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의 작품성과 상품성
이명세 감독의 ‘M’에 대한 반응이 양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한편은 이 기존 내러티브 형식을 파괴한 영화의 시도를 참신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한편은 관객을 지독한 혼란 속에 빠뜨리는 이 영화를 감독 자신의 과잉된 자의식의 산물로 보는 쪽이다. 무엇이 이렇게 엇갈린 반응을 만들었을까.
내러티브 vs 비내러티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내러티브의 세계다. 내러티브는 일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즉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세계가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며, 보기를 기대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M’이 그리는 세계는 내러티브의 세계만이 아니다. ‘M’은 꿈이라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기에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느슨하게 되어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내용인지를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헷갈리는 미로 속에 들어가 갑갑함을 느끼면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와 음향의 세례를 받아낼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서 이 초반부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꿈의 세계를 보다 지쳐 잠이 들 수도 있다. 이것은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한편으로는 불쾌해하는 이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돈주고 영화관까지 가서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느냐는 거다. 그런데 감독은 바로 이 관객을 혼동에 빠뜨리는 부분을 의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민우(강동원)가 겪는 바로 그 혼동을 똑같이 느끼게 의도했다는 말이다.
동화(同化) vs 이화(異化)
이명세 감독의 이 말은 마치 관객이 민우에게 동화되기를 기대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민우에게 동화되었다면 영화는 민우의 감정선을 따라서 움직여야 할텐데, 그러한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이나 스토리에 동화되어 몰입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영화를 보는 자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민우의 첫사랑, 미미와의 아련한 기억이 예쁜 그림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민우를 혼동에 빠뜨릴 정도의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 부분이 그나마 이 영화 속에서 내러티브를 갖는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미지는 파격적이지만) 스토리는 관습적이다. 이것이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초반부의 힘겨운(?) 이미지들을 겨우 버티고 봐왔는데 결국 얘기란 것이 고작 관습적인 첫사랑이라니.
영상 vs 스토리
하지만 영화를 내러티브로 보지 않고 이명세 감독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잔치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영화가 말해주는 것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것에 더 열광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상의 언어가 모국어임을 자처한다. 만일 이 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영화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작품이 된다. 헐리우드 장르에 의해 만들어진 관습적인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영화가 가진 영상미학은 시도 자체가 거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M’의 시도는 내러티브라는 족쇄에 묶여있는 영화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실험적인 시도를 지금의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내러티브에, 동화(同化)에 익숙해져 그런 영화에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왔던 관객들은 아마도 속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중들의 기호를 도외시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예술에 대해서 이제 대중들은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특히나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더더욱.
작품 vs 상품
이명세라는 감독과 강동원이라는 아이콘이 주는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던 분들은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명세 감독과 강동원이라는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예술인이라는 측면과 함께,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이들은 상품으로서 홍보되고 광고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도 아니다.
‘M’이 영화 홍보에 있어서 그렇게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고, 거기에 강동원과 이연희의 아련한 이미지를 포장시킨 것은 상품으로서의 영화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그것 자체에도 나름대로의 영화적인 재미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첫사랑이란 코드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M’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는 작품으로서의 ‘M’과, 상품으로서의 ‘M’ 사이에 벌어진 균열 때문에 생긴 것이다. ‘M’을 예술작품을 보듯 진지하게 바라본다면 그 낯설고 불편한 이미지들 속에서 어쩌면 초현실주의 그림들과 현대음악을 발견하는 재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다가 강동원이라는 아이콘과 첫사랑이라는 문구에 극장을 들어섰다면 자칫 불편함만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M’은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상품성은 떨어지는 영화다. 재미의 기준을 작품성에 두고 보면 재미있지만 상품성에 두고 보면 재미없는 영화다. 그리고 그 재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다만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서 장르적이고 관습적인 기획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M’이 보여준 시도 자체를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옛글들 > 영화로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어로’, 청국장을 찾는 소시민 영웅 (0) | 2007.11.03 |
---|---|
진수성찬 ‘식객’의 2% 부족한 맛 (0) | 2007.11.01 |
이상, 카프카 그리고 ‘M’ (0) | 2007.10.24 |
‘궁녀’와 ‘장미의 이름’, 유사점과 차이점 (0) | 2007.10.20 |
‘M’,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0) | 2007.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