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빠 어디가'의 몰카가 꼬집은 어른들의 세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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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의 몰카가 꼬집은 어른들의 세계

D.H.Jung 2013. 9.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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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선으로 성장하는 <아빠 어디가>라는 신세계

 

우리가 본 것은 아이들의 몰래 카메라였을까 아니면 어른들의 몰래 카메라였을까. 혹시 우리가 이 몰래 카메라로 본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아빠 어디가>가 하면 뭐든 달라진다? 몰래 카메라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어른들의 악취미처럼 보일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에서 동물번역기(?)를 통해 자신들이 돌보는 젖소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몰래카메라는 의외의 상황으로 이런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먼저 이 몰래 카메라는 의도 자체가 달랐다. 아이들을 놀리거나 당황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순수한 동심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 동물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이 동화 같은 경험은 아이들에게는 동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갖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또 하고 싶어 아빠를 조르는 준수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달라는 요구에 부끄러움도 이긴 채 어깨춤을 추던 윤후, 그리고 송아지들과도 밀당을 하던 지아는 아마도 이 짧은 소통의 경험이 훗날 꽤 즐겁고 의미 있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진지하고 모든 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이 몰래 카메라는 그래서 거꾸로 이를 만든 어른들의 몰래 카메라로 뒤바뀌었다. 송아지 흉내를 내던 성동일과 김성주는 뭐든 진짜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엄마 아빠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됐다. 아이들의 반응을 훔쳐보던 몰래카메라가 어른들의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로 바뀌게 된 것. 이러한 역전은 <아빠 어디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이렇게 된 것은 아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실로 아이들의 존재는 지금껏 주로 어른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신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저 대단할 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의 하룻밤이나 저녁 한 끼가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아이들 덕분이었다. 어른들이 모이면 으레 게임을 하고 자극적인 벌칙수행을 하던 것들이 아이들이 서게 되자 그 눈높이로 달라지게 됐던 것.

 

심지어 무인도에 가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자 그 불모의 공간이 그저 야생의 생존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모험심을 갖게 만드는 보물섬으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펼쳐질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 역시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껏 수없이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해왔던 친구 미션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빠 어디가>가 호평을 받을 때조차 먼저 걱정스럽게 나온 의견들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 주말예능에서 자칫 아이들을 데리고도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초반부 몇 차례 몰래 카메라 설정에 대한 찬반은 바로 이런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행에서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한정적일 거라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밥 해먹고 하룻밤 자는 것이 반복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

 

하지만 최근 <아빠 어디가>를 보면 이 두 가지 우려가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몰래 카메라마저 뒤집어버리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주는 자신감과, 아이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여행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빠 어디가>를 보면서도 어른들의 예능의 관점에서 이를 쳐다봤던 것이 분명하다. 저 몰래 카메라를 하던 김성주와 성동일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던가. 그들이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이들은 우리에게 그네들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것은 <아빠 어디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세상에 갇혀 그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리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갑자기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심지어 동물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다 큰 어른들이 소통할 줄 모르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싸우는 현실 속에서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동화는 그래서 그 어느 것보다 더 비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