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지쳤다면... 이 노래가 당신의 ‘황금가면’을 꺼내줄지도 본문
‘황금가면’, 조우진 가면 쓴 김동률의 응원이라 더 신난다
치약, 칫솔, 커피가 남은 종이컵, 전화기 그리고 뭔가 숫자로 채워져 있는 모니터와 볼펜, 명함... 전형적인 사무실 책상 위 풍경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샐러리맨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 주인공은 영업관리 2팀 조우진 차장. 환율 그래프를 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피로하다. 그 풍경들을 훑어가며 빠른 템포의 발랄하지만 빈티지한 연주와 함께 김동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김동률의 신곡 ‘황금가면’ 뮤직비디오의 시작 장면이다.
제목만 들어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것 같은 이 노래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황금가면’을 쓴 슈퍼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다. 황금가면을 쓰고 나쁜 사람 벌벌 떨게 만들고 착한 사람 지키는 슈퍼히어로. 그 때는 고무장갑 끼고 빗자루를 검 삼아 휘둘러도 뭐든 이겨낼 수 있을 듯 의기양양 했었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러 일에 지쳐가는 이 샐러리맨의 축 처진 어깨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었다.
김동률의 ‘황금가면’은 이처럼 한때는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우리들이 현실에 치여 약해져만 가는 모습이 된 현재로 시작한다. 숫자들만 가득하던 모니터에서 갑자기 노랗고 빨간 타이즈를 차려 입은 우스꽝스럽지만 거침없어 보이는 황금가면을 상상하고,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낀 고무장갑과 빗자루에서도 황금가면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김동률의 잔잔한 목소리로 시작했던 노래는 조금씩 시동을 건다.
야근에 지쳐 책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조우진 차장이 퇴근길을 걷기 시작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며 고조되는 노래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다 지쳐 숨을 헐떡일 때, 저 편 거리 곳곳의 일단의 무리들이 모니터에서 잠깐 상상 속에 등장했던 황금가면들의 춤동작을 따라한다. 그 모습이 마치 지친 조우진 차장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황금가면’은 김동률이 지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응원가라는 걸 이 장면이 말해준다.
빠른 템포로 잔잔히 흘러가던 곡이 갈수록 고조되고 급기야 황금가면이 날아가듯 클라이맥스를 향해 빵빵 터져나가는 이 노래는 듣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김동률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비트감 있고 세련되면서도 빈티지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시작해 우리 안에 숨겨진 그 무언가를 울컥 울컥 꺼내 올리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저마다 가졌었지만 잊혀졌던 ‘황금가면’이 아닐까.
이 노래는 특히 조우진을 주인공으로 세워 놓은 뮤직비디오가 걸작이다. 조우진은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단박에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배우다. <수리남> 같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마지막회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잔상으로 남은 건 다름 아닌 조우진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담은 그 얼굴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황금가면’ 뮤직비디오에서 조우진은 샐러리맨이 가진 억눌린 감정과, 이를 터트려내는 과정들을 너무나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앉아 있다가, 달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답답한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풀어 제치고 춤을 추는 그 변화들은 보는 이들을 몰입시켜 저마다의 억압된 감정을 풀어내고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또 처음에는 김동률의 목소리로만 들리던 노래에, 조우진이 입을 맞춰 립씽크를 해 노래를 부르며 군무를 하는 장면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건 내면에 숨겨졌던 ‘황금가면’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연출되어 기묘한 쾌감을 준다.
조우진의 립씽크에 맞춰 흘러나오는 김동률의 노래는, 마치 조우진 가면을 쓴 김동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세상이 정해준 내 역할이 맘에 안 들어”라는 가사는 그래서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인 조우진 차장의 목소리 그대로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김동률이라는 가수가 하고픈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물론 다양한 장르들을 실험해온 김동률이지만 대중들에게는 발라드 가수로만 여겨져 온 게 사실이 아닌가. 그 역시 그 틀을 벗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이 곡에서는 느껴진다. 그래서 이 관점으로 보면 김동률이 조우진이라는 가면을 쓰고 마음껏 하고픈 음악과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읽힌다.
본래 가면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던가. 그 하나가 진짜를 가리는 가짜라는 의미라면, 다른 하나는 얼굴을 가림으로써 오히려 진면목을 드러내는 장치의 의미다. 전자가 가면을 벗어 진짜 나를 찾는 것이라면, 후자는 가면을 씀으로써 진짜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황금가면’은 이 두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 조우진이 본질이 아닌 것 같은 가면의 삶 속에서 그걸 벗어버리고 내면의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을 통해 전자의 의미를 담는다면, 김동률은 조우진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이 하고픈 음악적 세계를 마음껏 펼친다는 후자의 의미를 담는다. 이러니 이 응원가가 더 신날 수밖에. 잊었던 진짜 나를 조우진과 김동률이 저마다의 가면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황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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