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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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KBS 예능, 노래와 바람나다

D.H.Jung 2008. 4. 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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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칠드런 송, 도전 암기송, 불후의 명곡, 그리고 예능의 가수들

KBS의 예능 프로그램이 노래와 바람이 났다. ‘쟁반 노래방’시즌2의 성격을 띈 ‘상상플러스’시즌2(풍덩 칠드런 송)가 시작되면서 KBS의 예능은 거의 일주일 내내 ‘노래에 도전하는 연예인들’을 보여주게 된 셈이다. 주중에 포진된 ‘해피투게더’의 ‘도전 암기송’이 그렇고, 주말 ‘해피선데이’의 ‘불후의 명곡’이 그렇다. 노래방으로 대변되는 우리네 노래문화가 특이하다고 해도 이런 프로그램들의 편향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먼저 노래라는 소재가 가진 장점은 KBS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 KBS라는 방송사의 성격상 전통적인 시청자를 아우르면서 젊은 세대까지 끌어 모으는 방식으로서 노래는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다.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노래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옛 노래를 가지고 지금의 연예인들이 도전을 한다는 설정은 일거양득의 힘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로 편향된 KBS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는 어떤 일련의 계보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시작은 ‘전국노래자랑’의 ‘땡’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노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진 음치, 몸치의 재미는 ‘딩동댕’과 ‘땡’과 만나면서 우리에게 하나의 포맷을 만들어냈다. ‘쟁반 노래방’은 바로 이 ‘땡’을 쟁반이라는 물리적인 장치로 변형시켜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의 개념으로 바꿔놓았다. ‘상상플러스’시즌2는 쟁반 대신 다른 장치로 그것을 변형시켰을 뿐이고, ‘도전 암기송’과 ‘불후의 명곡’은 전통적인 ‘땡’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포맷뿐만 아니라 MC들의 계보까지도 만들어낸다.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 코너에서 MC를 맡았던 이효리는 ‘상상플러스’시즌2로 복귀해 ‘쟁반노래방’시즌2 성격의 ‘풍덩 칠드런 송’을 하고 있고, 유재석은 ‘해피투게더’에서 새롭게 포맷을 만든 ‘도전 암기송’에 남아 있다. ‘불후의 명곡’의 탁재훈, 신정환 콤비는 예능 프로그램에 그들을 확고히 안착시켜준 ‘상상플러스’에서 그 계보를 이어받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프로그램 포맷들이 서로 서로 조금씩 중첩되면서 변형되어왔고 그 안의 MC들 또한 반복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KBS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진 가수들에 대한 열렬한 환호다. 이효리, 탁재훈, 신정환 같은 가수들은 ‘노래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1박2일’의 구성원들의 면면을 봐도 드러난다. 그들은 강호동을 빼고는 모두 노래와 관련이 있다. 은지원, 이승기, MC몽, 김C는 가수이며, 이수근은 개그맨이지만 ‘노래와 관련된(예를 들면 고음불가 같은)’ 노래개그로 뜬 개그맨이다.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메인이나 고정 출연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네 가요계가 변화된 상황을 에둘러 말해주는 현상이다. ‘노래를 잘한다’는 가수의 이미지는 이들 프로그램에 오면 거꾸로 ‘서투르게 노래하는’ 이미지로 바뀌면서 일종의 권위의 파괴에서 오는 쾌감을 준다. 이것은 ‘노래 잘하는 가수’보다는 ‘재미있는 가수’가 더 주목받는 작금의 음반계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자기 노래를 한번이라도 불러서 홍보를 해야 하며, 때론 평범한 이미지를 통한 친숙함을 만들어내야 하는 가수들 입장에서도 나쁜 것이 아니다.

KBS가 노래와 바람이 난 이유는 전통적으로 성공해왔던 노래 예능 프로그램들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확실히 노래는 그 자체로 이런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주일 내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노래방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프로그램의 (그것도 너무 드러나는)샘플링이 되어 가는 것으로는 현재의 민감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친 마케팅과 향수의 만남은 고만고만한 프로그램들의 양적 팽창으로 이어지면서 자칫 동시에 가라앉는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분산투자를 해야 위험이 적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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