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들의 영웅 환타지, ‘히어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히어로’의 영화판은 드라마의 재연에 가깝다. 특별히 영화로 소재를 가져오면서 과장의 흔적도 없고, 스케일이 커진 것도 그다지 없다. 드라마에서 카메라가 사건 현장과 법정, 도쿄 검찰청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영화도 줄곧 포커스를 그 곳에 맞춘다. 조금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관객들을 의식해 부산이 잠깐 등장하고 이병헌이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정도랄까.
이것은 ‘히어로’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자극하는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 그대로다. 도대체 히어로(영웅)는 어디에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그래도 영화인데 좀 거창한 스케일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똑같은 의아함에 사로잡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점이 바로 ‘히어로’라는 컨텐츠가 가진 독특한 개성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웅, 즉 소시민들 속에 숨겨진 영웅이 이 컨텐츠의 포인트이다.
‘히어로’의 첫 장면은 영웅이 멋지게 나타나 약자를 구원해주는 관습적인 ‘히어로 무비’를 철저히 배반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영웅인 쿠리우 검사(기무라 타쿠야)는 홈쇼핑에 빠져있다. 그것도 거의 중독증 수준. 검사의 제복이랄 수 있는 양복도 걸치지 않는다. 점퍼에 청바지 차림, 게다가 길게 기른 머리는 염색까지 했다. 여기에 하는 행동은 더 가관이다. 출세나 성공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듯한 모습에, 사건 조사를 하는 태도 또한 동네 아줌마에게 길을 묻는 수준이다.
이것은 소시민의 이미지이지 영웅의 면모가 아니다. 즉 ‘히어로’가 제시하는 영웅은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영웅상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영웅상이다. 영화는 따라서 상류층과 소시민의 경계를 정확하게 나눈 상태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목할 것은 때론 상류층이 벌이는 거대한 사건이 소시민들의 작은 사건과 연관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시민들의 사건을 조사하던 쿠리우 검사는 거기에 연루된 거대한 상류층들의 스캔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가 관객들을 놀라게 만드는 부분은 관객 스스로도 거대 권력의 사건을 제쳐두고 소시민의 사건에만 집착하는 쿠리우 검사에게 어떤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 소시민의 목숨에 걸린 사건이 상류층의 뇌물로비 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소시민들의 영웅으로서 쿠리우 검사라는 존재는 깊이 각인된다.
모든 것이 관료화되어 있고, 성공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도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말하는 쿠리우 검사라는 존재는 아마도 현실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인물일 것이다. 오히려 권력과 결탁하여 진실을 묻어둘수록 성공이 빨라지는 사회 속에서 ‘히어로’는 억울하기만 한 소시민들의 영웅 환타지를 자극한다.
따라서 영화는 당연하게도 저 ‘춤추는 대수사선’ 같은 화려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무라 타쿠야 같은 대스타가 연기하는 쿠리우 검사라는 영웅이 우리나라의 시장통과 달동네 골목길을 거닐고,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 있는 식당에서 서툰 한국어로 “청국장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이 영화의 주된 볼거리다. 화려한 영웅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드라마 같은 영화에 실망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 정감 가는 영웅을 찾는다면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이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영웅상을 깰 수 있다면 그건 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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