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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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의 세 가지 창 어떻게 쓰였나

D.H.Jung 2008. 4. 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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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의 다중창 전략, 어떻게 쓰였나

과거 드라마라는 은막의 창은 늘 이편이 아닌 저편에서 신비로운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TV라는 창은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졌고, TV 이외에 다른 창들이 수시로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드라마에 몰입하고픈 시청자들은 따라서 좀더 창이 투명해져서 거기에 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질 정도로 드라마가 리얼하기를 원한다. 창에 리얼함을 깨는 먼지 한 톨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은 인터넷으로 달려가 그 먼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드라마는 퓨전이니 환타지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사극들처럼 아예 투명함을 포기하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처럼 투명해지거나 해야 한다. 적당한 멜로는 금세 탄로 난다. ‘온에어’는 이런 상황에서 좀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것은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창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중창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 드라마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그러니 믿으라고 시청자들에게 강변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 속에 다른 창을 하나 띄워놓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음으로써 시청자들을 믿게 만든다.

첫 번째 창, 드라마의 앞모습을 잡는 창
‘온에어’는 드라마에 대한 드라마.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중의 창을 가지고 있다. ‘온에어’는 먼저 우리가 믿지 않는 드라마(혹은 연예계)에 대한 창을 먼저 보여준다. 그것은 첫 회에 등장한 시상식 에피소드다. 그 시상식은 우리가 TV를 통해 불신감을 갖고 보아왔던 바로 그것이다. 조작가능성, 나눠 먹기식 시상이 우리가 시상식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온에어’는 먼저 그 시상식을 통해 드라마의 앞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뒤집어 말해 시상식의 뒷모습에 우리가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시상식에서 수상거부를 하는 오승아(김하늘)가 제일 먼저 드라마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온에어’의 네 인물인 오승아, 이경민(박용하), 장기준(이범수), 서영은(송윤아) 중 시청자들에게 TV 화면으로 친숙한 인물은 배우인 오승아다. 나머지는 모두 TV 뒤편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TV의 앞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승아를 주목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오승아에 대한 주목, 즉 시청자들이 믿지 않는 TV의 내용에 대한 장면들은 그것을 깨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오승아라는 배우의 진짜 모습, 그리고 TV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시상식에서 오승아를 찍는 카메라에서 한 걸음 뒤로 빠져나오면 그 카메라를 잡는 새로운 시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그 새로운 시선은 자유롭게 배우와 PD, 작가, 매니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방송계와 연예계의 뒷모습을 포착한다. 바로 이 시선이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창인 셈이다.

두 번째 창, 드라마의 뒷모습을 잡는 창
이렇게 시점이 첫 번째 창에서 두 번째 창으로 넘어오면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온에어’라는 드라마를 조금씩 믿게 된다. 그것은 진짜로 알고 싶었던 드라마의 뒷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보고싶은 걸 믿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시종일관 툭탁거리며 말다툼을 해대는 작가와 배우 간의 줄다리기가 있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엮어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PD와 매니저가 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드라마들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연기 못해도 CF 많이 찍으면 스타인 줄 알지만, 미국 배우들은 쓰지도 않는 제품 홍보하는 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작가 서영은이나, 여기에 맞받아 “그러는 작가님은 왜 작품마다 PPL로 도배를 하죠?”라 말하는 오승아가 그렇다. 또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작품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서작가 작품에는 명대사만 많을 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는 이경민 PD의 말도 그렇다. 이렇게 드라마에 대한 논쟁이 오고갈 때, 시청자들에게 묘한 착각이 생겨난다. 그것은 자신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바깥에 서 있다는 착각이다.

이것은 믿지 못할 드라마를 믿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트릭이다. 재미있는 건 이경민 PD가 서영은 작가에게 “왜 작가가 배우에게 그렇게 의존하려고 하죠”하고 말할 때, 그렇게 말하는 이경민 PD는 실상 박용하라는 배우라는 점이다. 배우가 배우를 비판하는 순간, 거기에 배우라는 박용하는 사라지고 PD로서의 이경민이 생생히 부각된다. 이것은 이 드라마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이 드라마가 드라마를 비판하면서 비로소 존재감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 번째 창, 카메오라는 현실의 창
그런데 이 두 번째 창은 진짜 현실이 아니다. 그것 역시 드라마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은 카메오라는 현실의 틈입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온에어’에서 카메오라는 장치는 그저 이벤트적인 속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이중의 창으로 혼동되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적당한 현실감각을 시청자에게 부여해주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온에어’ 자체에 현실감을 강화해주기도 한다.

즉 이서진이 등장해 “이번 일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곧 결혼 예정인 그의 현실상황을 끌어들였을 때, 그것은 ‘온에어’가 진짜 같다는 리얼리티를 부여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게 진짜 현실”이라는 자각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이서진이라는 카메오를 극중의 인물로서 활용하지 않고 현실의 이서진을 상황 속에 끼워 넣는 장면은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연예뉴스’와 다를 것이 없다. 실로 이 드라마에서 카메오는 이러한 현실 개입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창을 활용하는 ‘온에어’의 트릭은 드라마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효과적이다.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단지 등장인물들의 대립이나 서서히 생겨나고 있는 멜로 라인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감이 있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들이 좀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몰입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트릭 어떻게 쓰이고 있나
중요한 것은 이 트릭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로서 새로운 드라마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쓰여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온에어’는 그 이상은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몰입된 상태에서의 재미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트렌디한 드라마로 굴러가면서 ‘드라마를 비판하는 드라마’로서의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트릭들은 이 드라마의 마케팅에 더 잘 활용되고 있다. PPL 문제를 비판하면서 그 장소 자체를 PPL하고, 해외로케를 비판하면서 한 회 분량을 온전히 대만관광 홍보로 꾸밀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트릭에서 비롯된다. 이런 장면들은 마치 이 드라마 자체도 포함해 자기비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트릭을 통해 논란을 피해나가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혐의가 짙다.

이것은 드라마라는 장치가 가진 한계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허구성을 깨는 그 순간, 드라마는 드라마이기를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 상업적인 드라마는 현실 자체보다는 판타지에, 자각보다는 몰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준다. 어쨌든 이 ‘온에어’가 취하는 다중창의 전략은 작금의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멀티미디어 사회, 디지털 사회 속에서 하나의 창으로서의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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