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찐서유기'냐 '찐경규'냐, 사실 1020세대에게 답은 정해져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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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서유기'냐 '찐경규'냐, 사실 1020세대에게 답은 정해져 있다

D.H.Jung 2021. 3. 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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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사나이'에 이은 '김계란의 찐서유기'가 카카오TV에 시사하는 것

 

김계란은 어느새 그 이름 석 자만으로 그가 내놓는 콘텐츠에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 됐다. 지난해 거센 논란과 함께 유튜브 방송을 중도에 멈췄던 <가짜사나이> 시즌2는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지만 김계란이라는 기획자이자 독보적인 캐릭터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가짜사나이> 시즌1이 처음 공개됐을 때 대중들을 놀라게 했던 건 기존의 유튜브 콘텐츠들이 대부분 1인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가는 일상 방송이었던 것과 달리, 여러 크리에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만들어낸 블록버스터급 웹예능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제작비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에 턱없이 적은 규모지만, 웹예능으로 보면 블록버스터급이었던 것. 하지만 그 콘텐츠의 파장이나 영향력 그리고 실질적인 수익성은 훨씬 높았다.

 

김계란의 기획력이 돋보였던 건 그것이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웹예능만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는 점이었다. 그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을 패러디했다. MBC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해 내놓은 <가짜사나이>는 그 패러디를 통해 지상파 예능이 가진 리얼리티의 허구를 오히려 풍자했다. <가짜사나이>라고 했지만 <진짜사나이>보다 더 리얼한 군대 훈련 상황을 담아냄으로써 가짜와 진짜를 뒤집는 리얼리티를 보여준 것. 물론 너무나 리얼했던 게 가학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지만.

 

아마도 <가짜사나이> 논란은 그런 걸 의도한 게 아니었던 김계란에게는 적잖은 충격과 상처를 주었을 게다. 하지만 그는 역시 기획자였다. 바로 그런 자신의 상황 또한 콘텐츠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피지컬갤러리로 몸도 마음도 지쳐 귀농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것이 <찐서유기>라는 귀농예능 콘텐츠로 이어졌다.

 

눈치 챘다시피 <찐서유기>는 나영석 PD의 <신서유기>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여기서도 그는 기존 예능과 일종의 비교지점이자 대결구도를 세우고, 자신이 만드는 웹예능이 '찐'이라는 걸 내세운다. '진짜' 대신 '가짜'라 이름 붙이며 도발적인 패러디를 했던 김계란은 이제 '찐' 예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 선언한다.

 

그는 이번에도 이미 저마다의 열광적인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들을 기획에 참여시켰다. 사실상 <가짜사나이>의 탄생을 불러일으킨 공혁준(그는 여기서 저팔계 캐릭터를 맡았다)이 이번에도 함께 했고, 뭐든 직접 뚝딱 뚝딱 만들어 심지어 워터슬라이드까지 만들어내는 콘텐츠로 유명한 집나온 부식과, 요리하는 유튜버로 굳이 사먹는 게 훨씬 편한 요리를 직접 해놓고는 "사드세요 제발"하는 멘트로 유명한 승우아빠가 참여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펼쳐지는 <찐서유기>의 이야기는 딱히 정해진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현장에서 부딪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마치 <인간극장> 같은 한가로운 오프닝 음악에 특유의 번득이는 대머리와 휘날리는 가짜 수염을 달고 자연 속에 몸을 던지고 있는 김계란은 어딘가 자연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집나온 부식과 김계란이 아궁이를 직접 만들고 한겨울 계곡에 입수해 엉뚱하게도 킹크랩을 잡아와 그 아궁이에 얹은 솥단지에 승우아빠가 요리를 해먹는 첫 회는 나영석 PD가 했던 <삼시세끼>와 <신서유기>를 김계란식 '찐' 체험으로 보여준다. 뜬금없이 2회에는 철원군청 군수님이 찾아오고 3회에 말을 키우겠다며 승마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는 김계란의 모습이 등장하며 4회에는 얼음물 산메기 매운탕을 해먹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실 대단할 것 없는 일상 체험의 이야기들이지만, 김계란 특유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여기에 간간히 개그콤비처럼 웃음을 만드는 공혁준과의 토크가 담기는데다,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집나온 부식과 승우아빠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소소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라 한번 보면 그 일상을 계속 함께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김계란의 찐서유기>는 김계란이라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그 특징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기획자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 영상이 오리지널로 선공개 되고 있는 카카오TV(시차를 두고 유튜브에도 방영되지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웹콘텐츠라는 새로운 세계에 야심차게 뛰어든 카카오TV가 기성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기성 미디어 출신의 PD와 기획자들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교해보면, 김계란의 콘텐츠는 너무나 가볍지만 가성비가 뛰어나고 기성 콘텐츠들과 차별화되는 면들을 보여준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지금의 10대, 20대 유튜브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이경규와 김계란을 놓고 누가 나오는 콘텐츠를 더 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굳이 가성비 없는 선택으로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봤던 영상들을 웹으로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김계란이라는 기획자가 툭툭 던져놓는 콘텐츠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사진:카카오TV, 피지컬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