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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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탄 극장가, 리메이크만 판친다

D.H.Jung 2006. 7. 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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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블록버스터들

미국엔 디즈니랜드가 있고 우리나라엔 에버랜드가 있으며 우리 동네엔 H랜드가 있다. 디즈니랜드는 못 가봐서 모르겠지만 롤러코스터의 천국이라고 한다. 찾는 이들도 전 세계적이다. 가끔 가보는 에버랜드는 그럭저럭 롤러코스터들이 구비되어 있지만 한국식으로 즐겨야 한다. 1시간 기다려서 5분 타는 재미.

하지만 우리 동네 하니랜드는 다르다. 놀이기구라고 있는 것이 고작 오래된 회전목마, 시속 5킬로 이하인 궤도열차, 지상 2미터 높이로 뛰면 손이 닿을 정도로 낮은 모노레일, 소박한(?) 바이킹, 범퍼카 등이 전부다.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기다릴 필요 없고 아저씨한테 잘만 얘기하면 한 번 더 태워주기도 한다. 재미는 없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으로는 참으로 원칙적인 느낌이다. 이런 상태로 운영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요즘 극장가를 보면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몇 번의 히트작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에버랜드는 그 메가톤급 롤러코스터에 주춤한 상태니 전혀 히트작 하고는 상관없이 소박한 하니랜드가 오죽하랴. 그런데 헐리우드라는 이름의 디즈니랜드에서 선보였거나 앞으로 준비할 영화들의 면면을 보니 이건 사실 전부 대충 감이 잡히는 놀이기구들이다.

리메이크 유행, 왜?
<미션 임파서블3>는 TV를 통해 익숙한 구조인데다, 영화로도 전작이 두 편이나 된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를 담았지만(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는 다 안다. 단지 톰 크루즈가 이번엔 어떤 상황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모험을 펼칠 것인가가 궁금할 뿐이다.
이어 개봉한 <다빈치 코드>는 이미 책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전력이 있으니 그 내용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심지어 원작 만한 영화 없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개봉 5일만에 150만 명을 넘어섰다.
앞으로 개봉될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캐러비안의 해적 2; 망자의 함>, <수퍼맨 리턴즈>, <포세이돈>, <엑스맨 3> 무엇 하나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제목이 없다. 이 계보는 아마도 지난해 외화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킹콩>,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 같다. 최근 슬슬 다가오고 있는 블록버스터의 계절을 맞아 헐리우드라는 디즈니랜드는 왜 이다지도 리메이크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만큼 영화가 다양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저변은 유럽 영화와 아시아권(홍콩이나 일본, 인도 영화, 우리나라 영화까지) 영화까지 넓어졌다. 과거 헐리우드의 독주시절에는 스크린 쿼터라는 것이 일방적인 문화적 침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헐리우드의 독주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류는 전 세계적인 것이고 곧 미국시장까지 파고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른바 한국영화의 ‘어른론’이라는 논리로 스크린 쿼터라는 방패를 반 토막냈다.

마치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헐리우드는 블록버스터를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미 헐리우드 독주시절, 우리 뇌리에서 이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전들의 리메이크였다. 양적으로 팽창한 영화 시장에서,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관성적으로 끌리게 마련인(혹은 끌리게 중독되었던) 이 고전들은 헐리우드의 위치를 확고하게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무기인 셈이다. 게다가 롤러코스터, 블록버스터는 헐리우드의 자기정체성이 아닌가. 대문이 반쯤 열린 지금, 디즈니랜드의 국내 상륙에 에버랜드는 떨고, 하니랜드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상태다. 악몽은 되풀이된다.

리메이크 우리 체질에도 잘 맞을까
하지만 이런 시점에 최근 우리에게도 이 리메이크라는 유혹은 가깝게 들려오고 있다. 리메이크의 대상은 미국보다는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다. 이른바 ‘한류에 역류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그 역류는,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까지 스토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어나고 있다.

먼저 드라마를 보면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해 호평을 받은 <연애시대>, 그 후에 이어질 <101번째 프로포즈>를 기점으로 <오렌지 데이즈>, <하늘에서 내래는 1억 개의 별>등 총 7편의 일본으로 말하면 ‘국민 드라마’들이 리메이크를 준비중이다. 영화는 일본 소설을 리메이크한 <플라이 대디>, <어깨 너머의 연인>, <반짝반짝 빛나는>, <프리즌 호텔>, <검은 집> 등과,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사랑따윈 필요 없어>, 그리고 영화를 리메이크한 <바르게 살자>, <당신의 가방모찌> 등 그 리메이크 대상도 광범위하다.
최근 발표된 <영웅본색>의 리메이크는 그 대상이 좀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는 필요하지만 기초체력이 부실한 우리 여건에서 이야기를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여건이 충분한 일본 시장에서 손쉽게 가져다 쓰는 게 당장의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서적으로도 비슷하고(실제로 그런 지는 모르겠다), 또 한류로 역수출 할 수 있으니 이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도대체 한류로 자신만만해 하던 우리네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는 것일까.
<은행나무침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왕의 남자>. 이 영화들이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150억이라는 돈을 들여 만든 <태풍>이 참패하고, 순 제작비 41억으로 1200만 관객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 <왕의 남자>만 봐도 우리네 블록버스터가 헐리우드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헐리우드가 내세우는 단순한 스펙터클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의 블록버스터는 바로 ‘우리네 정서를 담은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엄청난 물량공세로 정평이 난 디즈니랜드가 있는 마당에 똑같이 스펙터클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네 블록버스터가 미국시장은 물론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미국식의 그것과는 달라야한다.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스펙터클이기에 리메이크라는 방식은 그들 체질에는 잘 맞는 것이 틀림없지만 우리에게도 그것이 잘 맞는다고는 볼 수 없다.

디즈니랜드라는 괴물을 이기는 방법
물론 리메이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임에 틀림없다. 우리네 <시월애>나 <엽기적인 그녀> 같은 영화들이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걸 보면 그 먼 문화적 거리만큼 창조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리메이크는 이미 충분히 튼튼한 체질을 갖고 있다면 전략상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리메이크라는 전략상품을 만드는 한편으로, 자체적인 체질강화프로그램을 갖지 않으면 결국 우리 문화는 영양실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화 시나리오와 문학, 연극, 뮤지컬 등 영화의 자양분이 되는 이른바 기초분야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리메이크에 익숙한 디즈니랜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스펙터클은 아니지만 우리네 정서를 담은 이야기, 그것이 거대 괴물 디즈니랜드와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이다.

어쩌면 롤러코스터는 영화가 가진 실체의 한 측면인지도 모른다. 단 몇 분, 몇 시간만이라도 사람들은 현실을 잊고 온전한 자극과 환상에 빠지길 원한다. 하지만 영화를 문화이게 하는 또 다른 측면을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움이 없는, 생각하지 않는 문화는 상품일 뿐이다. 따라서 문화로 포장되어 들어오는 자극덩어리의 상품은 중독적인 병폐만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
디즈니랜드의 입성으로 극장이 놀이공원이 되고, 영화가 롤러코스터가 되가는 이 시점,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봉준호 감독의 ‘생각 있는 블록버스터’, <괴물>이 기다려지는 건 그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