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의 남성성 vs ‘님은 먼곳에’의 여성성
여름시장에 등장한 ‘놈’과 ‘님’은 그간의 부진을 씻고 한국영화의 부활을 알릴 것인가. 지금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미 ‘놈놈놈’은 개봉 첫 주에만 219만의 관객을 올리면서 벌써부터 올 최고 기록인 550만의 ‘추격자’를 따돌리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어 개봉한 ‘님은 먼곳에’ 역시 여름 극장가의 최대 관심작으로 떠오르며 매년 반복되어왔던 여름시장 쌍끌이 흥행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 두 작품이 모두 대작이지만 완전히 상반된 특징을 가진 영화들이란 점이다.
남성적인 ‘놈놈놈’, 스토리보다는 볼거리
마카로니 웨스턴과 우리나라에서 60년대 유행처럼 등장했던 만주 웨스턴을 오마주한 ‘놈놈놈’은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그러하듯이 그 정서가 지극히 남성적이다. 광활한 만주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와 그 열차를 가로막고 벌어지는 총격전 그리고 모래바람 속을 달리는 추격전이 압권인 ‘놈놈놈’은 철저히 남성적인 스타일을 구사한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세 캐릭터들이 나누는 대화는 최소화되고 대신 살과 살이 부딪치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액션은 김지운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카메라에 거칠면서도 강력하게 표현된다.
이 남성적인 영상 속에서 늘어지는 대사나 감정의 머뭇거림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감정 라인을 바탕으로 삼아 끌어가는 스토리의 묘미는 이 영화 속에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시종일관 달리고 쏘고 칼을 던지는 화려한 볼거리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을 가질 것이다. 유난히 스토리에 매료되는 우리네 관객들을 배려한 좀더 아기자기한 드라마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호쾌한 활극을 우리 영화에서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깊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본다면 여기서 우리 영화의 새로운 길 하나를 발견하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성적인 ‘님은 먼곳에’, 볼거리만큼 섬세한 감성
반면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는 월남전이라는 전쟁을 다루지만 지극히 시선은 여성적인 영화다. 월남에 파병된 남편을 찾아 베트남에 와서 밴드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순이(수애)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전투 장면과 공연 장면 같은 볼거리도 풍성하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처리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이 영화의 스토리가 가진 비약은 그다지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외부적인 사건에 머물기보다는 그 사건을 맞이하는 인물의 감정에 몰입함으로써 감독이 말하려는 남성성(전쟁)과 여성성(모성)의 대결을 여성의 시점으로 극대화한다.
영화 속 대부분 남성들은 일을 저지르는 존재들이며, 순이로 대변되는 여성성은 늘 그 저지른 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시커먼 남자들이 떼로 모여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장면은 따라서 이 순이의 시선으로 보면 때론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비판하기보다는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듬듯 끌어안는 순이의 모습은 마치 총을 쏘고 불을 지르는 인간들을 그대로 품에 안는 베트남의 대자연과 오버랩 된다. 게다가 미군이든, 베트공이든, 또 한국군이든 순이의 노래에 순간 전쟁을 잊어버리는 장면들은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여성의 시선을 감지하게 한다. 스토리의 인과관계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인물의 감성에 맞춘다면 영화 내내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부딪치는 이 여름 시장 속에서 이처럼 기대작 두 편이 서로 상반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실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놈’이 그 말처럼 남성적이듯, ‘님’ 역시 그 어감처럼 여성적이다. ‘놈’은 시종일관 부딪치고 싸우며, ‘님’은 아련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먹먹하게 흩뿌려놓는다. 뜨거운 여름, 호쾌한 액션과 깊은 감동이 있는 이 두 편의 영화 속으로 푹 빠져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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