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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왜 구준표는 뜨고, 김철수는 못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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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남자는 심심해, 나쁜 남자가 좋아 왜?

착한 남자가 나와서 여자친구를 위해 곰 인형을 준비했다며 건넨다. 그런데 이 여자친구 표정이 영 심드렁하다. 그 때 갑자기 우락부락한 남자가 뒤가 다 터진 곰 인형을 들고 등장한다. “널 위해 주워왔다!” 사정없이 들이대는 이 남자에게 그러나 여자는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며 “넌 누구냐”고 묻는다. 그 때 흐르는 비의 노래. “나쁜 남자야!”

이 ‘개그 콘서트’에서 이승윤이 하는 ‘나쁜 남자’라는 코너는 요즘 트렌드인 나쁜 남자 신드롬을 거꾸로 뒤집어 웃음을 전한다. 이승윤의 말을 빌자면, “나쁜 남자라고 하면 멋있고 잘생긴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자기처럼 외모가 별로인 사람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속에는 나쁜 남자의 진면목이 숨겨져 있다. 나쁜 남자란 그저 성격 나쁘고 외모도 별로고 능력도 별로인 그런 남자를 일컫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남자는 성격은 좀 모나지만, 능력도 좋고 외모도 출중한 그런 남자를 말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같은.

그렇게 보면 지금껏 뜬 나쁜 남자들의 면면이 다시 보인다. 이른바 버럭 캐릭터였던 ‘외과의사 봉달희’의 천재 외과의사 안중근(이범수), ‘스포트라이트’에서 보도팀 캡으로 나왔던 오태석(지진희), 대표적인 나쁜 남자 캐릭터였던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까지. 이 나쁜 남자들의 공통점은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칭하는 ‘나쁜 남자’라는 말은 사실은 ‘능력 있는 남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다르게 표현해보면 ‘나쁘게 해도 될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남자’다. 구준표 역을 소화하고 있는 이민호는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이 그 캐릭터로 좀더 욕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왠걸? 그가 아무리 거만하고 못되게 굴어도 그것이 그의 타고난 재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또 그 능력이 서민인 금잔디(구혜선)에게 쓰여진다는 점이 오히려 더 매력으로 변하게 하는 지점이다.

반면 능력은 없어도 마음만은 착한 캐릭터는 어떨까. ‘스타의 연인’의 김철수(유지태)는 꽤 매력적인 지적 능력의 소유자지만, 여성 시청자들의 로망이 되지는 못한다. 스타인 이마리(최지우)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해온 과거의 여자친구를 매몰차게 끊지도 못하는 착한 그를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불황은 캐릭터에 대한 로망까지 바꿔놓는 것일까. 능력 없는(여기서 이 능력은 대체로 재력이 된다) 착한 남자의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충분히 나쁘게 해도 용서될 정도의 능력을 가진 나쁜 남자의 매력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