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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얼렁뚱땅 흥신소’, 그 얼렁뚱땅이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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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그들이 찾는 보물, 가족

‘얼렁뚱땅 흥신소’는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리고 황금사냥을 하게 된 네 사람의 이야기다. 건물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황금빌딩에 거주하는 만화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태권도장 사범 무열(이민기), 영매사 희경(예지원)은 월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벼락같이 떨어진 황금은 그들의 일상을 모험으로 바꿔놓고 그 과정 속에 부동산 재벌 딸인 은재(이은성)가 합류한다.

그 황금이 고종이 남긴 열두 항아리의 황금 중 일부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황금을 찾아가는 모험이 시작된다. 그러자 일상은 독특한 형태로 모험의 배경과 수단이 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황금빌딩은 그 이름처럼 이 황금에 대한 첫 단서를 주는 공간이 되고,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은 황금이 숨겨진 장소로 돌변한다.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한 빌딩 숲이던 서울은 순간 모험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철가방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크루즈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도심을 질주하며, 영락없는 주부는 그 영락없는 외모를 바탕으로 은밀하게 뒷조사를 한다.

보물지도를 노리는 민철(박희순)의 건달패들로 인해 시시각각 위기를 맞게 되는 이들에게 일상은 또한 그들만의 무기가 된다. 용수는 만화적 지식으로 두뇌역할을 하며, 무열은 태권도를 바탕으로 행동대장이 된다. 희경은 남을 속이는 특유의 연기력으로 위기를 넘게 해주며, 은재는 이 세 명의 비루한 인물들이 못 가진 재력으로 이 모험에 돈을 댄다. 이 일상의 모험들이 종종 TV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패로디하는 것은 드라마를 코믹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도시일상인들의 환타지를 희화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욕망에 공감하면서도 픽 웃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황금을 찾는다’는 이 도시인의 로망은(보물이 아니고 황금이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무열은 애초부터 황금보다는 은재에 대한 생각뿐이고, 용수는 갑자기 어린 시절 잃어버린 형의 주검을 맞이하고 망연자실해 한다. 희경은 보물지도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민철과 사랑의 감정에 빠져버리고, 은재는 황금보다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기억에 점차 접근하게 된다. 즉 그들은 황금을 찾는 일을 하면서 자신들 마음 속에 있던 ‘진짜 황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황금은 무열에게는 은재이며, 용수에게는 형이고, 희경에게는 민철 같은 그 누군가와의 사랑이며, 은재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된다. 드라마가 물질적인 황금을 찾는 이야기에서 자신들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은 말 그대로 ‘얼렁뚱땅’ 벌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얼렁뚱땅’이란 ‘대충’이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치밀하게 시청자들의 욕망을 끄집어낸 후,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 본질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우습기만 했던 이 인물들은 점점 외로운 사람들로 변해간다. 그러고 보니 ‘얼렁뚱땅 흥신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모두 가족들이 없던가, 혹은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건들이 대부분 추석을 전후해 벌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추석 전날이 생일인 용수는 그 날 형을 잃었고, 그 형이 죽은 장소에 은재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으며, 그 사건은 한참을 지나 다시 되풀이된다. 아들의 실종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던 용수의 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하고, 민철이 형을 죽인 것으로 오해하는 용수는 추석날 밤 치매에 걸린 민철의 어머니와 폐가가 된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기거하게 된다. 용수가 자신의 어머니를 납치했다 생각하는 민철은 무열과 희경을 잡아두고 용수의 전화를 기다리며 한편 혼자 추석 을 지내게 되는 은재는 함께 지냈던 그들의 빈자리를 느끼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알게 되는 것은 이들이 결국 찾는 것이 황금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보름달 아래서 울먹이며 민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 용수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전화만을 기다리는 민철이나, 무열과 희경을 걱정하는 은재나 모두 가족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된다. 이것은 추석이 다가오자 이런 저런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용수, 무열, 희경에게 자신 역시 가족 하나 없는 처지인 은재가 우리끼리라도 만두를 빚고 잡채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이제 그들이 찾고 있는 가족이 실상은 그들 자신들이라는 것이 장면을 통해 보여진다. 그들은 타인으로 만나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었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제목처럼 얼렁뚱땅 인물들을 사건 속에 집어넣고는 그 안에서 기막힌 이야기와 의미들을 잡아내게 만드는 드라마다. 어리둥절하게 사건을 쳐다보면서 웃다가 울던 시청자는 말 그대로의 이야기 속 모험에 휩싸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엉뚱한 이야기의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가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황금으로 대변되는 성공을 좇아 고향과 가족의 품을 떠나 타향에서 홀로 살면서 가슴 속에 점점 황금으로 자리잡는 것은 바로 우리가 떠났던 그 가족과 고향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한참을 ‘얼렁뚱땅’ 우회해서 보여준다. 이것이 코믹에서 시작해 모험과 멜로로 넘어오더니 시청자들을 눙치면서 휴먼드라마를 넘나드는 그 ‘얼렁뚱땅’이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