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소통방식, 거창할 것 없이, 즐기듯

 

NBC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한 장면. 한 모자가게 직원들이 누군 승진하고 누군 못했다는 얘길 하며 풀이 죽어 있을 때 그걸 한 방에 날려 보낼 방법이 있다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뒤에서 싸이와 똑같은 분장을 한 남자가 나와 어색한 한국말로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말춤을 춘다.

 

'강남스타일'(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어딘지 루저들 같은 찌질함이 느껴지는 그들의 상황과 하소연이 반복되고 그 때마다 기분을 업(up)시켜주는 <강남스타일>을 듣기 위해 그들은 연실 버튼을 누른다. 유재석과 노홍철과 똑같은 분장을 한 남자들의 춤(뮤직비디오에서 봤던)이 덧붙여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그러다 터보 버튼을 누르자 진짜 싸이가 유유히 걸어 나온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 속에서 그는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친 후 말춤을 춘다.

 

이것은 그들의 표현대로 ‘한국의 랩 센세이션’, 싸이가 미국인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다. 뭔가 다운된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즐거운 음악과 춤이 거기에 있다. 콩트 속에서 한 직원은 이 노래와 춤을 이렇게 표현했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멋진 것 같아." 이것은 미국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크쇼 중 하나인 NBC '더 엘런 드제너러스 쇼'에서 그가 보여준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객석까지 뛰어든 싸이는 모든 관객들과 함께 신나게 말춤을 추었다.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들썩들썩 했다.

 

싸이의 성공을 분석하는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물론 그 글들도 대부분 일리가 있지만) 진짜 성공요인은 그 솔직하고 명쾌한 즐거움에 있다. 굳이 거창하게 ‘한류’ 운운하거나, 국가 경쟁력, 경제적 효과 같은 걸로 포장될 수 없는, 있는 그대로를 툭 털어놓고 열정을 다하는 그 쿨한 즐거움, 그리고 한바탕 놀자는 솔직함에 미국인들까지 열광하고 있는 것.

 

이런 점은 기획되고 연출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전부터 싸이를 통해 익히 봐왔던 것들이다. 싸이는 노래 ‘챔피언’을 통해 이미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싸이가 자신의 개성을 <강남스타일>이라는 전 세계 보편적인 리듬에 실어 최대치로 끄집어냈기 때문에 그의 지금의 성공이 있는 것이다.

 

싸이에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특유의 ‘흥’에 있다. 젠 체하지 않고 기꺼이 온 몸을 던져 보는 이를 열광케 만드는 우리네 광대들이 보여줬던 그 서민적이면서도 어깨춤이 절로 나게 만드는 ‘흥’.

 

싸이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을 소개하거나 멋지게 포장하기보다는 대중들에게 ‘놀자’고 손을 내민다. 미국의 유명한 쇼에 나와서도 그가 줄곧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거다. 그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말춤을 가르치면서 했던 말, '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싸구려처럼(Dress Classy, Dance Cheesy)!'이란 말은 그래서 싸이의 소통 방식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잘 차려입고 싶은 욕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고 싶은 욕구. 싸이 자신이면서 어쩌면 국가나 인종을 넘어서 누구나 갖고 있을 감성.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한류 한류 하며 무언가 포장하려 하고 거창하게 우리 입으로 떠들어댈 때 진정한 문화적 소통은 어쩌면 더 멀어진다. 소통을 상품분석의 마케팅처럼 생각할 때 그것은 진솔함과 소박함(혹은 진정성) 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잃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소통에 실패한다. 싸이가 전 세계적으로 소통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먼저 한류라는 껍질로 포장하고 떠들어대기보다는 그 격식을 파하고 ‘놀아보자’고 손 내민 솔직함과 독창성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문화적 소통은 국가가 주관하거나 어느 한두 대형 기획사가 기획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솔직함과 독창성이 자유롭게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더 다양한 문화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 많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다양성 속이야말로 더 많은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싸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세계인들이 한국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고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어딘지 다운(down)된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지극히 한국적인 멋과 흥을.

2001년∼2012년, 싸이에게 어떤 일이...

 

싸이는 이미 2001년부터 준비된 가수였다. 당시 발표한 데뷔곡 ‘새’는 압도적인(?) 비주얼에 반전의 쾌감마저 주는 에너지가 넘치는 춤과 끼, 게다가 독특한 안무와 엽기적인 가사까지 싸이만의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세계를 벌써부터 펼쳐 보여주었다. 당대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 맞물려 싸이는 단박에 엽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후로 마약사건 및 군복무 문제 등 몇몇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가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싸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이미 준비된 자의 기다림이었다. 그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이'(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2012년 그 시대가 열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발표 후 몇 주만에 미국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곡이 되었다. ‘CNN’, ‘LA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허핑턴포스트’ 같은 매체들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한 아침방송이 진행자는 방송 도중 ‘강남스타일’의 안무인 말춤을 시연하기도 했다. 로비 윌리암스, 조쉬 그로반, 티페인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SNS와 블로그에 잇따라 ‘강남스타일’을 극찬하는 글을 올려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온라인에 쏟아져 나오는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들이다. 실제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물론 ‘강남스타일’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나온 곡이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에서 갑자기 ‘빵 터져버린’ 사건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저 우연한 행운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2001년 데뷔부터 2012년 사이의 흐름을 싸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012년의 싸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독특한 세계(이미 데뷔연도부터 준비된)가 하나하나의 음악적인 환경을 만나면서 드디어 폭발한 것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먼저 2001년도에는 없던 SNS 환경이 그렇다. 만일 당대에 ‘강남스타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미국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다. SNS 환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첫 번째는 SNS 환경으로 인해 다양성의 세계가 열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K팝이 해외에서 주목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주류 음악에만 머물지 않게 된 사람들은 무언가 색다른 음악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서 K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이었다.

 

싸이 같은 독특한 가수가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게 된 이유도 어찌 보면 이 다양성의 시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다양성의 세계에서 발견된 K팝이 어느 정도 해외에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가 눈에 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즉 두 번째로 SNS 환경으로 인해 촉발된 K팝이 2012년의 싸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국내에서 생겨나고 있는 B급 정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과 공감 역시 2012년의 싸이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작금의 개가수(개그맨+가수)들이 만들어낸 B급 정서의 폭발은 뭘 해도 잘 바뀌지 않는 답답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그 속에서 자기비하를 하거나 자기를 포함시켜 풍자해버리는 이 키치적 정서는 개가수들을 만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의 각종 가요제들이 열어 놓은 물꼬가 B급 정서 가득한 개가수들의 세계로 이어진 것. 본래부터 B급 정서의 본좌였던 싸이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남스타일’이 겨냥했던 것이 바로 이 자신의 장기였던 B급 정서로의 복귀였으며 이것이 엉뚱하게도 미국에서의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에게 ‘강남스타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코믹한 키치적 정서에 대한 재미적인 공감, 일렉트로닉 팝이라는 보편적인 트렌드, K팝은 아직은 낯설지만 ‘강남스타일’만이 가진 익숙한 느낌(미국식 B급 유머, 말춤에서 연상되는 카우보이, 퍼포먼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가수 같은), 하지만 싸이 특유의 개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너지+끼) 같은 것이었을 게다.

 

2001년부터 2012년 최근까지 K팝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을 염두에 두고 싸이의 이번 성공을 들여다보면 ‘강남스타일’은 말 그대로 ‘빵 터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을 들고 나오면서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 곡은 ‘초심으로 돌아간’ 노래다. 싸이는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류의 딜레마

 

한류를 얘기하면서 이제는 일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그만큼 한류의 주 소비국으로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것.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K팝 수출액의 99%가 아시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재 한류의 소비는 결국 아시아에 편중되어 있는데, 그것도 일본 비중이 너무 크다. 일본이 이 중 전체의 81%를 차지한다고 한다.

 

 

'각시탈'(사진출처:KBS)

이렇게 되면 일본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한류는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또 이런 과도한 일본 편중은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한류 콘텐츠가 양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콘텐츠 생산이 차질을 빚는 기현상도 나올 수 있다.

 

최근 벌어진 '각시탈' 캐스팅 논란은 이 징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각시탈'의 제작발표회에서 윤성식 PD는 "한류스타들이 출연을 꺼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허영만 화백의 만화 원작인 '각시탈'은 어찌 보면 한국판 조로 같은 작품인데 반일 감정이 다분히 들어가 있다. 그러다보니 몇몇 한류스타들은 일본에서의 자신의 인기가 떨어질까 캐스팅을 고사했다는 얘기다.

 

또 일본의 소비력이 막강하다 보니 그네들의 입맛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나오고 있다. '겨울연가'로 한참 드라마 한류에 불이 붙었을 때, 몇몇 한류 스타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들 역시 따지고 보면 이런 일본의 입맛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일본의 입맛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배우들을 집어넣는 조건으로 투자를 받고 제작된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물론 요즘은 이런 식으로 제작되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다만 일본의 소비력이 지대하다 보니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이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의 시청률 5%에 머물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방영 전에 이미 90억 원대의 선판매가 이뤄진 '사랑비'는 현재의 한류가 가진 딜레마를 잘 말해준다. 한류 콘텐츠에 대한 국내의 정서와 일본의 정서가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 판매로 90억 원이라면 어쨌든 수익을 내려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는 회당 무려 4억5천만 원에 이르는 수치로 국내 최고 기록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장근석 파워가 들어가 있다. 일본에 불고 있는 근짱 열풍이 한 몫을 했다는 것. 물론 한류 1세대를 이끈 '겨울연가'의 윤석호 PD도, 또 소녀시대의 윤아가 들어 있다는 것도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사랑비' 제작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작품이 애초부터 그런 한류를 겨냥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하고 싶었다는 것. 실제로 장근석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얻으려 했던 것은 해외의 수익이라기보다는 국내의 인기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되어 버렸다. 시청률은 5%에 머물러 버린 반면, 해외에서의 판매는 호조를 띄고 있다.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한류를 겨냥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사실 국내 드라마 현실을 보면 일본의 소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입맛에 맞추는 건 문제가 있다. 한류의 정체성은 결국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사라진다면 결국 한류의 존재기반도 사라지는 것이다. 일본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자칫 일본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를 마치 우리나라가 하청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한류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일류가 된다.

 

또한 이렇게 일본 입맛에 지나치게 맞춘 콘텐츠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류란 그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어야 진짜 소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저들이 만든 기무치는 절대로 김치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그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소개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지속가능한 한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방향으로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접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촌화되고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얽매이다가는 자칫 배타주의나 국수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구한말 일제 강점기는 콘텐츠적으로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대를 다룬 콘텐츠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시각만을 부여했기 때문에 좀 왜곡된 부분들도 더러 있다.

 

이제는 이런 민족적인 사안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각시탈' 같은 옛 만화의 현재적 시점에서의 드라마화에서 성패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현재의 글로벌한 시각에 맞는 콘텐츠적인 변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류는 결국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춰야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다. 즉 특수성이란 우리만이 가진 특수한 정서들, 예를 들면 정의 문화라든가, 다이내믹한 성향 같은 것들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세계의 소비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또한 갖춰야 한다는 것. 즉 해외의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 것들 중에 보편성을 가진 것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용준과는 다른 장근석의 매력

'장근석 도쿄돔 크리쇼'(사진출처:와이트리미디어)

장근석은 연기자일까 가수일까. 물론 연기자다. 그것도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그는 아역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연기자라고 얘기하기엔 어딘지 미진하다. 이미 다섯 차례나 아레나 투어를 했고 거기서 선보인 자신의 곡만 해도 40곡이나 된다. 그는 자신의 공연을 온전히 자신의 곡으로 채울 수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물론 가창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 바로 연기다. 그의 무대는 그래서 연기와 노래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장근석이 일본에서 새로운 한류로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알려졌고, 극중인물인 아이돌 그룹 A.N.JELL의 리더 태경으로 각인되었다. 드라마 속에 노래가 있었고, 연기자 속에 가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접합 부분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연기자인 장근석이 가수 캐릭터에 동화되면서 독특한 지점이 생겨났다. '미남이시네요'라는 장근석 월드가 생겨나고 점점 넓혀지는 가운데, 그는 연기자로서도 가수로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도쿄돔에서 있었던 장근석 공연은 여러모로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4만5천명의 관객(일본 관객, 그것도 대부분이 여성) 앞에서 그는 자신만의 장근석 월드를 무려 3시간 반 동안 보여주었다. 프린스 월드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무대는 침실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가수들)을 소개하고, 클럽에서 놀고,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떠나고(그는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돔을 한 바퀴 돌았다), 자신이 프린스임을 선언했다. 거기에는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기본으로 깔려 있었고, 그 위에 그의 노래가 얹어졌으며, 중간 중간 끊임없는 농담이 이어졌다.

K팝 가수들이 노래로 콘서트를 가득 채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장근석은 일단 드라마적인 설정 공간으로 팬들을 초대하고 거기서 연기와 노래가 접목된 쇼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배용준이 팬 미팅을 갖는 것과도 다른 방식이다. 만남과 대화의 진솔함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배용준 팬 미팅과 달리, 장근석은 그 안에 쇼적인 즐거움의 요소를 덧붙여 하나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장근석이 한류 스타로서 풀어나가는 이러한 방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한류를 기대하게 한다. 즉 드라마나 영화 같은 스토리와 캐릭터 콘텐츠가 기반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쇼나 콘서트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방식이다. 이것은 코스프레 같은 콘텐츠 기반의 쇼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 일본 같은 곳에서는 더없이 효과적인 방식이다. 또한 K팝 가수가 드라마 데뷔를 통해 연기와 노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쉽지 않은 반면(연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연기자가 거꾸로 드라마를 통해 가수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더 수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스토리가 가진 힘 때문이다. 가창력은 조금 못해도 스토리 속에서 들리는 노래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장근석이 이런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은 경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와 노래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넘나들었고,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가 사이에 놓여진 정서와 언어의 경계를 오히려 가능성으로 만들었다. 국가 간 차이에 따른 어색한 행동이나 언어는 때론 이국적으로도 느껴지고, 때론 귀엽게도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경계 넘기는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에 놓여진 거리감을 좁혔다는 것일 게다. 그는 스스로 '프린스'라고 얘기하면서도 굳이 자신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나, 조금 별난가요? 요즘 주목 받는 만큼 오해도 많이 받고, 충고를 많이 들어요. 오래 사랑 받으려면 신비주의를 택해라. 하고 싶은 말도 좀 참아라. 마음에 없는 행동도 해야 한다.하지만 나는 장근석인걸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유인으로 남아서 길거리에서 셔플도 추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으니까요."

장근석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언가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확실히 배용준과는 다른 장근석만의 매력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한다. 수많은 경계들을 해체시키면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