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250>의 소통 도전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

 

힘겨운 모내기 끝에 새참으로 먹은 잔치국수가 너무나 맛있었던 프랑스에서 온 니콜라는 애써 안 되는 언어소통으로 그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그게 뭘 묻는 건지 알 수 없이 이기우는 거의 멘붕이다. 보다 못한 동네 아줌마까지 나서지만 역시 공통된 언어 없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불통이 되진 않는다. 서로가 말하는 걸 애써 이해하려 노력하고 표현하려 하기 때문에 그 의지만으로도 어떤 소통의 지점을 만나게 되는 탓이다.

 

'바벨250(사진출처:tvN)'

그렇게 몇 분을 오리무중 언어의 늪(?)에서 헤매던 중, 드디어 니콜라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동네 아줌마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는 잔치국수라는 그 음식의 이름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있다면 별 것도 아닌 일이고, 그것이 예능이 될 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벨250>이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것이 예능이 된다. 외국인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신개념 예능 프로그램. tvN <바벨250>이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외국인 예능이다.

 

2년 전만 해도 외국인 예능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처럼 다가왔다. 물론 외국인들이 방송에 출연한 건 꽤 오래 전일이다.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 같은 외국인들이 방송에 나와 독특한 사투리나 발성으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주었다. 그러다 MBC <진짜 사나이> 같은 군대 체험 프로그램에 샘 해밍턴 같은 외국인이 등장하고, JTBC <비정상회담>이 스타 외국인들을 배출하면서 외국인 예능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언 2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예능은 과거만큼 뜨겁지 않다. 한 때는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이문화를 체험하고 여행을 떠나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들도 나왔지만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비정상회담>은 여전히 뜨겁지만, 새로운 외국인들로 교체를 시도하는 것처럼 무언가 변화를 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니 <바벨250>이라는 외국인 예능이 조금은 트렌드에 늦은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바벨250>은 지금껏 해왔던 외국인 예능과는 사뭇 다른 면면을 보여줬다. 한국말이 유창한 외국인들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소통 자체가 안되는 외국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바로 그 언어로 안되는 소통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이 예능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국수하나에도 그 소통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사실 다랭이논에서 일을 하고 그 보상으로 새참과 닭 다섯 마리를 주는 식의 미션은 이미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방식들이다. 하지만 <바벨250>이 주목하는 건 그런 미션 자체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고 함께 해나가는 이들의 소통 과정이다. 닭 다섯 마리를 가져와 닭장을 짓는 과정에서 한 팀은 그걸 완벽히 이해하고 함께 작업에 돌입하지만 다른 팀은 닭은 당장 잡는다는 줄 알고 끔찍해하다가 나중에야 그걸 이해한다. 이런 소통의 과정은 틀에 박힌 미션도 달리 보이게 만들어 준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건 아마도 소통이라는 것이 언어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게 아닐까. 언어가 달라도 또 인종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일. <바벨250>이 가벼운 예능의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갈급한 우리네 현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잔치국수한 마디로 이처럼 모두가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능이라니. 외국인 예능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바벨250>의 도전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 KBS드라마가 고민해야할 것

 

<태양의 후예>의 저주인가? 심지어 KBS 드라마의 부활이라고까지 얘기됐던 그 분위기는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후속작으로 기대했던 <국수의 신>10%를 넘기지 못하고 7%대에 머물러 있다. 월화의 시간대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최고 시청률 17.3%(닐슨 코리아)까지 내며 종영했지만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뷰티풀 마인드>는 고작 4%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다 예상한 대로 잘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의 경우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은 의외의 결과를 보인 작품들이다. 잘 만들었지만 시청자들이 그만한 호응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은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걸 말해준다.

 

<국수의 신>은 복수극이다. 복수극에서 역시 중요한 건 악역이지만, 또한 그만큼 중요해지는 게 그 악역을 뛰어넘고 고구마 전개를 사이다로 풀어내주는 주인공의 역할이다. 이 드라마에서 악역 김길도(조재현)를 맡은 조재현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눈 하나 까닥 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 희대의 악역 캐릭터는 조재현의 묵직한 연기가 얹어져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무명이(천정명)는 그만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 통쾌함을 선사하는 복수극의 진면목이 느껴져야 하는데, 어째 김길도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는 인상이 짙다. 천정명의 연기도 조재현만큼의 존재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수의 신>은 악역의 힘으로 흘러가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들은 결코 요즘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통쾌함을 기대했건만 잦은 패배와 복수에 대한 다짐만 반복되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지치는 건 당연지사다.

 

<뷰티풀 마인드> 역시 완성도는 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다. 공감 제로의 천재외과의라는 설정은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적 설정 속에서도 공감과 소통이 인간의 증명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를 담아낸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는 의학드라마에 스릴러라는 장치를 넣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섬뜩함마저 느껴지게 만드는 반전 스토리는 물론 흥미진진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지금의 시청자들이 의학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건지는 미지수다. 최근 시청자들은 소름끼치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연기의 문제는 여전히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주인공인 이영오 역할의 장혁은 늘 연기가 비슷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에서도 듣고 있다. 상대역할인 계진성(박소담)은 캐릭터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박소담은 영화에서는 대단한 연기를 보였지만, 드라마에서의 연기는 어딘지 어색한 면이 묻어난다.

 

결국 <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도 괜찮은 완성도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외면 받는 상황이다. 게다가 KBS라는 플랫폼의 충성도 높은 시청층들이 이러한 스릴러 장르물들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감안해보면 이들 드라마들이 왜 힘을 내지 못하는가 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드라마들은 작품의 내적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이 대중들의 정서다. 즉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완성도와는 별도로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간만에 <태양의 후예><동네변호사 조들호>로 부활의 단초를 잡은 KBS드라마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KBS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지만.

<아버지와 나> 바비네가 보여준 세대 소통의 비법

 

바비와 아버지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거리를 산책하며 끝없는 잡담을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코에 맡아지는 대로 들리는 대로 모든 게 화젯거리가 된다.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반응이다. 바비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반짝반짝 빛나는 형형색색의 불빛을 입은 카페를 보며 너무 예쁘다고 말하고, 어디선가 맡아지는 냄새에 이게 무슨 냄새야?”하고 묻는다. 키가 스케이트 보드 정도밖에 안 되는 꼬마가 그 보드를 타는 모습에 엄지를 척 세워주고, 길거리에서 팝핀을 하는 청년에게 눈길을 던지며 환호를 해준다.

 

'아버지와 나(사진출처:tvN)'

tvN <아버지와 나>가 보여준 무려 두 시간을 그렇게 주제 없는 환호성과 반응들로 가득 채워진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 스스로도 잡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목적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은 대화를 하지 않고도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흘러가는 것들을 함께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아들이 춤을 춰도 아버지는 그저 씩 웃을 뿐 뭐라 하는 법이 없다.

 

제작진도 궁금했을 게다. 이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그 흔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지자 아버지는 잔소리 하는 걸 싫어한다며 그 이유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그건 내 욕심이라고 한다. 답답해도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이고 그건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별거 아닌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몇 십 년을 더 산 아버지 입장에서 잔소리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걸 실천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때는 책을 빌어서 말해준다고 한다. 직접적인 말은 잔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산보하며 나누는 잡담 같은 공감의 경험처럼 책은 좋은 이야기를 강권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공유하는 경험으로 제시해준다. 세대 간에 이만큼 좋은 소통 방법이 있을까.

 

그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시행착오는 아버지도 한다. 무작정 야경이 멋있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찾아가기로 나선 바비네 부자는 길을 헤매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로 접어든다. 처음 가는 길. 그들을 따라나선 제작진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지만 정작 바비네 부자는 그런 어두컴컴한 곳으로 가게된 것에 대해 그다지 탓을 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의외로 그 곳에서 저 아래 펼쳐진 호놀룰루의 놀라운 야경을 발견하게 된다. 바비가 말하는 것처럼 야경은 마치 물결치는 것처럼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바람의 존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두 사람은 그 경험이 소중하고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엉뚱한 시행착오처럼 오게 된 깜깜한 길 위에서, 오히려 그곳이 깜깜하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야경을 발견하고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즐겁고도 소중한 경험일까.

 

다시 도시로 돌아와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놓고 먹는 자리에서도 아들이 손으로 마구 토핑을 집어 피자에 얹어 먹어도 아버지는 묵묵히 자신의 파스타를 자신의 방식으로 먹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도 스스로에 대한 것일 뿐 상대방에게 생각을 강권하는 건 아니다. 미술을 하는 아버지와 음악을 하는 아들은 서로의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족을 이야기한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충분히 공감대를 갖는다.

 

요즘처럼 세대 갈등이 심각해진 시기에 바비네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은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나이 좀 먹었다고 또 좋은 얘기를 건네겠다고 하는 어른의 말은 어쩌면 바로 그런 자세와 위치 때문에 젊은 세대와 소통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 느낌을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결국 소통의 물꼬는 조금은 나이를 더 먹은 세대가 열어줘야 한다. 부자관계라는 틀을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친구관계를 지향하는 것. 거의 정답처럼 보이는 바비네의 소통법이 주목되는 이유다

<동상이몽>, 서비스업에 대한 잘못된 편견 깨준 부녀

 

사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무례를 범할 때도 있다. 그것이 무례인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현실이 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저지르는 일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그것이 무례를 넘어서 끔찍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SBS <동상이몽>에 출연한 네 가지 일을 가진 아빠와 밤마다 콜 받는 일을 도와주는 딸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딸의 불만은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하는 대리운전의 콜센터 직원(?)이 되어야 하는 딸의 버거움. 주말도 쉬지 못하고 밤 12시까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콜을 받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게다가 표현이 서툰 아빠는 딸들에게 제대로 마음 표현을 못하고 있었고, 힘겨운 노동을 늦은 밤 술 한 잔으로 풀면서 딸을 억지로 깨워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여진 아빠의 현실은 너무나 힘겨웠다. 취객들은 나이가 많다고 대뜸 반말을 하고, 나이가 적은 이들도 자신이 돈을 낸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기 일쑤였다. 마치 쌓인 스트레스를 풀 듯 대리운전을 하는 아빠에게 욕설을 늘어놓기도 하며, 반말로 똑바로 하라는 아들 뻘 손님 앞에서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빠는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일하고 있었다.

 

무례한 사회였다. 정신과 전문의인 양재진의 말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 돈을 낸다는 이유로 함부로 막 해도 된다는 건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우리네 어두운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무례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아빠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노여움 푸시고 이해해 주십쇼. 다음부터는 잘 지킬게요.”라 말하고 있었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 여기에 대해 양재진 전문의는 돈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지 영혼까지 사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로 듣던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딸은 아빠의 이런 현실을 말로써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화면을 통해 직접 본 딸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딸은 속상하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는 아빠의 마음은 온통 딸들뿐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이발소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역시 나중에 딸들이 결혼을 해 나가면 손 벌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동상이몽>은 아빠와 딸의 입장을 화면을 통해 직접 보여줌으로써 화해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동상이몽>은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아빠를 통해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혹여나 했을 작은 말들조차 어쩌면 크나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감시켰다.

 

이번 이야기가 <동상이몽>에서 특별하게 다가온 건 바로 이 점이다. 지금껏 <동상이몽>은 가정 내에서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보여주고 그것을 소통에 이르게 하는 길을 모색해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는 지점을 드러내줬다는 것. <동상이몽>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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