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곡', 임성한표 막장? 그냥 이상하고 올드한 드라마
"한 남자가 어떻게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사랑하다 죽을 수 있냐. 내가 예수 그리스도도 아니고 석가모니 부처도 아니고." TV조선 토일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에서 박해륜(전노민)의 이 대사는 '내로남불'의 뻔뻔함을 보여준다. 아빠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이 조목조목 그것이 엄마와 자신들에게 어떤 짓을 한 것인가를 지적하고 비판하자 박해륜은 자신의 불륜이 '천재지변' 같은 일이고,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로 자신을 변호하려 한다.
이 장면은 JTBC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의 뻔뻔한 대사로 심지어 유행어가 됐던 이른바 '사빠죄아(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부부의 세계>는 연출적으로도 또 대본에서도 세련된 면들이 있었다. 반면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이 대사가 어딘지 올드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째서 비슷한 불륜을 다뤄도 <부부의 세계>와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이렇게 다른 걸까.
일단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드라마 스타일을 보면, 너무 대사 위주로 흘러간다. 사건은 벌어지지만 한 인물의 대사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이번 박해륜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딸과 그 가족이 그에게 한바탕 비난을 쏟아내는 7회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박해륜의 딸 향기(전혜원)의 대사로 채워져 있다. 이 드라마에서 대사는 절제미나 압축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말들을 끊임없이 늘어놓아 그 자극적 상황 속에 계속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대사의 남발은 사피영(박주미)이 그의 어머니인 모서향(이효춘)을 아버지 죽음의 이유로 배척하며 비난하는 장면에서도 나온 바 있다. 사피영이 모서향을 몰아치는 대사는 거의 10분 가까이 이어지고, 그 비수가 담긴 말에 눈물 흘리는 모서향의 모습 또한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 불치병으로 곧 죽음을 맞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모서향이 보여주는 '신파' 역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그토록 많이 봐왔던 불륜드라마의 그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를 다루는 대사나 연출 또한 참신한 구석이 별로 없다. 특히 여러 인물들과 상황들을 자주 의미 없이 잘라 교차편집하는 방식은 다소 산만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적인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래서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부의 세계>는 그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를 말해줌으로써 때때로 자극적인 설정들이 등장해도 이를 탐구하듯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관된 이야기가 있다기보다는 불륜이 주는 자극, 의도적인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신파적 설정, 게다가 남편의 죽음을 방치하고 아들에게 감정을 갖는 계모 같은 이상한 인물들과 그들의 행동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판사현(성훈)과 박해륜(전노민) 같은 불륜남들이 만나는 불륜녀가 누구인가를 지금껏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 역시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잘 드러낸다. 그건 어떤 이야기나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자극적인 상황들을 나열하고 궁금증을 이어감으로서 시청자들을 낚는 방식으로 드라마가 기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성한표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의외로 어떤 막장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겼던 게 사실이다. 그건 SBS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가 먼저 활짝 열어놓은 막장의 세계가 꽤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청자들은 아마도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이런 이상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올드한 드라마에 다소 식상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애초 <부부의 세계> 같은 작품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답답하고 상투적인 전개라니. 차라리 이야기라도 시원하게 전개되는 <펜트하우스>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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