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팥죽은 팥죽이고 김치는 김치며 윤여정은 윤여정이다 본문

옛글들/명랑TV

팥죽은 팥죽이고 김치는 김치며 윤여정은 윤여정이다

D.H.Jung 2021. 3. 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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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의 정중한 자신감,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가치

 

이건 우리가 '팥죽'이라고 부르는 건데, 팥으로 만든 거예요. 우리는 보통 이걸 새해 전에 먹어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에 먹는 음식이랍니다. 각종 질병과 악을 막기 위한 거고요. 내년의 불운을 없애기 위한 거예요. 그리고 이건 새해에 먹는 걸로 아마 여러분도 '떡국'은 드셔보셨을 수도 있어요.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 거예요."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아침상으로 외국인 손님들에게 내놓은 팥죽과 떡국을 설명하는 윤여정은 굳이 우리식 음식명인 '팥죽'과 '떡국'을 그대로 알려준다. 그렇게 우리 음식명을 말한 후,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또 그걸 먹는 이유가 뭔지, 유래나 의미 등을 재밌게 설명한다. 외국인들은 팥죽이 '내년의 불운을 없애기 위한' 음식이라는 얘기에 "많이 먹어야겠다"고 반색하고,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설명에 "안 먹겠다"고 농담을 한다. 윤여정은 쿨하게 웃으며 "그러세요"라고 농담으로 응수해준다.

 

사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 음식명을 굳이 먼저 알려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물론 가끔 최우식이 음식을 설명해주며 우리 음식명이 아니라 저들에게 익숙한 음식에 빗대 영어로 풀어 설명하는 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려는 나름의 배려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음식명이 뭔지를 당당히 알려주는 일은 고유의 우리 문화를 보다 정확히 외국인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 음식명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일이 최근 들어 특히 중대한 사안으로 거론된 건, 중국의 이른바 '전파 공정' 때문이다. 우리의 '김치'를 저들이 '파오차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른바 '김치전쟁'이 벌어진 건, 나라 크기답지 않게 소인배의 편협되고 왜곡된 관점을 관영매체부터 외교공관, 인플루언서, 댓글부대까지 동원하는 저들로부터 비롯된 일이지만 이런 일을 그저 몇몇 엇나간 유튜버들의 행위 정도로 안이하게 대응하는 우리의 잘못도 있다. 외국인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김치'를 'Kimchi'라 표기하지 않고 'Pao cai(파오차이)'라 표기한다면 그 문제는 지금의 '전파 공정'에 일종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문화가 자신들 것이라고 가짜정보를 쏟아내고 있는 중국의 '전파 공정'의 실태는 너무 황당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정부와 관영매체, 인플루언서 그리고 댓글부대까지 동원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방송에서도(특히 외국인 출연이 잦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 문화를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장면에서 반드시 우리식 표기를 먼저 얘기하는 일은 중요해지고 있다.

 

<윤스테이>에서 윤여정이 팥죽과 떡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에 정중함과 더불어 분명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단지 이 장면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최근 tvN <온앤오프>에 영화 <미나리>의 한예리의 출연 내용 중 살짝 들어간 윤여정의 외신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된 것 역시 바로 그런 '정중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신의 질문에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그 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사람이고 한국배우예요.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이고 싶습니다. 배우들끼리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칭찬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네요."

 

자신을 메릴 스트립에 비교해 상찬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면서도 윤여정은 자신이 윤여정이라는 한국배우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런 정중하면서도 분명한 자신감은 최근 들어 글로벌 사회에서 점점 주목받고 있는 우리 문화가 나가야할 방향이다. 그것은 '국뽕' 같은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면서 갖는 자신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떡국은 떡국이고, 팥죽은 팥죽이며, 김치는 김치이고 윤여정은 윤여정이다.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배우가 됐지만 윤여정은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들에게 엄마, 할머니로 불리며, 귀여운 농담을 던지는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이 들었다고 나이든 티 내지 않고, 유명해졌다고 유명한 티 내지 않지만, 자신을 자신 있는 그대로 가치 있다 여기는 자신감을 잊지 않는 사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어른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그 나라의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할 게다. 거짓으로 떼쓴다고 문화대국이 되는 게 아니라.(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