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가 들려주는 진정한 사과와 진정한 소통이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목소리의 형태>는 그 제목이 마치 미디어 이론의 제목처럼 이색적이다. 목소리는 청각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지만, 형태란 시각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담아내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진출처:영화<목소리의 형태>

영화는 니시미야 쇼코라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와 이시다 쇼야라는 왕따 경험으로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년이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소통에 이르는 그 과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전학 온 소녀 쇼코는 청각장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런 쇼코를 쇼야는 짓궂게 괴롭힌다. 

왕따 경험을 가진 쇼야가 쇼코를 왕따시키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쇼야는 쇼코에게서 자신이 왕따 당하던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고, 그래서 그런 왕따에도 늘 웃고 먼저 사과하는 쇼코를 보며 참을 수 없게 된다. 쇼코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그 무기력했던 시절의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쇼코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가 왕따의 주동자로 내세워지면서 그는 이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삶의 의미 같은 걸 찾지 못하는 쇼야는 모든 걸 정리하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정리를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쇼코는 도망치지만 소야가 수화를 하자 쇼코는 마음이 돌아선다. 수화를 통해서 소통하려는 쇼야의 진심을 읽게 됐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쇼코와 쇼야라는 두 인물의 소통이 이뤄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의 두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쇼’라고 똑같이 불리는 이름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게 되고, 똑같은 왕따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통(죄책감이든 상처든)에서 벗어나려 한다. 쇼야가 자살하려 했던 것처럼, 쇼코 또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쇼야는 쇼코라는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이 가진 절망감의 손을 잡아주고 그녀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화해에도 이르게 된다. 

<목소리의 형태>가 굳이 이렇게 딱딱한 연구 논문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건 소통이라는 것이 단지 목소리나 시선 같은 감각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쇼코와 쇼야 사이에 놓여진 소통의 장벽은 듣지 못한다는 청각 장애를 가진 쇼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쇼야 역시 쇼코가 전하는 마음의 소리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마음이 진정으로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신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걸 가로막고 있는 건 두려움이다. 처음으로 쇼야가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즐거움을 느끼며, “내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하고 자문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는가를 말해준다. 그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친구는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은 굉장히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지만 그래도 즐기려 한다고. 그녀는 고공에서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서 양손을 활짝 벌리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겉으로 나오는 목소리나 시선만으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영화는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쇼코는 결국 왕따 피해자였고 쇼야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왕따의 가해자였다. 그들은 모두 상처를 숨기고 또 죄책감을 숨긴 채 친구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이 과거의 기억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청산되지 않는다.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과가 이뤄지지 않는 한 과거를 덮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것이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쇼코를 둘러싼 쇼야와 그 친구들 사이의 변하지 않는 관계가 보여준다. 쇼코를 구한 쇼야는 자신이 그녀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사과를 구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진정한 소통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 첫 도입부분에서 자살하려던 쇼야가 이제는 자신의 분신같던 쇼코를 구하고 자신을 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목소리의 형태>는 추락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쇼야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려 하다가 물가에서 누군가 날리는 폭죽을 보며 그걸 포기한다. 쇼코는 불꽃놀이를 하는 축제 때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그 불꽃을 바라보며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한다. 마침 그걸 목격한 쇼와는 쇼코를 구하고 대신 자신이 떨어진다. 쇼야와 친구들은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쇼코의 필담 노트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자 쇼코와 쇼와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노트를 찾는다. 또 쇼와는 친구와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 뚝 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추락의 이미지가 가장 상징적으로 반복되는 장면은 쇼야와 쇼코가 늘 다리 위에서 만나 물고기에게 빵을 뜯어 던지는 장면이다. 물고기의 시각으로 날아온 빵은 물 위에 떨어지고 물고기는 그 빵을 기막히게 찾아 먹는다. 물고기는 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그 형태를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물 위로 떨어지는 그 진동을 느낌으로서 그걸 찾아 먹는다. 듣는다고 보인다고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진심이 전달되면서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순간 소통의 문이 열린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그 ‘가해자’의 자기변명처럼 오인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오해일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진정한 사과와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해자에게도 그렇지만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소통이 화두가 된 적도 없고, 또 냉각된 국제관계 역시 소통의 문제라는 점을 두고 보면 <목소리의 형태>는 그저 단순하게 바라볼 청춘 로맨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국가 간의 정서로 읽어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많은 소통 단절의 문제들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단지 말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사과가 열어 놓는 진정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법안 아이디어 넘쳐난 ‘무한도전’, 이대로만 된다면...

“교육 관련법은 저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직접 뽑을 수가 없어요. 직접 뽑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에서 청소년 참정권을 제안한 한 여학생은 적어도 교육감 선거에는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며 그런 자신들이 배제된 선거권에 대한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한 임신부는 평소 차량을 주차할 때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임신부 주차 편리법’을 제안했다. 임신부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차를 끌고 나가면 주차할 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내릴 때 배가 끼거나 긁힌다는 것. 그녀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임신부도 포함시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법안 제안에 담았다. 

한 국민의원은 항상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그런 뜻을 밝힌 적이 없다며 지역구 주민들과 국회의원이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른바 ‘국회의원 미팅법’을 제안했다. 국민의 의견을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고픈 마음이 그 안에서는 느껴졌다. 

‘국회의원 4선 방지법’도 눈에 띄는 법안 아이디어였다. 오래도록 연임하는 국회의원들과 새내기 의원들이 공정하게 선거를 하기가 쉽지 않고, 또 이렇게 새로운 의원들이 들어와야 다양한 의견이 담겨진 법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또 한 대학생은 학비도 어마어마한데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 주거비 역시 감당하기 어렵다며 ‘청년 주거 지원법’을 제안했다. 감옥 독방보다도 작은 고시원에서 청춘을 버텨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이 절절히 담겨진 법안 아이디어였다. 

국민들의 이러한 제안에 그 자리에 참여한 현역 국회의원들은 적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주민 의원은 “마지막쯤 되니까 꼭 한 마디씩 하고 싶어하시더라”며 평소 국민들이 얼마나 하고픈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이용주 의원은 “200분의 국민의원들이 300명의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고, 이정미 의원은 법안이 자신들을 위한 필요보다는 타인들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짚어내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꾸신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은 예능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문턱을 대폭 낮춰주었고 법안이라는 것이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함께 머리를 모을 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 자리가 현 국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법안이란 사실 국민들이 느끼는 힘겨움이나 갈증, 불만 같은 것을 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정미 의원이 밝힌 것처럼 우리네 국민들이 자신만의 문제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그 진심들이 느껴진 부분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썰전’이 다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낸다는 건

“늘 <썰전>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썰전>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선생님의 주장과 유시민 작가의 대비된 견해는 한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분이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끌 대한민국은 바로 이 <썰전>처럼 서로간의 견해가 좀 다르더라도, 충분히 격렬하게 논쟁할 땐 논쟁하더라도 서로 인격에 대한 신뢰는 갖고 있는 그러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서 도전합니다.”

'썰전(사진출처:JTBC)'

JTBC <썰전>에서 “마지막으로 왜 본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심층토크를 위해 출연한 대선후보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칭찬을 해주는 것에 대해 유시민 작가와 김구라는 몸 둘 바를 모르는 표정을 보였다. 유시민 작가는 “낯 뜨겁네요”라며 웃었고 김구라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 ‘부끄러 부끄러’라는 자막이 붙었다. 

사실 안희정 지사의 이 마지막 이야기는 자신이 차기 대선후보로서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가를 짧게 정리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는 거꾸로 지금 <썰전>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가를 말해준 대목이기도 하다. 안희정 지사의 말대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때론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격렬하게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논쟁하면서도 또 지나고 나면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우리가 본 적이 있었던가. 

특히 대중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된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바로 국회에서 때때로 벌어지는 드잡이가 아니었던가. 국민을 대표해 서로 다른 여러 견해들을 피력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협력하라고 뽑은 일꾼들이 볼썽사납게 물리력을 동원하고 패거리의 행태를 보일 때, 대중들이 혀를 차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런 정치에 대한 혐오와 그로 인해 생기는 무관심조차 오히려 조장해왔던 것이 정치권이었다. 그런 무관심이야말로 저들끼리의 세상을 공고히 해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썰전>이 얼마나 시사나 정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안희정 지사가 말한 부분이다. 그렇게 혐오스럽고 보기 싫어 정치의 정자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리던 그 정치를 다시금 보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보여주듯이 서로 다른 견해로 논쟁이 오가지만 그래도 그 좁은 삼각 테이블을 박차고 떠나지 않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는 일. 그러면서 다른 사안들에 있어서는 또한 공감하는 모습도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일. 그런 것들이 <썰전>이 해온 그 어떤 날카로운 분석보다 중요한 일들이다. 

<썰전>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현재 ‘정상화’의 시간을 갖고 있는 <무한도전>이 잠시 쉬고 있는 상황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것. <썰전>은 이 좋은 소식을 알리며 <무한도전>을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표현했다. 유시민 작가는 “친구가 쉬고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해야죠.”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다는 미나엄마가 보낸 팬레터에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경쟁하더라도, 때론 의견 대립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인격적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일.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만들어내고 있는 <썰전>의 광경들은 그래서 안희정 지사의 말처럼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한 장면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광경만으로도 우리는 그간 혐오에서 무관심으로 이어졌던 정치를 다시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다. 미나엄마의 말처럼.

<무도>의 꺼지지 않는 현실 인식, 이러니 국민예능이지

 

이걸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요.”, “뜨거운 데 만질 수 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 7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던지는 말들이 새삼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촛불이다. 정답을 확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조금은 숙연해졌다. 정준하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아이의 표현에 그게 중의적인 표현이었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아이가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라는 말 하나일 것이다. “이걸 보면 박수를 친다는 건 아무래도 생일을 떠올리는 광경일 테고,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건 바람 앞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한도전>이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 그걸 퀴즈로 낸 건 이렇게 에둘러 촛불집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른바 산타를 뽑는 미션을 가진 산타 아카데미라는 특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현실 인식을 놓지 않았다. 산타복을 입은 멤버들의 가슴에는 그 빨간 산타복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는 예고된 대로 산타 아카데미가 본격화되며 한바탕 몸 개그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막을 통해서건 특별한 상황들이 연출되건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한 의식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게 그 노란 리본 속에 담겨있었다.

 

알고 보면 북극곰의 눈물특집 역시 곳곳에 사용된 자막의 표현들은 현 시국에 대한 정서들을 반영한 것들이 있었다. ‘분노라는 단어도 사지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해를 건너지 못하는 북극곰들의 기다림은 마치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바다가 조금씩 얼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후일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분 나쁜 날<기분 좋은 날>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여러모로 현 시국의 대중정서를 제목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북극곰을 보고 돌아온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엉뚱하거나 무지한 답변을 반복하는 그들을 세워두고 무시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종의 상황극으로 그들을 기분 나쁘게하는 콘셉트.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유재석의 멘트로 시작한 코너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예고한 2017년 신년 프로젝트 국민내각특집은 <무한도전>이 지금의 시국에 던지는 한바탕 사이다 예능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소개한 국민내각특집에 대해서 유재석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어떤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 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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