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시청자와의 협상 성공하려면

 

의문의 피리부는 사나이와 협상전문가의 대결. tvN <피리부는 사나이>의 첫 회는 독일의 전래동화인 피리부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그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펼쳐지는 광경은 무슨 일인지 건물을 점거하고 투쟁하는 사람들과 진압하는 전경들의 모습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이 한 장면은 이 드라마의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그는 우리 사회 현실 속에 존재하는 부조리가 잉태한 괴물이다. 그는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조종(?)했던 것처럼 그 부조리한 현실 앞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조종해 테러를 자행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스스로도 그 잘못된 현실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인물일 것이다.

 

그와 대결하는 협상전문가 주성찬(신하균)피리부는 사나이가 그의 연인을 인질로 삼게 만든 후 자신의 실체를 밝히라는 요구에 스스로를 영웅이 아니라 사기꾼이자 협잡꾼이라고 말한다. 필리핀에 억류된 인질들을 협상을 통해 구해내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희생하게 만들었던 사실을 토로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숫자로 봐왔던 자신을 털어놓으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인질극을 벌인 테러범에 의해 주성찬의 연인과 또 한명의 협상전문가가 될 여명하(조윤희)의 삼촌(그를 거둬 키워준)이 희생당한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첫 회가 보여준 건 결국 자신의 연인이 협상 과정에서 죽음을 맞게 되면서 각성하게 될 주성찬과 삼촌의 죽음을 통해 협상전문가로 다시 태어날 여명하의 등장이다.

 

tvN 장르 드라마가 그래왔듯이 <피리부는 사나이>는 영화적인 스케일의 영상과 빠른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협상전문가라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인물군의 소재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딘지 깊은 몰입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시그널>이 만들었던 그 몰입감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도대체 그 빠진 한 조각은 무엇일까.

 

첫 회여서 주인공인 주성찬과 여명하의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테러에 의해 희생당한 인물들의 면면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필리핀에 억류되어 협상과정에서 죽게 된 희생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그 희생자의 동생은 어떤 사람인지가 첫 회의 내용 중에는 빠져있다. 그저 전형화된 억류된 인물들과 테러범 정도로 그려진 것. 마치 주성찬이 협상 과정에서 인물을 숫자로 바라보는 것처럼, 첫 회의 희생자들은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주인공들을 설명하기 위해 내세워진 숫자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첫 회이고 도입부이기 때문에 희생자들까지 그 세세한 스토리를 그려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그널>이 그랬던 것처럼 <피리부는 사나이>가 더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내려면 주인공들인 주성찬과 여명하의 협상전문가로의 면면만큼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협상전문가의 영웅담에 그칠 수 있다.

 

사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주인공보다 더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은 악역인 피리부는 사나이거나 그로 인해 희생되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또 다른 희생자들일 수 있다. 그 한 조각이 좀 더 극명하게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는 거기서부터 다시금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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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공포로 다시 화제 된 영화들의 공통점

 

2013년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메르스 공포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발병자들이 많이 발생한 도시의 거리는 마치 유령도시가 된 듯 텅 비어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체접촉은 극도로 민감해진다. 물론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는 그 자체로도 우리를 압도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공포는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콘트롤 타워의 부재다. <감기>는 그걸 보여줬다.

 

'사진출처:영화 <감기>'

초기에 진압되어야 할 바이러스가 정부의 뒤늦은 대처로 인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삽시간에 나라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현재의 메르스 사태를 비슷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 소름끼친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함이라며 정보를 숨기려는 자들로 인해 오히려 더 큰 혼란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너무나 판박이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한 마음으로 대처해 나가도 모자랄 판이 아닌가. 하지만 지지율에나 더 신경 쓰는 자들은 쉬쉬하거나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찾기에 바쁘다.

 

<감기>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체들을 살 처분 하는 광경이다. 그 안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생명이 있지만 이미 그곳에 격리되고 버려진 이상 그들은 더 이상 생명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통제되지 않는 정부의 콘트롤 타워는 바이러스와 싸우기보다는 들끓는 민심들을 향해 오히려 총구를 겨눈다. 물론 이것은 영화가 연출한 극적인 장면일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것만 같은 공포를 준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이건 영화가 예언한 것인가 아니면 현실이 너무나 영화 같은 것인가.

 

우리네 재난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그 문제는 재난을 일으키는 장본인보다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의 엇나간 콘트롤 타워에서 비롯된다. 물론 봉준호 감독 스스로는 납치극이라고 얘기했지만 <괴물>은 적어도 관객들에게는 너무 많은 기시감을 준 영화였다. 분향소에서 가족들이 뒹굴며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가 상영된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진 그 많은 재난들을 통해 봐왔던 장면들이다. 작년 세월호 참사는 안타깝게도 그 많은 재난 속 장면을 또 다시 보여주었다. <괴물>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묻고 있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2012년 방영된 <연가시>에서도 감염의 공포만큼 더 공포스럽게 등장한 건 공권력의 무능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연가시보다 재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정부의 무능 때문에 죽어나간다. 정부의 콘트롤 타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위험에 처한 이들이 기대는 것은 가족뿐이다. <연가시>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가족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가장은 그래서 죽어라 뛰어다닌다.

 

그런데 이 <괴물>이나 <감기>, <연가시>가 공통적으로 가족들의 사투를 그려내고 있는 걸 보다보면 참담한 우리네 현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국가나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잘못된 콘트롤 타워가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포기하는 상황 속에서 이제 믿을 건 가족들밖에 없다는 이 절절함. 메르스 사태가 감염자를 병수발하다 또 다른 감염자를 낳으며 더 확산됐던 그 이면에는 이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절망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보건당국은 스스로 격리하라고 하고 스스로 손발을 씻고 개인위생에 철저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가급적 야외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뭘 자꾸만 하라고 하고 또 하지 말라고 하지만 과연 그들은 국민들을 위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가 예언한 건 재난 그 자체가 아니다. 그건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였다. 지금 이 정부의 자세는 마치 현실이 아닌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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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맘>의 무너진 학교가 더 가슴 아픈 건

 

MBC <앵그리맘>은 학교의 붕괴를 예고했던 드라마다. 썩어버린 재단과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이사장, 가진 자들은 대를 이어 잘못을 저지르고도 죗값을 받지 않는 행태,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아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학교 폭력에까지 손이 닿아 있는 조폭들, 심지어 학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교사까지. 이것이 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의 참담함을 그려내는 드라마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그러니 이 학교의 붕괴가 실제로 건물이 무너지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 하나도 급작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명성재단의 비리가 연루되어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별관을 신축하면서 지원금을 빼돌린 것. 결국 부실공사가 이뤄지고 건물은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진 건물이 상기시키는 건 그러나 무너진 학교의 현실만이 아니다. 그 학교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부터 썩어버린 빗나간 교권은 고스란히 건물에 깔려버린 학생들을 희생자로 내몰았다. 이것이 작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건 당연하다. 그 세월호 참사의 침몰한 배를 보며 우리는 심지어 국가의 침몰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후 제대로 된 조사와 사후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과정을 보며 지금은 사회 정의의 침몰을 떠올리고 있다.

 

사실 우리네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재난들을 다뤄왔다. 그리고 그 재난의 이야기들은 여지없이 그 원인으로 국가의 무능을 지목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떠올려보라.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괴물은 저 한강에서 출몰하는 그 괴물이 아니라 무능함만을 드러내며 통제력을 잃어버린 국가라는 괴물이었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에서도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재난은 결국 정부였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와 싸우는 시위대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이 영화 속에서 종합운동장에 수천 구의 시체가 쌓여(심지어는 아직까지 죽지 않은 생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처분 되는 장면이 그토록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국민을 호명할 뿐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정부의 냉혹함 때문이었다.

 

<앵그리맘>의 이야기가 뼈아픈 것은 최소한 이런 재난의 이야기가 최소한 벌어지지 않아야 할 공간으로서 학교마저 이제는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이미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수히 사라져간 꽃다운 학생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통해 현실이 되어버렸지만.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고 배가 침몰하면서도 여전히 이 재난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때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그저 덮여지며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앵그리맘>이 보여주는 것처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기득권들과의 결탁이 존재한다. 언제까지 이 재난의 위험을 방치하며 살아갈 것인가.

 

<앵그리맘>이 붕괴된 학교를 통해 상기시킨 세월호 참사의 아픈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또 어느 순간에 <앵그리맘>이 보여줬던 그 드라마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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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 고아성, 정성주 작가의 깊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고아성)은 놀라운 캐릭터다. 한인상(이준)의 아이를 가져 그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라는 상류층 괴물의 집에 포획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했고 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는지를 터득해간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언니 서누리(공승연)가 상류층 자제를 잡아 그 세계에 입성하려 했다가 그 소문이 찌라시에 퍼지고 망신만 당하게 되자 서봄은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서누리를 만나 따끔하게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최연희(유호정)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서정연)을 시켜 한정호의 업무 비서인 양재화(길해연)에게 그 물의를 빚게 만든 상류층 자제의 집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한정호에게 이야기를 흘리게 한다.

 

결국 한정호가 그 상류층 자제의 집안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태는 반전된다. 즉 서누리가 그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상류층 자제가 서누리를 쫓아다닌 사실로 이야기가 둔갑한 것. 이 소문은 다시 찌라시를 타고 퍼져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집안의 비서들은 아주 조금씩 이 작은 사모인 서봄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에게 자신은 시어머니와 달리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섬뜩한 면을 보이면서도 시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숙한 듯 행동한다. 이선숙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목격한 최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봄은 제가 뒤끝이 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하는 행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이 한정호라는 괴물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풍자해낸 것이라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는 이 슈퍼갑의 세계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을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은 자신을 대접해주는 척 하는 한정호 때문에 우쭐해하며 갑 행세가 주는 권력놀이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서누리는 동생을 질투하며 자신도 그 욕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유일하게 서봄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만이 이런 가족의 변화를 감지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서봄이다.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뒤에서는 엄숙한 어른의 얼굴로 비서들을 혼쭐내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보여주는 지적 능력을 통해 최연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한인상에게는 여전히 연인 같은 풋풋함을 보여주고 친정에는 애틋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서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녀는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생존본능이라는 데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친정 가족들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자각은 서봄의 변화를 만든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결국은 기대야할 한정호와 최연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티를 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깨우는 최연희에게 . 고졸 딸께요.”라고 말하는 어른 아이.

 

정성주 작가가 그리는 갑과 을의 세계는 거기 서 있는 인물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 그 위치와 시스템이 만드는 권력적 관계로서 그려진다. 즉 서봄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양가적 감정의 정체는 그녀가 을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갑의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실로 정성주 작가가 가진 세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서봄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아성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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