면서 이것이 ‘만들어진 방송’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점이다. 마치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은 적나라함과 솔직함이 나영석 PD의 방송 틈입으로 생겨난다는 것.

 

이런 점에서 보면 나영석 PD는 예능 방송사에서 PD의 역할을 재정립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PD가 카메라 뒤에 앉아 출연자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출연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같이 방송을 만들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나영석 PD를 통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권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걸 쥐고 있는 사람이 피사체를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정서는 이러한 권력적인 시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오는 나영석 PD는 그래서 이러한 권력적인 시선을 무화시키는 훈훈함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있다는 것 자체를 지워버리는 일. 나영석 PD가 PD의 역할로서 새롭게 만들어낸 숙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