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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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제, 힘겨운 한 해를 정리하다

D.H.Jung 2007. 11. 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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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나로 충분한 그들, 영화인들에게 박수를

꿈이란 단어 하나면 충분했다. 그 단어 하나로 청룡영화제에 모인 영화인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개그콘서트’ 뮤지컬 팀이 청룡영화제 2부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축하무대 정도로만 생각됐다. 하지만 힘겨운 영화인들의 일상이 겹쳐지면서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뮤지컬 팀에 의해 번갈아 노래되고 안성기가 올 한해 어려웠던 우리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영화인들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인순이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영화인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칠 때 카메라에 잡힌 영화인들의 얼굴은 모두 숙연해졌다.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에서도 ‘어려운 한 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아한 세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시기에 상은 격려가 된다”고 했고,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거머쥔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은 7번 무산됐다가 8번째 영화화가 된 이 영화에 얽힌 7전8기의 사연을 소개했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즐거운 인생’의 김상호는 “제가 이 일로 밥벌이를 못하는 줄 알았다”며 ‘고마운 아내’를 얘기할 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처럼 올 한 해 우리 영화계는 위기론으로 시작했다. 외국 블록버스터들이 스크린 쿼터 축소로 인해 낮춰진 우리 문턱을 넘나들면서 상반기 우리 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칸느의 여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어려운 영화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고, 중반을 넘으면서부터 ‘디워’와 ‘화려한 휴가’의 쌍끌이 흥행이 이뤄지면서 우리 영화계는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의 작은 흥행이 이어져 상반기의 부진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올해 청룡영화제 수상작들은 대부분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한 영화들이 많았다. 기러기 아빠가 된 조폭을 통해 조직생활보다 더 어려운 가장의 삶을 조명했던 ‘우아한 세계’가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복잡한 욕망의 세상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물은 ‘행복’이 감독상을 수상했다. 역시 삶의 아픔을 다룬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어려운 가장들의 유쾌한 반란을 다룬 ‘즐거운 인생’의 김상호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행복한지 몰랐었는데 지금 쉬고 있으니까 그래도 촬영할 때가 감독한테 제일 행복하구나 생각했습니다.” ‘행복’으로 감독상을 받은 허진호 감독의 이 말은 어려운 시기의 영화인들의 진정한 행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현실이 힘겨워도 그 어려움을 자양분 삼아 작품에 쏟아 부으며 그것으로 행복을 찾는 우리네 영화인들. 꿈 하나로도 충분한 그들에게 이 한 해 참 고생했다는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