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알고 보니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라 과학과 광신의 비극
"이건 능력이 아니야. 저주야." tvN 월화드라마 <루카: 더 비기닝>에서 지오(김래원)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저주라 말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실험에 의해 어려서 주입된 그 능력은 그걸 이용하려는 자들로부터 그를 끝없이 도주하게 만들었고,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상황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능력이라 말하기 어려운 괴력 같은 전류가 만들어지고 지오는 그 순간의 기억을 잃는다. 깨어보면 모든 게 파괴되어 있다.
능력이라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의 능력은 그 순간조차 기억해낼 수 없는 통제 불가다. 그는 그래서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성당이 불타고 어쩌면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래서 철저히 혼자다. 그런 그에게 구름(이다희)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역시 어려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부모로 인해 완벽한 혼자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걸 지오는 알게 된다. 지오는 구름이에게 말한다. 자신은 기억이라도 잃어버렸지만 당신은 그 기억을 여전히 붙잡고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냐고.
<루카>는 슈퍼히어로물처럼 시작했다. 지오라는 인물이 여러 동물의 능력들을 세포 결합 실험에 의해 갖게 되었고, 그래서 전기뱀장어가 만들어내는 그 전류를 뿜어내며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장면들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오라는 인물의 얼굴은 늘 비감에 사로잡혀 있다.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억울해하며 절규한다. 그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비극의 주인공이다.
휴먼테크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소가 그의 집이고, 류중권(안내상)이라는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남기려는 미친 과학자가 '아버지'란다. 그리고 이 아버지란 인물은 지오를 연구소에 묶어 두고 더 강한 세포를 만들어 배양하기 위한 실험을 한다. 그건 말이 실험이지 사실은 고문에 가깝다. 극한의 전기 충격을 끝없이 줘서 세포가 버텨내게 하는 것. 그가 버텨낼 수 있는 전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가 끄집어낼 수 있는 전류의 능력도 강해지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이 이상한 아버지는 오롯이 자신의 과학적 업적으로서의 자식을 키워내려는 목적 그 이상의 욕망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를 이용하는 루카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국정원의 숨은 실세 김철수(박혁권)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이비 교주 황정아(진경)의 욕망은 더 크다. 그들은 지오의 세포를 추출해내 배양할 준비가 되자 그를 마치 소모품처럼 제거하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업적인 아들을 살려두려 한다.
지오의 비극은 모두가 그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그는 괴물이 아닌 인간이고 싶고, 스스로 인간이라 말하지만 휴먼테크도 사이비 교주도 심지어는 아버지라 말하는 미친 과학자도 그를 인간으로 놔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저 인간인 지오는 쓸모없어져 소각장에 버려지는 모르모트에 불과하다.
어째서 <루카>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비극의 주인공을 그리려 했을까. 무언가 시원한 초능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윤리적인 과학과 광신이 만나면 어떤 비극이 생겨나는가를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지오가 가진 괴력을 능력으로 보는 이들은 그를 괴물로 만들려 하지만, 진짜 괴물은 그들이다. 반면 그것을 저주라고 말하는 지오를 이해하고 보듬는 구름이만이 그를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은 구름이 같은 인물이야말로 인간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김래원은 자신이 맡은 그 주인공이 슈퍼히어로가 아닌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그 슬픈 표정과 상처 가득한 얼굴로 연기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지오라는 인물을 세워두고 그를 바라보는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그를 괴물로 바라보며 제거해야 한다 생각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그 능력만을 취해 자신의 사적 욕망을 취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를 끝까지 인간으로 바라보려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지오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엇갈림은 그래서 주변인물들이 스스로 괴물인가 인간인가를 묻게 한다.
지오라는 인물이 이런 여러 갈래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게 하는 건 엄청난 능력 혹은 저주를 가진 자의 복합적인 감정이 잘 표현되어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김래원은 확실히 슈퍼히어로가 아닌 비극적인 주인공이 가진 슬픔과 고독 같은 걸 그 처연한 눈빛과 표정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여서 가능해진 비극적 영웅의 탄생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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