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본좌에서 상근이까지, 캐릭터로 보는 세태
유반장, 하찮은형, 상꼬마, 뚱보, 바보형, 돌+아이.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을 키운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1박2일’의 캐릭터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데 은초딩과 허당이 그 주역이다. 본래 드라마 같은 극 속에서만 존재했던 캐릭터들이 이젠 예능 프로그램까지 장악한 것. 하지만 이것은 단지 연예인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허본좌, 빵상아줌마 같은 캐릭터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황당함을 무기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최근에는 상근이 같은 견공 또한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캐릭터 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하룻밤 자고 나면 캐릭터 하나가 생겨나는 세상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캐릭터 열풍을 만들었고, 또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어떤 세태를 반영할까.
캐릭터에 대한 열광, 게임을 닮았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새로운 이름이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아바타(avatar 분신)시대가 열렸을 때 캐릭터 열풍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RPG 게임을 통해 연습된 것처럼, ‘자신이 만들어가는’ 캐릭터와 자신의 동일시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쉽게 캐릭터와 동화되기 쉬운 상황은, 인터넷이라는 게임판에서 ‘캐릭터 가지고 놀기’라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게임이 이른바 ‘-빠’문화라는 이상 열기로까지 번지게 된 이유가 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TV 속의 캐릭터들이 수많은 패러디로 만들어지고 새롭게 인터넷을 통해 폭발적으로 번져나가는 현상을 목도한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이제 이 인터넷이라는 캐릭터 게임판 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 속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예능 프로그램이 캐릭터들의 전시장이 되어 가는 것은 프로그램을 띄우는데 있어서 캐릭터만큼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판 위에 제시된 캐릭터는 네티즌들에 의해 키워지고, 어떤 경우에는 캐릭터들간의 관계나 사건, 이야기를 통해 뜻밖의 캐릭터가 자생적으로 띄워지기도 한다. ‘1박2일’의 은초딩에서 허당, 그리고 상근이로 확장되는 캐릭터들의 탄생은 바로 이런 캐릭터 키우기 게임을 닮은 인터넷 문화에서부터 비롯된다.
네티즌의 성향을 반영하는 캐릭터들
따라서 이렇게 뜨는 캐릭터들은 이러한 네티즌들의 성향을 상당부분 반영한다. ‘무한도전’의 보통 이하 캐릭터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최고의 캐릭터들로 뜬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직적인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다양성의 관계로 엮어진 권력구조 속의 네티즌들은, 태생적인 이유로 소외 받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최고에 오르는 캐릭터에 더 열광적인 성향을 띈다. 이것은 ‘무한도전’ 멤버들에 대한 열광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심형래 감독 같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2인자, 3인자 캐릭터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전혀 관심 바깥에 존재하던 2인자들은 이제 그 자신이 1인자가 아니라 2인자라는 이유 때문에 더 주목받는다. 그것은 이제 3인자, 혹은 상근이 같은 ‘제7의 멤버’까지 등장하면서 점점 외연을 넓혀나간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 또한 이것과 관련이 있다. 네티즌들은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어 자신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캐릭터보다는 아직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앞으로 클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모든 성장 드라마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가상현실을 반영하는 빵상아줌마, 허본좌
하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이미 캐릭터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요구도 더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허본좌나 빵상아줌마 같은 황당한 캐릭터가 주목받는 것은 그 자체가 기존에 봐왔던 캐릭터들과는 다른 4차원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는 이들 캐릭터들에 대한 열광을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그것을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의 공간으로서 바라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본래부터가 가상 즉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이 황당무계한 캐릭터들은 가상과 현실이 적절히 섞여진 인터넷 풍토에서는 그다지 이상한 인물들이 아니다. 캐릭터 게임판 위의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가상현실의 캐릭터들이 거기서 얻은 명성(?)을 실제 현실에서 활용했을 때 벌어진다. 그것은 놀이판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는 자칫 사기가 될 수 있다. 허본좌가 구속됐지만, 이와 유사한 캐릭터를 가진 ‘개그 콘서트’의 달인이 여전히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건 그 때문이다.
끝없는 캐릭터들이 양산되어 나오는 이 캐릭터 공화국은 상당부분 디지털화된 사회의 세태를 반영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다양화된 사회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복잡한 현실을 잊고 게임 속 가상세계로 빠져드는 퇴행적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뜨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어린이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프로그램 속 상황이 본능적이고 유아적인 욕구를 끄집어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은초딩이나 상꼬마 같은 캐릭터는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른들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인 ‘라인업’의 캐릭터들이 좀체 뜨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캐릭터 공화국, 대중들이 원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치겸, 영조, 최강국 그들의 공통점 (0) | 2008.02.27 |
---|---|
주말극, 신데렐라에 빠지지 않는 이유 (0) | 2008.02.25 |
상근이마저 캐릭터로 띄우는 연출의 힘 (8) | 2008.02.20 |
이젠 작가가 그 사극을 말해준다 (1) | 2008.02.19 |
‘엄마가 뿔났다’, 두 엄마의 뿔 (8) | 2008.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