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관념의 속살을 뱀처럼 파고드는 영화
“그는 나를 뱀처럼 파고들었어.” 왕치아즈(탕웨이)의 묘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살들이 마치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겠다는 듯이 꿈틀거린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걷어내고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은 적나라한 살점과 몸의 촉점(觸點)들이 서로의 빈틈을 파고드는 두말 할 것 없는 정사장면이지만, 또한 하나가 되기 위한 욕망 속에 안간힘을 쓰면서도 결국에는 경계지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기 위해 막부인으로 위장하여 접근한 왕치아즈.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되면서 파국으로 가게 된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단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 속에 이안 감독은 수많은 ‘경계’들을 만들어놓고 그것들이 서로를 침범하고 넘나드는 긴장감을 부여한다. 바로 이 수많은 경계들을 염두에 두었을 때 영화는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의미를 전달해준다.
배경으로 제시되는 2차 세계대전 상황 속에서의 상해, 홍콩은 국가들과 동서양의 경계가 부딪치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경계를 넘고자 하는 욕망은 한 남녀로 봤을 때는 아슬아슬한 정사가 되지만, 국가의 차원으로 보면 전쟁 혹은 문화의 침투가 된다.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서구인들이 혼재된 거리는 그 자체로 경계를 풀어헤치면서 긴장감을 촉발시킨다. 그 공간 속을 걸어가는 왕치아즈는 양장과 치파오(중국식 복장)를 번갈아 입으며, 사천식 요리를 즐기면서 커피를 마신다. 상해라는 중국의 공간에서 서구의 고전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전쟁선전영화가 삽입되어 극장 밖을 나서는 왕치아즈는 바로 이 혼동의 시공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경계는 외부적 조건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외부적 조건은 왕치아즈라는 여인의 내부 속에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낸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왕치아즈는 어느 날 경계를 넘어 연극부에 가입하고, 거기서 또 한 차례 경계를 넘어 친일파 정보부 대장인 이를 암살하기 위해 막부인으로 가장한 스파이가 된다. 이 과정을 이안 감독은 막연한 스토리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왕치아즈의 육체를 통해 그려낸다. 왕치아즈는 담배를 배우고, 술을 마시며, 처녀를 스스로 깬다. 왕치아즈가 세워놓았던 경계는 조금씩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연극부 동료들도 선을 넘는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자 왕치아즈는 스파이로서의 자신과 자꾸만 이에게 끌리는 막부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경계의 해체라는 상황 속에서 촉발된 이 한 여인의 욕망과 경계 사이의 갈등은 그녀와 이의 정사장면을 통해 정확히 그려진다. 초반부 폭력적인 정사장면에서 이가 보여주는 몸의 언어는 그녀를 끌어들이기보다는 밀쳐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상위가 아닌 후배위의 정사장면은 그 누구에게도 경계를 풀지 않으려는 이의 심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믿지 않았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는 이의 대사는 그러나 경계를 풀어내자 파국으로 치닫는다. ‘믿었기에, 경계를 넘어섰기에’ 생존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인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라 할 만하다. 제목 자체를 불교용어에서 따온 것처럼 영화는 ‘탐하지만 얻을 수 없는 인간존재’를 그려낸다. 그것을 육체의 부딪침으로 포착한 이 영화의 가장 파격적인 정사신이, 자극적인 충격 이상의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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