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 캐릭터들의 향연
입으로만 싸우는 '입 고수'인 줄 알았지만, 갑자기 놀라운 레슬링 실력을 보여주는 전당포 부부 이철욱(양경원)과 장연진(서예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들의 액션을 보면, 어딘가 프로레슬링 같은 걸로 다져진 몸인데, 너무 세서 사고를 칠까봐 조심조심 살아온 이들이라는 걸 엿볼 수 있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의 금가프라자 사람들이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드러낸 이들은, 그러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들만이 아니었다는 걸 가위 하나 들고 조폭들을 현란하게 때려잡는 세탁소 사장 탁홍식(최덕문)을 통해 드러낸다.
박재범 작가는 금가프라자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들을 보는 것 같은 빵빵 터지는 상황극으로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메인스토리는 물론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와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홍차영(전여빈) 변호사가 사회악의 표상처럼 그려져 있는 바벨그룹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팽팽한 대결구도만큼 드라마의 많은 부분들은 매력적인 금가프라자 사람들이 보여주는 포복절도의 코믹 상황극으로 채워져 있다.
이철욱, 장연진 그리고 탁홍식에 이어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남주성(윤병희) 사무장이나, 국정원 요원으로 이태리 음식점 알바생을 위장해 이 프라자에 들어온 안기석(임철수), 피아노 학원 원장이지만 해커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서미리(김윤혜), 한때 바벨그룹의 전담 법무법인 우상의 지시를 받아 금가프라자 사람들을 몰아내는 일을 해왔지만, 잘린 후 그 프라자에 여행사를 냄으로써 이제 상가주민들 편에 서게 된 박석도(김영웅) 등등. <빈센조>에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캐릭터라고 해도 될 법한 웃음 터지는 인물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박재범 작가는 이들 캐릭터들을 활용한 풍자 코미디에도 능수능란하다. 빈센조가 마피아 변호사였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에, 금가프라자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마피아 게임'을 하는 대목 같은 것이 그렇다. 진짜 마피아라는 게 알려지면서 조폭을 때려눕힌 일로 한껏 어깨에 힘을 주던 탁홍식이 뜨끔 하는 모습이라니. 또 빈센조가 조영운(최영준)과 함께 프라자 지하에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몰래 숨어 들은 서미리가 빈센조 앞에 마치 귀신처럼 손을 들고 나타나는 장면이나, 국정원 요원이라는 걸 과장하듯 보여주는 액션을 통해 병맛 캐릭터의 웃음을 전해주는 안기석이 검찰에 체포된 빈센조를 풀어주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런 코믹 캐릭터들에 박재범 작가가 진심이라는 건, 이미 전작이었던 <열혈사제>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주인공인 김해일(김남길)이 다소 심각하게 적들과 싸워나갈 때, 그를 돕는 구대영(김성균)이나, 중국집 배달원이지만 알고 보면 태국 왕실 경호원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쏭삭(안창환) 같은 캐릭터를 떠올려 보라. 이들이 만들어내는 자잘한 코미디 상황극들이 얼마나 드라마를 깨알 같은 웃음으로 채워넣었던가를.
물론 이런 코믹 캐릭터의 향연과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상황극의 연속은, 박재범 작가 드라마의 또 다른 한 축인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사이다 액션과 복수극의 속도를 다소 느리게 만드는 면은 있다. 하지만 이들 캐릭터들이 대부분 서민들의 반전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단순한 사이다 액션, 복수극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에, 진짜 사회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서민들에게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빈센조>에서 까도 까도 끝없이 등장하는 양파 같은 캐릭터들의 향연은 그 자체로 큰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갑갑한 현실에 작은 위로와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들로 느껴지게 된다. 박재범 작가는 이들 건강한 캐릭터들을 통해, 제 아무리 힘들고 거지같은 현실 속에서 갑갑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은 이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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