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만화와 영화, 드라마, 그 ‘식객’의 다른 맛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만화와 영화, 드라마, 그 ‘식객’의 다른 맛

D.H.Jung 2008. 9. 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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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식객’의 맛, 그 이유

원작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많은 에피소드들을 과연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제대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였다. 원작 만화 ‘식객’의 묘미는 편편이 음식 하나하나로 끊어지는 그 독자적인 에피소드들의 상찬에 있다. 거기에는 고구마, 부대찌개, 김치 하나에도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따라서 만화로 ‘식객’을 볼 때 우리는 마치 뷔페식당에 온 듯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이 고기류를 좋아한다면 ‘쇠고기 전쟁’을 골라보면 되고, 토속적인 맛을 즐긴다면 ‘청국장’이나 ‘메생이’같은 음식편을 찾아 읽으면 된다.

‘식객’의 영화화는 왜 실패했나
하지만 이 만화라는 매체만이 갖는 찾아보고, 다시 보고 하는 묘미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된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그것도 두 시간 내외) 안에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주제를 향한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해진다. 영화‘식객’이 처한 불리함은 오히려 너무나 많은 반찬들 때문에 오히려 주요리가 묻혀질 수도 있는 ‘식객’만의 풍족한 재료에서 비롯된다. 어느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따라가자니 영화 전편으로 꿰뚫기에는 좀 약한 듯 싶고, 그렇다고 몇 개의 에피소드를 가져가자니 얼기설기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아예 형식 자체를 만화가 가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상업영화로서는 거의 시도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화화된 ‘식객’이 지나친 대결구도에 몰두하면서 오히려 ‘식객’만의 묘미였던 서민적인 밥상이 외면되었던 것은, 사실은 원작 만화의 진짜 맛이었던 이 소소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여러모로 ‘식객’의 영화화가 실패한 점은 그 매체의 다른 특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해내기가 쉽지 않은 ‘식객’ 원작 만화가 가진 에피소드별 구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드라마화된 ‘식객’, 어떻게 재료의 균형을 맞췄나
그렇다면 드라마화된 ‘식객’은 어떨까. 같은 영상으로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와 드라마는 그 매체 특성이 다르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 반면, 드라마는 시간적 흐름(몇 달 동안) 위에 에피소드들을 구성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리메이크의 관건은 따라서 드라마적 특성인 메인 뼈대(이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를 세우고, 그 위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살처럼 붙여놓는 작업에 있었다.

드라마‘식객’이 뼈대로 세운 것은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대결구도다. 드라마 초반부 거의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낸 ‘식객’은 그 위에 하나씩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살이란 성찬과 봉주의 대결 구도 밖에 있는 서민들과 음식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테드 오가 그리워했던 부대찌개에 관한 에피소드,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유순철)의 애끓는 부정(父情)을 얘기해준 게장 에피소드, 직업적인 편견을 넘어선 정형사 강편수(조상구)의 에피소드, 며느리와의 정을 녹차김치에 담아 얘기해준 치매할머니(김지영) 에피소드, 음식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는 걸 말해준 진수(남상미)의 어머니 에피소드 등등. 원작만화 ‘식객’이 가진 진짜 맛은 바로 이 살을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내는 깊은 맛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식객’의 첫맛과 중심 그리고 끝맛
너무 흔한 구도라 하여 식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 전통적으로 드라마 문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대결구도를 뼈대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쉬운 구도 덕분에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층의 눈을 일단 잡아끄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통해 ‘식객’ 본연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이 가지는 첫맛과 중심의 맛, 그리고 여운의 맛을 구성을 통해 연결해낸 것 같다. 첫맛은 대결구도로 강렬하게 잡아끌고 중심의 맛에서는 음식에 대한 성찬의 철학(서민적인 맛을 지키는)과 봉주의 철학(맛의 세계화)의 부딪침을 보여주며, 마지막 여운으로 음식이 가진 삶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것이다.

컨텐츠의 융복합이 문화의 한 경향이 되는 요즘, 이처럼 다른 매체는 거기에 담겨지는 컨텐츠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제목이라도 서로 다른 맛을 우리에게 선사한 ‘식객’은 만화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한번쯤 매체가 가진 융합가능성과 그 한계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