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올림픽 중계,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
스포츠 중계만큼 시대에 민감한 것이 있을까. 정확한 분석과 재미있는 해석, 무엇보다 침착한 어조로 시청자들에게 신뢰와 재미를 동시에 주었던 고 송인득 캐스터가 그리웠던 분이라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경기에 대한 정보를 주어야할 캐스터들이 고함과 감탄사만 날리고, 해석의 재미를 제공해야할 해설자는 방송에 부적격한 언변을 쏟아내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 중계를 해주는 TV의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실수와 해프닝들이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TV 뉴스 속의 아나운서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추고 개인기를 보여주는 세상이 아닌가. TV가 보도의 신뢰성보다는 재미있는 방송에 더 치중하고 있는 요즘, 베이징 올림픽이 보여준 스포츠 중계의 비전문화는 어쩌면 이미 예고되었던 일일 것이다.
스포츠 스타의 해설, 방송은 익숙하지 않아도 돼
물론 레슬링 중계 해설에서 막말을 한 심권호처럼 심한 경우는 문제가 되겠지만, 대체로 스포츠 스타의 해설이 갖는 익숙하지 않은 방송멘트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스포츠 스타의 해설에서 어떤 깔끔한 방송을 요구하기보다는, 거칠더라도 그들만의 경험을 통한 실질적인 경기 해설에 더 시청자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지난 월드컵 중계에서 차범근-차두리의 축구중계를 통해 그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공중파 몇 개가 신비적이고 권위적인 지위를 가졌던 과거에는 방송 비전문가(그들이 스포츠 전문가라 해도)의 방송 출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날 것이라도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UCC시대다.
추성훈 유도 해설위원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에도 불구하고 유도 해설에 투입되고, 왕기춘 선수가 결승에서 시작하자마자 한판승으로 졌을 때 어떤 해설을 하기보다는 그 아쉬움을 침묵으로 표현했던 것은 과거라면 방송사고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성을 중심으로 보는 UCC시대에 이런 것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유의 입담으로 경기장에서 보여주었던 빛나는 경기를 해설자로서도 보여주었던 임오경 핸드볼 해설위원이, 여자 핸드볼팀이 노르웨이에 지자 눈물을 흘렸을 때, 그걸 보던 시청자들은 기꺼이 함께 울어주었다. 진정성과 막방송은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이제 TV의 스포츠 중계가 가진 얼굴은 화장 잘먹은 앙상한 방송보다는 화장기 없어도 풍성하고 진실이 있는 방송을 요구하게 되었다.
월드컵 축구의 신문선, 올림픽 야구의 허구연
그렇다면 전문 해설위원들은 어떨까. “골~ 골이예요!”하는 특유의 유행어를 만들어낸 월드컵 축구에 신문선 해설위원이 있었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는 허구연 해설위원이 있었다. 물론 허구연 해설위원의 대만전에 벌어진 방송사고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방송사고 이후 나타난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은 전문 해설위원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을 잘 포착하고 있다. 방송사고를 듣고도 네티즌들은 “허구연 해설위원의 ‘솔직한 해설(?)’이 좋다”며 “실제 방송에서도 반말만 하지말고 그렇게 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던 것.
대중들이 전문 해설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양가적이다. 그 확고한 권위와 신뢰성 있는 해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흥을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벌어진 권위의 해체에 대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방송사고를 ‘솔직한 해설’로 읽는 대중들은 그만큼 전문성 있는 해설자의 통상적인 해설이 아닌 좀더 진솔한 해설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연실 소리를 질러대는 SBS 배기완 캐스터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방송사고와 솔직한 해설은 그만큼 가까워져있는 상황이다.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
이것은 지금 TV가 대중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써 ‘방송사고’에 가까운 생방송 연출을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무한도전’팀의 올림픽 보조해설자 투입은 이제 스포츠 중계가 정보 전달을 넘어서 모험적인 도전을 통해 오락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UCC 같은 영상에도 끄떡없이 적응된 지금 세대라면 이러한 스포츠중계의 오락화는 환호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스포츠중계를 하나의 보도로서 받아들이는 세대라면 “방송이 장난이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위 해체의 시대, 이미 뉴스를 꿰차고 있던 TV 속 아나운서들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유연해졌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가 보여준 조금은 정신 없고, 산만한 방송은 지금 TV라는 권위를 가진 매체가 어떻게 하면 지금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올림픽 중계가 깔끔한 방송을 포기하는 대신, 진정성을 담은 중계를 선택한 것은 지금의 TV의 얼굴이 왜 점점 맨 얼굴에 가까워지는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지금도 TV는 방송사고와 진솔한 방송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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