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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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승패 무색하게 만든 30호 가수의 족보 없는 무대

D.H.Jung 2020. 12. 2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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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와 63호 가수, 이것이 '싱어게인'만의 오디션의 매력

 

"누가 이기든 지든 패배자를 심사위원분들로 만들자." JTBC 오디션 <싱어게인> 3라운드인 라이벌전에서 가장 관심을 집중시킨 63호 가수와 30호 가수의 대결무대에서 30호 가수는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렇게 호기롭게 각오를 밝혔다. 그 말은 둘 다 잘 해서 이런 대결을 하게 만든 심사위원들을 오히려 더 곤혹스럽게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사실 3라운드의 대진은 이승기가 한 마디로 표현한 것처럼 '잔인'했다. 2라운드에서 팀을 이뤄 함께 했던 이들을 이제는 라이벌 대결 구도로 세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싱어게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63호 가수와 30호 가수는 2라운드에서 남다른 우정과 팀워크로 모두를 감탄하게 만든 팀이었다. 그러니 이 대결이 잔인하게 느껴질 밖에.

 

하지만 심사위원을 패배자로 만들겠다는 30호 가수의 말처럼, 이들의 대결은 두 사람의 대결이 아니었다. 이문세의 '휘파람'을 선곡해온 63호 가수는 자신이 항상 감성적인 발라드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왔고 피해왔다며 이번 무대가 30호 가수와의 라이벌전이 아니라 자신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무대라고 말했다. 

 

63호 가수는 마치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듯 '휘파람'에 특별한 편곡을 더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불러내는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담담하게 불렀지만 갈수록 고조되는 감성들이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고, 그것은 김이나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유희열 심사위원의 말처럼 원곡의 향기 그대로 불렀지만 오롯이 그의 노래처럼 들렸다. 

 

이 정도로 좋은 무대를 앞서 선보였으니 그와 대결하는 30호 가수는 긴장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63호 가수와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결을 선택했다. 1,2라운드에서처럼 기타를 갖고 나오지 않은 데다 선곡이 심지어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이었다. 그는 자신이 포크 가수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가수라며 공식에 따른 음악보다 자기 색깔을 담아보겠다고 했다. 과연 이 곡을 그가 어떻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낼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선곡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 시작과 함께 30호 가수는 자유롭게 리듬을 타기 시작하더니 이 곳이 오디션 무대라는 게 무색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심사위원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그 무대는 강렬한 록비트에 강약을 조절해가며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30호 가수만의 그루브가 매력적이었고, 유희열이 "족보 없는 무대"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만의 텐션을 보여준 무대였다. 

 

굉장히 정제된 음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멋진 퍼포먼스라 하기도 애매한 동작들이었지만 몰입해서 부르는 30호 가수만의 집중력은 그 모든 것들을 매력으로 바꿔 놓았다. 김이나는 "나 안해"라고 외쳤고 유희열은 "재 뭐야?"하고 신기해했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이 처음 나왔던 것처럼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 호불호가 갈린 심사위원 때문에 30호 가수가 지고 63호 가수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승패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이긴 63호 가수보다 진 30호 가수의 잔상이 더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싱어게인>만이 가진 오디션의 특별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승패가 취향에 따라 갈리긴 하지만 그것보다 다시 무대에 선다는 그 각오가 만들어내는 승패와 상관없는 무대들의 향연. 그것만으로도 <싱어게인> 무명가수들의 참가의 의미가 충분한.(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