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vs ‘천하일색 박정금’
주말극은 가족극을 선택했고, 가족극은 여자를 선택했으며 그 여자는 엄마와 아줌마로 그려지고 있다. 주말 저녁 8시 동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와 하청옥 작가의 ‘천하일색 박정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엄마와 아줌마는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깊은 공감대를 끌어내는 힘이 있기에 소재만으로도 어느 한쪽의 우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초반 시청률 경쟁을 장악한 것은 명불허전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하지만 ‘천하일색 박정금’의 추격이 만만치가 않다. 주말극의 두 여자들은 무엇을 무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고 있을까.
김수현표 엄마의 일상, ‘엄마가 뿔났다’
‘엄마가 뿔났다’는 제목처럼 엄마에 포커스가 맞춰진 드라마다. 엄마를 뿔나게 하는 가족들 사이의 소소한 일상들이, 김수현 특유의 입담에 버무려진 가족극. 따라서 드라마라고 하면 언뜻 떠올릴 수 있는 비일상적인 낯선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실제 생활 속에서 슬쩍슬쩍 지나쳤던 일상들이 새로운 무게로 그려지면서 어떤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하며 미소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드라마는 마치 리얼리티쇼를 보는 것처럼 가족 일상의 자잘한 면들을 디테일을 살려가며 속도감 있게 훑어나간다. 그리고 그 일상들은 온전히 엄마인 김한자(김혜자)의 마음에 담긴다. 드라마 중간 중간 그녀의 내레이션이 삽입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너무 자잘해 파편적으로까지 보이는 리얼한 일상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가 되는 구조이다. 엄마의 일상은 살림의 현장에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거의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엌이거나, 밥상머리, 빨래를 하는 목욕탕, 아들이 일하는 세탁소, 기껏 외출한다 해도 시장이거나 밖에서 살고 있는 딸의 집 정도다.
엄마는 이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대화 너머로 주목해야할 것은 끝없이 계속되는 엄마로서의 살림의 손길이다. 그녀는 대사를 하며 밥을 퍼주거나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며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한다. 이러한 몸에 익은 엄마로서의 행동들은 대사의 울림을 더 깊게 만든다. 입으론 화를 낸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새어나오는 자식을 위한 행동들이 공감대를 너머 깊은 감동마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의 선택은 대사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행동까지를 염두에 둔 진짜 어머니상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대사에 기대 엄마의 모습을 그려내는 여타의 드라마와는 다른 깊은 맛을 전해준다. 색은 다 같은 된장 색이라도 거기에 우려낸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상이란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 역할이라면 이력이 난 김혜자의 엄마 연기는 이러한 김수현이 구축하려는 엄마의 모습을 100% 이상 그려낸다. 말 그대로 묵힌 장맛 같은 깊은 삶의 향내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워킹맘 아줌마의 일상, ‘천하일색 박정금’
반면 ‘천하일색 박정금’은 이 시대 워킹맘으로서의 아줌마의 일상을 다룬다. 강력계 형사지만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면서도 아이 학원비 같은 일상을 걱정하는 박정금(배종옥)은 삶의 일상이 사건현장보다 더 힘겹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김수현 드라마가 가진 리얼리티보다는 극적 상황 자체가 주는 공감대의 힘이 돋보이는 드라마다.
박정금은 따라서 리얼한 캐릭터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는 아줌마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캐릭터다. 드라마의 공간이 그녀의 일터인 사건현장과, 가족 공간인 집(이혼한 아버지의 집까지 포함하여)으로 양분되는 것은 그것이 워킹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공간은 그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일터에 나와서도 박정금은 모성 때문에 잡았던 범인들을 놓아주기도 하며, 선처를 위해 발벗고 뛰기도 한다.
반면 집으로 오면 박정금은 슈퍼우먼으로서 살림을 하고 한 여자로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길 원하기도 하는 천상 여자로 돌아간다. 그래서일까. 사건현장에서 강해 보이기만 한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사기를 당해 공동명의로 타인과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처지인데다, 복잡한 가족사로 아버지와 새 어머니 앞에 아득바득 살아가는 존재다. 이러한 워킹맘으로서의 강한 유대감은 그녀를 지켜줄 강력한 남성을 기대하게 만드는데 그 인물이 돈은 못 벌지만 인술을 펼치는 의사 정용준(손창민)과 자신 또한 깊은 아픔을 가진 한경수(김민종)라는 남자들이다.
‘천하일색 박정금’은 이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박정금이란 인물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재미를 주는 드라마다. 따라서 소소한 일상과 함께 동시에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사건들의 대비와 겹침이 다채로운 재미를 주게된다. 역시 우리 시대 아줌마상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배종옥이 그 카멜레온 같은 연기에 그녀만의 색채를 입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입맛에 딱 맞는 퓨전요리 같은 맛을 낸다.
깊은 장맛 같은 엄마의 일상이거나, 아니면 퓨전요리 같은 워킹맘의 일상. 주말극을 선택하는 시청자들의 즐거운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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