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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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회 만에 폐지된 '조선구마사'의 비극 통해 배워야 하는 것들

D.H.Jung 2021. 3. 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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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사태, 현 K콘텐츠에 센 예방주사 효과 있다

 

결국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2회 만에 폐지가 결정됐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일파만파 커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대중들이 이 사태를 가볍게 보지 않고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고, 이들 잠재적 소비자들의 힘은 광고주들과 드라마 협찬사들을 움직였다. 계속 광고 게재를 강행하다가는 자칫 불매운동까지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광고가 20개 가까이 빠져버렸다는 사실은 사실상 드라마 제작은 물론이고 방영조차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걸 말해준다. 폐지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비극으로 끝나버렸지만, 여기서 우리는 제2의 <조선구마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이 비극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도전들이 우리네 K콘텐츠 앞에 현재 펼쳐져 있는 것이며, 나아가 어떤 방향성이 K콘텐츠의 바람직한 길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먼저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촉발된 것이지만, 이제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들부터 PPL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감수가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풍 소품들이 현 중국의 문화공정(전파공정)에 예민해진 우리네 대중들의 역린을 건드린 면이 크지만, 이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우리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작은 소품들(PPL 포함)까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것.

 

<조선구마사>가 어째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거기 등장하는 의복이나 음식 등등의 소품들에 보다 정확한 고증과 감수를 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퓨전사극이나 판타지사극에서 역사왜곡이 거론될 때마다 흔히 "역사가 아닌 상상력으로 그린 허구일 뿐"이라고 하던 그 변명 속에 사태의 불씨가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퓨전이든 판타지이든 그것이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조선 같은 특정 시대의 시공간을 빌려 쓰게 될 때는 (이야기는 허구일 수 있어도) 그 시공간에 담겨진 '생활사'에 대한 고증은 분명히 따라줘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조선이라고 해놓고도 중국드라마인지, 일본드라마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구마사> 이전에 박계옥 작가가 쓴 작품인 <철인왕후>가 초반에 그토록 거센 역사왜곡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됐던 건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판타지로 현재에서 과거로 날아간 남성이 왕후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또 제아무리 그것이 코미디를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왕후가 왕에게 끝까지 반말로 일관하는 건 자칫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을 빌려 쓰는데 대한 무례일 수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중국의 문화공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고증 없이 마구 쓰인 중국풍 소품들은 고스란히 저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최근 <빈센조>에 등장했던 중국 비빔밥 PPL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저들은 아마도 이런 장면들을 떼어다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봐라 너희들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먹고 입는 게 다 우리 것 아니냐고. 너희들조차 우리 비빔밥을 먹고 있지 않냐고. <철인왕후>나 <조선구마사>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조선은 위아래도 없는 나라라고. 대중들은 이런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싫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줬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건, 현재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넷플릭스나 향후 본격화될 디즈니 같은 서방세계의 글로벌 플랫폼과 중국의 아이치이나 텐센트 같은 글로벌 플랫폼 혹은 거대자본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간에 K콘텐츠가 서 있다. 지금까지는 넷플릭스가 주로 K콘텐츠에 투자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 작품들을 알렸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아이치이 같은 중국 플랫폼 역시 K콘텐츠에 돈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미국이야 우리와 인접국이 아닌지라 역사나 문화적인 갈등의 소지들이 적지만, 중국은 다르다. 인접국이기 때문에 역사든 문화든 부딪치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특히 중국은 여전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동북공정에 이어 문화공정으로까지 펼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향의 문제는 저들이 자본을 직접 대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시장(중국의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중국향 소재를 채워 넣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변화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지금 현재 벌어진 <조선구마사> 사태를 들여다보면 2회만의 폐지라는 다소 가혹한 결과가 어떤 의미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센 예방주사를 맞은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순수자본만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데다, 우리만의 글로벌 플랫폼을 갖추고 있지 않아 넷플릭스든 아이치이든 해외의 플랫폼을 키우는데 오히려 우리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들이 활용되고 있는 이 형국에서 우리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마저 버린 채 상업적인 선택만을 한 결과가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는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절실하게 통감해야 한다.(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