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표 PD에 강용석, 신정아, 뭐가 문제일까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한 신정아의 방송MC 컴백 기사는 충격적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은경표 PD는 신정아를 4개월 간 쫓아다니며 출연을 확정지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여성으로 큰일을 겪은 만큼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출연을 결정했다.” “사고방식이 정돈되어 있고, 이런 프로그램에 적합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신정아(사진출처:SBS)
학력위조와 정권 측근과의 부절절한 관계를 겪고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신정아가 이런 ‘큰일’을 겪었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건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은 여성들 입장에서 들으면 오해의 소지마저 있다. 방송에 나오는 것조차 부적합한 인물이 여성을 대변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프로그램에 적합한 캐릭터’라는 말은 이 프로그램이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범법자라도 갱생의 기회는 가질 수 있는 일이지만, 방송은 공공재의 성격도 띄고 있다. 따라서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그것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결과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이들이 바로 그 악명 때문에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자칫 심각한 사회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방통위라는 조직이 있어 방송사를 심사하고 허가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방송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니 TV조선에서 신설할 것이라는 토크쇼 <강적들(가제)>에 신정아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 방송사가 가진 선정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다. 시청률이 된다면 방송 윤리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
게다가 이 <강적들>이라는 신설 토크쇼에는 여 아나운서 막말 비하 발언 등으로 국민 비호감으로 전락해 정치권에서조차 퇴출되었다가 최근 방송인으로 거듭나면서 ‘이미지 세탁’ 논란에도 휘말렸던 강용석 변호사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물론 강용석 변호사는 이 제안을 고사했다고 밝혔지만.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은경표 PD 역시 만만찮은 이력(?)의 소유자다. 10대 성폭행 혐의는 물론이고 연예 기획사로부터의 각종 수뢰 혐의 등으로 연예계 비리 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 아닌가.
그러니 PD부터 MC들까지의 면면을 보면 왜 가제가 <강적들>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보도된 내용을 통해 보면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인 이슈와 시사 문화 트렌드 등 다양한 주제의 토크쇼라고 밝히고 있지만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들에 오히려 포인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들이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만들어낼 노이즈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94년에 제작한 <킬러 Natural born killers>에서 시청률이 된다면 살인자의 엽기적인 행각마저 생중계되는 방송의 선정성을 꼬집은 바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작인 <테러 라이브> 같은 영화도 라디오 청취율에 목매는 MC와 시청률을 위해서는 테러범과도 딜을 하는 극단의 방송 행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허구지만 이 허구가 허용되는 이유는 대중들이 작금의 방송사들이 보여주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공감하기 때문일 게다.
TV조선은 < 강적들 > 이라는 가제를 가진 이 프로그램을 10월 중에 방송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시청률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런 그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낼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안타까운 작금의 방송 현실을 드러내준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악명이라도 시청률이라면 누구든 허용되는 사회라면 심지어 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킬러>에 등장하는 킬러 미키(우디 해럴슨)를 꿈꾸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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