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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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역사왜곡 논란이 방송가에 시사하는 것

D.H.Jung 2020. 12. 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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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 분야로 영역 넓힌 설민석, 전문가들 팩트체크에 멈칫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2회 만에 역사왜곡 논란이 터졌고 제작진과 설민석의 사과가 이어졌다. 논란이 터진 건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 '이집트편'의 자문 역할을 맡은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이 방송 직후 SNS에 올린 비판으로 비롯됐다. 

 

그 SNS에서 곽소장은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을 보는데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많다"며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사실과 풍문을 분명하게 구분해 언급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에 제작진은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 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뒤늦게나마 설민석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류를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것이 제작진 잘못이 아닌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분명히 했고, 나아가 "더 성실하고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위사실 유포 논란이 불거졌다. 설민석이 자신의 유튜브에 "재즈가 초심 잃어 R&B가 탄생했다"고 한 발언이 화근이 됐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배순탁 작가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재즈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초기 로큰롤에 대한 역사를 다룬 원서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 없는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허위사실유포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설민석이 왜 '무지'에 가까운 영역에까지 손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세계사 왜곡 논란을 사과로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역시 비전공 분야인 음악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발언으로 이어지면서 설민석에 대한 반감이 되레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중들의 실망과 프로그램의 추락한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 애초 그 무엇보다 재미있게 세계사를 다루겠다던 취지는 이제 '재미'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보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이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전문적인 정보가 교양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에도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모로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겨진다. 

 

사실 역사 같은 소재들은 일제강점기의 내용들이 일부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뤄지기 시작했고, 그 후로는 아예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이나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렇게 된 건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나 <어쩌다 어른>, JTBC <차이나는 클라스>처럼 교양의 영역이었던 정보들이 예능으로 들어오고 있는 그 트렌드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이제 막 열리고 있는 교양이 가진 전문적인 정보들의 예능화에서 '팩트'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면이 있다. 이번 사태는 전문적 영역을 다루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설민석처럼 역사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를 효과적으로 스토리텔러 혹은 방송인 같은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사실 전문영역도 갖고 있으면서 방송까지 잘하는 인물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예능이 우선 추구하는 재미적 요소를 채워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요구됐던 것.

 

설민석 같은 스토리텔러가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공감되는 면이 있지만, 여기에는 선결조건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전문가의 자문, 감수가 우선되어야 하고, 제작진도 재미와 정확한 팩트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팩트를 추구해야 하는 이러한 방송의 성격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방송은 제작단계에서 자문도 필요하지만, 다 만들어진 방송의 방영 전 감수 또한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적으로 스토리텔러가 팩트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큼, 그것을 제작진이 재미를 위한 왜곡 없이 제대로 담아냈는가에 대한 사전 감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사실은 그 자문의 내용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문이라고 부르지만, 제작진이 그 내용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꺼내 활용한다면 제대로 된 자문의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까지 내걸며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스토리텔러와, 역사 같은 전문적 영역을 소재로 가져온 것에 대한 제작진의 남다른 책임감이 요구된다. 

 

교양이 예능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건 역사 같은 소재만이 아니다. 방송의 리얼리티 경향은 전문적인 수준까지 요구되고 있어 다양한 전문정보들이 방송에 들어올 때 그 정확성을 체크하는 감수와 자문 그리고 편집의 문제는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을 통해 방송가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