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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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불한당들,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D.H.Jung 2007. 11. 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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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본 ‘불한당들’과 독립영화의 가능성

다음은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출품된 장훈 감독의 ‘불한당들’이란 영화의 장면들. 윤성호 감독(‘은하해방전선’의 그 윤성호 감독이다)은 안산공단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인터뷰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가 갑자기 이들을 도시의 한 주점으로 불러들이면서 이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한 그 곳에는 왠지 인종적인 편견이 담배연기처럼 자욱하고, 급기야 화장실에 간 한 베트남 노동자와 시비가 붙은 사내는 그걸 말리려는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황당한 것은 사내를 비롯해 주점 안의 한국인들이 모두 좀비로 돌변하는 것.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 광기의 한국인 좀비들을 BB탄이 아닌 은단을 넣은 장난감 총을 쏘면서 탈출한다.

우리나라에 팽배한 집단적 광기를 월드컵의 이상 열기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포착하면서 좀비영화라는 참신한 틀로 가져온 이 영화는 재치 있는 위트와 유머가 잘 버무러진 수작. ‘서울독립영화제2007’의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과 잘 어울리는 독립영화다.

모든 영화들이 저 월드컵 열기의 광기처럼 똑같은 영화의 틀 속에서 극장에 걸려질 때, 독립영화들은 안산공단 같은 좁은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꿈꾸며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처럼 가난을 자양분 삼아 반짝거려왔다. 가끔씩 “여기엔 왜 왔냐”는 틀에 박힌 질문들을 갖고 오는 다큐PD들처럼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받기도 하면서.

그러니까 기존 장르와 문법에 익숙해 좀체 ‘다른 피부색의 영화’에 알레르기 반응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이 사실은 불한당인 셈이다. 몇 백 만이 들었다는 수치에 떼를 지어 다니며 그 숫자를 더해주고 있을 때, 저 한 구석에서는 이 좀비들을 피해 숨어 있던 ‘다른 영화’들. 하지만 그들은 그저 피해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좀비들과 맞서는 존재다. 좀비들에게는 반대로 불한당 같은 존재다. 독립영화란 실로 ‘다른 영화’라는 BB탄으로 기존 영화문법에 익숙해져버린 두개골을 기분 좋게 날려버리는 영화가 아닐까.

월드컵 광기의 밤이 끝난 새벽. 겨우 살아남은 이 노동자들이 텅 빈 광화문 네거리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마치 생계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독립영화라는 한 가지로 버텨온 감독들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관객을 찾는 것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틀에 박혀 무언가 신선한 충격을 원한다면 기꺼이 저들이 쏘는 유쾌한 BB탄에 머리를 내줄 일이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이 달 30일까지 중앙시네마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