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의 덕만, 새로운 국면 절실하다

진정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는 여성사극으로서, 매번 흥미진진한 미션들이 펼쳐지는 미션사극으로서, 또 무수한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캐릭터 사극으로서 '선덕여왕'에게 50% 시청률은 무난할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속도가 정체되는 것처럼 보이더니 지금은 40%대 이하에서 멈춰서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어딘지 초기보다 힘이 현저히 빠진 모습. 도대체 무엇이 기세등등 달려 나가던 '선덕여왕'의 힘을 뺀 것일까.

제일 먼저 지적될 것은 초반부 덕만(이요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극이 현재 비담(김남길)과 춘추(유승호)의 등장, 유신(엄태웅)의 풍월주 등극 등의 에피소드 속에서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이 사극에는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은 모두 덕만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 주변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해도 그것은 모두 덕만을 빛나게 하는 역할로 작용했다. 덕만은 미실(고현정)과의 대결구도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이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덕만이 궁으로 들어가자 그녀를 중심으로 서 있었던 유신, 비담, 알천(이승효), 월야(주상욱)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물론 유신은 덕만과 멜로라인으로 얽혀있지만, 풍월주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했고 가야유민들을 살리기 위해 미실의 영모와 혼인을 맺었으며, 비담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문노(정호빈)와 애증의 대립을 하게 되었다. 알천은 풍월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비무에 모습을 보인 것 이외에는 활약이 없었고, 월야는 아예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사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춘추의 등장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사극의 구심점으로서 덕만이 보이질 않자 드라마는 힘이 결집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덕만은 궁으로 들어가면서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전장을 달리고, 사지를 헤쳐 나오던 그 모습은 이제 본격적인 미실과의 설전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정치적인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서 이러한 말싸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과거만큼의 힘을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여기에 덕만과 유신의 멜로 라인은 덕만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그 왕을 꿈꾸는 공주로서의 카리스마를 약화시키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덕만과 왕을 꿈꾸는 자로서의 덕만 사이에서의 갈등은 의미 있는 것이지만, 지금 현재 궁으로만 들어왔지 뭐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덕만에게는 성장의 정체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덕만의 이야기만큼 미실의 이야기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사극의 시청률을 견인한 것은 다른 어떤 멋진 남성 캐릭터들보다도 이 두 여걸들의 팽팽한 대립구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점에서 이들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절실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선덕여왕'이라는 대장정의 길에서 반드시 필요한 숨고르기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사건들과 쉼 없이 달려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칫 그 지나친 속도감으로 인하여 인물의 감정선이 따라가지 못하는 역할극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지금 분명 힘이 빠져있다. 이것은 또다시 달려 나가기 위한 웅크림에서 멈춰야한다. '선덕여왕'은 지금 미실과 덕만 사이에 새로운 국면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국면으로서 춘추가 등장했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추리극의 묘미에 빠져 그 진면목을 빨리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신이 떠나고, 비담도 떠나갈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고, 알천은 보이지 않고, 게다가 아군이라 믿었던 춘추는 적처럼 행동하는, 이 덕만이 처한 고립무원의 상황은 어떤 국면으로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선덕여왕'은 또 다른 전환점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사극의 가능성

'선덕여왕'이 만일 현대극이었다면 어땠을까. 사극이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선덕여왕'에서 우리는 익숙한 코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출생의 비밀'이다. 이 드라마업계에서는 이미 안정적인 성공 코드로 취급되는 '출생의 비밀'은 이 사극의 전반부를 거의 차지하고 있다. 살기 위해 중국으로 도피했던 덕만(이요원)의 귀환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녀는 먼저 언니인 천명(박예진)을 우연히 만나고, 또 친부모인 마야부인(윤유선)과 진평왕(조민기)을 차례차례 만난다.

게다가 그녀는 중국에서 그녀를 키워주었던 소화(서영희)를 또 한 명의 부모로 두고 있기 때문에, 소화의 등장과 덕만과의 재회는 또 하나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사극이 가진 '출생의 비밀' 코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덕만과 함께 버려진 비담(김남길)은 미실(고현정)과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든다. 미실에게 버려졌으나 돌아온 비담은 또 한 번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맛본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이 부모의 참회로 이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이 코드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출생의 비밀'의 힘은 바로 만남의 시퀀스에서 나온다.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의 코드다. '선덕여왕'은 인물들 사이사이에 이 만남의 시퀀스를 계속 만들어낸다. 미실과 덕만의 만남, 미실과 소화의 만남, 소화와 칠숙(안길강)의 만남, 덕만과 칠숙의 만남, 소화와 마야부인의 만남, 문노(정호빈)와 미실의 만남, 비담과 소화의 만남, 춘추(유승호)와 덕만의 만남 등등. '선덕여왕'은 이 만남의 시퀀스에서 감정을 강화시키거나 반전을 꾀함으로써 드라마의 힘을 끌어낸다.

멜로드라마의 코드 또한 이제 점점 부상하는 중이다. 덕만과 유신(엄태웅)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 표면화되고 있고, 그것을 질시하는 비담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운명적 관계는 현대극이라면 어색할 수 있었겠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흥미진진한 멜로를 만들어낸다. 왜 이럴까. 현대극이라면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일련의 코드들은 사극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이것은 사극이 가진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멜로드라마가 현대에 이르러 식상하게 된 것은 그 설정이 갖는 비현실성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감정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드라마다. 그러니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현재의 드라마에서 운명을 운운하는 멜로드라만 특유의 과장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한계는 멜로드라마가 왜 사극이라는 장르와 혼융하여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사극 속에서 멜로는 현대극이라면 가질 수 없는 '태생적인 계급'이라는 장애요소를 자연스럽게 선취하게 된다. 즉 서열과 신분이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을 통해 만들어지는 만남의 시퀀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극이라는 공간은 현대극이 갖지 못하는 특유의 이야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극이 먼저 그 리얼리티를 바라보게 한다면 사극은 그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이 이야기성은 사극이 왜 타 장르들과 손쉽게 융합이 가능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선덕여왕'은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플래시백을 활용한 추리 형식의 영상연출, 전형적인 무협 액션 같은 요소들 또한 갖고 있다. 또한 '선덕여왕'의 융합 가능성은  매체 간에도 일어난다. 이 사극은 비담 같은 캐릭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협지나 만화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적 매체적 요소들을 끌어안는 '선덕여왕'은 사극만이 갖는 가능성을 증폭해서 보여준다. 그것은 낯설음과 친숙함이 동시에 얽혀있는 공간의 구축이다. 거기에서 누군가는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미드 식의 긴박감 넘치는 시추에이션극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정반대로 아주 익숙한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사극이 갖는 이야기성의 친숙함이 있는 반면, 만화 같은 낯설음과 신선함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사극이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그 사극의 가능성을 100%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장르의 경쟁적인 소비가 낳은 트렌디한 스토리의 문제

지금 드라마들은 장르가 가진 트렌디한 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시의 세계를 들고 온 스포츠 드라마, '드림'은 이종격투기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는 스포츠 드라마가 갖는 전형적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심에서 벗어난 남자들의 성공을 향한 질주, 권력을 쥔 자와의 대결구도 그리고 적절한 멜로구도가 반복된다. 새롭게 시작한 '공주가 돌아왔다'는 줌마렐라를 내세운 전형적인 트렌디 멜로드라마다. 발레라는 소재를 집어넣었지만,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는 이 트렌디 멜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선덕여왕'이라는 발군의 사극과 경쟁하고 있지만,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드림'이나 6%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공주가 돌아왔다'는 자체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딘지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 기획에 지나치게 트렌디한 드라마 스토리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들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애초부터 답이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다. 화제성은 어느 정도 갖고 있으나 드라마 내적으로 보면 트렌디한 장르 그 이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러한 드라마들의 문제는 수목 드라마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새로이 시작한 '맨땅의 헤딩'은 축구를 소재로 한 청춘드라마지만, 드라마는 소재만큼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봉군(유노윤호)의 성장 스토리에 사각관계로서의 트렌디 청춘 멜로를 엮어놓았을 뿐, 축구라는 소재의 디테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갖는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 연기에 도전하면서 부족해도 열심히 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유노윤호의 노력이 아까울 정도로, 스토리는 캐릭터를 살려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률은 6%대. 스토리 없이 젊은 배우들의 맨땅의 헤딩만으로는 시청률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초반 윤상현과 윤은혜가 출연하고 '꽃보다 남자'가 갖는 판타지 드라마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차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봐왔던 트렌디한 설정들과 상투적인 멜로로 인해 시청률은 점점 가라앉고 있다. 이제 13%대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이 드라마는 기획 단계부터 트렌디 판타지 멜로를 예고했고,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의 한계를 애초부터 지어버린 격이 되었다.

후반으로 오면서 시청률이 반등하고 있는 '태양을 삼켜라'는 이 수목드라마의 공백이 주는 반사이익을 가장 많이 본 드라마다. 아프리카와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제주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스케일에 제작비를 감안해 보면 이 드라마가 현재 갖고 있는 17%대의 시청률은 오히려 초라하다고 봐야 할 정도다. 완성도 높은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부재한 까닭이다. 이미 많이 봐왔던 전형적인 남성드라마의 성공, 복수를 전형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결국 '출생의 비밀'이라는 카드를 내세웠다. 스스로 드라마 스토리가 가진 문제를 자인한 셈이다.

주말드라마로 오면 스토리의 트렌디함은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느낌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애초에 훈훈한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와 트렌디한 시어머니를 내세우는 등,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38%에 가까운 시청률을 일궈냈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 스토리의 성공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청률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호평 받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인 스토리진행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제목처럼 스타일은 있었지만 스토리는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이서정(이지아)은 그 캐릭터가 매력이 없었고, 따라서 그 자리에 박기자(김혜수)가 서게 되었다. 본래 박기자 같은 캐릭터의 역할은 이서정 같은 캐릭터를 세워주고 성장시키는 것이지, 그 자신이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말에 아쉬운 드라마는 '탐나는도다'다. 이 드라마는 물론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아기자기한 스토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탐나는 드라마를 아깝게 만드는 것은 편성이다. 이 드라마는 주말이라는 시간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말에 편성됨으로써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지금의 수목드라마에 배치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더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선덕여왕'을 빼고 현재 드라마들은 지리멸렬하게 장르라는 틀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어떨까. 이 사극은 장르의 틀을 벗어나고 또 다양한 장르를 끌어들임으로써 어떤 통합장르의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에피소드별로 구성되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성격에 전체를 꿰뚫고 나가는 시리즈극이 적절히 균형을 맞춘 이 사극 속에서 우리는 추리극을 발견하기도 하고, 멜로드라마를 발견하기도 하며,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의 문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어떤 면에서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가족드라마 특유의 코드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라시대를 다루는 미션사극의 새로움과 가족드라마나 멜로드라마의 코드를 숨겨놓는 익숙함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들이 얼마나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 드라마들은 화제성 있는 소재에 이른바 장르화된 성공 코드를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손쉽게 시청률을 끌어 모으려는 안이한 방식에 젖어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코드들은 대중들이 보기에도 쉽게 인지되고 있고, 따라서 장르 자체가 급속히 소비되면서 피곤해진 상황이다. 늘 될 만한 장르들만 반복해서 경쟁적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온 탓이다. 이 시점에서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통합장르의 가능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르와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또는 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스토리를 모색하는 것은 현 위기로 인식되는 드라마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 되지 않을까.

 병풍이거나, 민폐거나 어쩌다 아버지들은?

드라마 세상이 바로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언제부턴가 드라마 속에 아버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서 자꾸만 좁아져가는 아버지라는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아버지는 집 담보까지 집어넣었지만 결국 망한 회사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그 회사를 버리고 야반도주해버린 사장 앞에서 쓰러져버린다(SBS '천만번 사랑해).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어머니를, 수선집을 하는 아버지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보냈다며 그래도 여전히 생각이 난다고 쓸쓸하게 말한다(SBS '스타일').

이것은 전통적으로 남성 시청자들의 몫이었던 사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과 천명(박예진)의 아버지인 진평왕(조민기)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능력한 왕이자 아버지다. 그는 미실(고현정)의 권력 앞에 딸을 버리고, 심지어 명백히 살해된 천명의 죽음 앞에서도 그 죽음이 사고였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실종된 드라마 세상은 어느새 여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 속에서 남자들은 여성들의 간택을 받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향수어린 과거의 가치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로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 같은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하나 같이 부자에 꽃미남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남자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드림'이나 '태양을 삼켜라', 그리고 종영한 '친구' 같은 작품 속에서 거친 남자는 지금 시대와는 아무런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 향수로 그려진다. 그들은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 하고 있고, 그 성공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래의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작금의 가치관에서 보면, 그들의 사투는 안쓰럽게만 보일 뿐이다. 도대체 왜 그들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조차 여성의 대상이 되거나, 과거의 향수 속으로 숨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존재는 더더욱 자리할 곳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드라마 세상 속에서 병풍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젊은이들의 민폐로서 기능한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그 시대의 감정이입할 대상을 나이와 성별을 넘어 포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의 실종과 그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은, 현실의 아버지들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이제는 한발 물러나 가족들 틈에서도 늘 뒷전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들은, 그나마 소일거리로 찾아보는 드라마 속에서조차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대는 달라졌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 달라진 사회를 반영하는 드라마가 과거 억압되었던 여성들을 살려내고, 마초적이기만 하던 남성들을 여성성 가득한 남성들로 그려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세계에 던져놓거나, 현실의 패배자로서만 그려지는 아버지의 존재는 문제가 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아버지 상은 도대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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