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 실보다 득이 많다

'선덕여왕'의 덕만(이요원)은 남장여자다. 시청자들은 덕만을 연기하는 이요원이 여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아직까지 그녀가 여자임을 모른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이다. 하지만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그 드라마 속 리얼리티는 충분히 있어야 수긍이 갈 것이다. 낭도로서 동료들과 오래도록 함께 지내면서 훈련을 하고 전쟁까지 수행하면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 사극의 리얼리티에 꽤 큰 빈틈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약점이 예기되는 상황 속에서 굳이 덕만을 남장여자로 설정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유는? 실보다 득이 많으니까.

먼저 덕만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전쟁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덕만은 사막에서 암살자에게 쫓기면서 성장했고, 신라로 들어오면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붙잡혀 또 한 번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극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가장 큰 성장의 계기는 역시 전쟁이다. 아무리 주인공이 정치적으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쟁만큼 극적일 수는 없고, 또 그만한 시각적인 효과도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덕만이 남장여자인 것은 그녀가 전쟁에 투입되는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도드라지며, 그 속에서 여성적인 카리스마(공포보다는 희망으로 이끄는 카리스마)를 발휘해 위기를 넘어서는 이야기에도 부합한다.

대체로 사극이 다루는 재미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전쟁 같은 미션을 직접 몸으로 수행해나가는 것이 주는 볼거리의 재미고, 또 하나는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팽팽한 정치적인 대결구도의 재미다. 대체로 지금껏 남성사극 속의 남성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나갔다. 전쟁을 수행해나가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포석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마련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 사실상 전쟁이 주는 스펙타클한 재미는 포기될 수밖에 없다. 여성이 전쟁이 참전하는 것은 거의 예외적인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천추태후'의 경우는 바로 그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는 전쟁에도 참전하고 정치에도 관여한다. 그런데 '천추태후'의 이런 면모는 여성적인 카리스마를 끄집어내기가 어렵다. '천추태후'는 생물학적인 성별구분으로서는 분명 여성이지만 캐릭터로 봤을 때 남성성을 더 많이 가진 여걸이기 때문이다.

덕만이 남장여자인 점은 이 두 가지를 여성성을 유지하면서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는 겉으로는 남자이기 때문에 전쟁에 직접 투여되어 미션을 수행할 수도 있고, 그 미션 수행 과정에서도 여성성(실제로는 여성이기 때문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는 아마도 실제 선덕여왕의 면모가 그러했을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덕만의 이 남장여자라는 설정은 그녀와 짝패를 이룰 천명(박예진)과 정적인 미실이 가지지 못한 이 두 가지 측면의 매력을 모두 가지게 해주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천명과 미실은 모두 정치적인 면모만을 보일 뿐,덕만 같은 실전적인 매력은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사극 속에서 천명과 미실은 말만 하고 있지만 덕만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의 활용은 연기자의 입장에서도 유용하다. 여성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에 있어서 남장여자라는 캐릭터만큼 힘을 발휘한 것도 드물다. 윤은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고은찬이라는 남장여자로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켰고, 문근영은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로 설정된 신윤복을 통해 비로소 국민여동생이라는 족쇄를 풀어내고 온전히 연기자의 이름을 얻어냈다. '선덕여왕'의 이요원 역시 마찬가지다. 늘 어딘지 가녀린 이미지로 굳어져 있던 그녀는 덕만이라는 남장여자 캐릭터를 만나 연기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발군의 아우라를 구축했던 아역 남지현의 호연으로 더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요원이 그나마 그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바로 이 남장여자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은 물론 역사 왜곡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금의 사극이 이제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상황으로 보면, 사극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역사가 권위로 자리하지 못하는 시대에, 사극은 어떤 진실(사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을 주장하기 보다는 스토리가 갖는 재미에 더 천착하고 있다. 사극은 이제 역사와 결별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의 유용성을 따지는데 있어서 봐야할 것은 역사 자체 보다는 드라마에서 그 설정이 갖는 득과 실일 것이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는 드라마적으로 봤을 때, 물론 실도 있지만 득이 더 많다.

미실과 덕만, 그녀들이 사람을 얻는 법

"사람을 얻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고 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전부 제 사람들입니다." 진흥왕(이순재)이 죽자 미실(고현정)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것은 '선덕여왕'이 말하는 정치의 세계다. 따라서 이 사극의 궁극적인 미션은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된다. 주어진 미션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승리, 즉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양극점에 서있는 미실과 덕만(이요원)은 자신들만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선덕여왕'의 두 인물이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주목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덕만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모성에 가깝다. 그녀는 자신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도 공포에 질려 있는 동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죄로 참수를 당하게 된 시열(문지윤)을 덕만은 끝까지 지켜낸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상병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알천랑(이승효) 앞에 그녀는 '공포'가 아닌 '희망'을 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덕만이 가진 카리스마의 단면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속에서 약자를 포기하는 카리스마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녀는 대신 약자들도 하나로 뭉치면 강자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리스마의 결과는 현실로 드러난다. 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속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려는 알천랑 앞에 그녀는 '원진'을 외치고 가까스로 살아남고, 미션 수행 과정에서 동료가 동료를 죽이는 선택을 막아내고는 결국 함께 살아남는다. 이 과정 속에서 약자들은 물론이고 강자들마저(알천랑이나 김유신(엄태웅)같은) 그녀를 따르게 된다.

한편 미실이 추구하는 카리스마는 더욱 정치적이다. 그녀는 적과 아군의 구분을 넘어서 이기는 자, 천운을 가진 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를 보인다. 사지로 내몰렸던 김서현(정성모)이 살아 돌아오고 점점 입지를 다져나가자 그녀는 그마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게다가 지금껏 충성해왔던 설원랑(전노민) 앞에서 공공연히 이를 밝힘으로써 '충성경쟁'에 불을 붙인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설원랑이 말한 것처럼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을 취하는 정치적 카리스마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실과 덕만, 이 두 여성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현재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져온 리더십의 변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제 물리적인 힘으로 제 발밑에 사람들을 무릎 꿇리는 남성적 카리스마의 시대는 저물었다. 미실이 보여주는 정치적 카리스마는 그 목적이 어떻든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한때 적이었던 자까지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한편 약자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이끌어주는 덕만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모성적인 색채를 띈다.

이 두 카리스마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들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실에 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욕망(권력에의)이 자리하는 반면, 덕만에 이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 자리한다. 근본적으로 욕망이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인 반면, 희망은 삶의 기쁨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에서 이 두 카리스마는 차이를 보인다. 미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반면, 덕만에게서 삶의 냄새가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이 두 여성을 통해 여성적 카리스마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적 리더십에 대해 말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 ‘선덕여왕’의 미실, ‘시티홀’의 고고해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김서형)의 트레이드마크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거친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로 이 연기로 시청자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악녀들은 신애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차분해졌고, 감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치켜뜨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들이 더 살벌한 것은.

‘찬란한 유산’에서 백성희(김미숙)는 미소 짓는 악녀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는 보험금을 혼자 챙기려 배다른 딸인 은성(한효주)과 그 동생 은우(연준석)를 길거리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아인 은우를 멀리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살아온 남편을 반기기는커녕 갖은 거짓말로 은성을 만나려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나자 거꾸로 은성을 거둬 유산까지 주려하는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녀는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거짓말은 이 차분하게 숨겨진 감정 뒤에서 좀체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착하기만 한 고은성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뭐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미소 짓는 악녀에게 완벽한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미소 짓는 섬뜩함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늘 방긋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살벌한 칼날이 느껴진다. 덕만을 놓친 병사의 목을 치면서 그 피가 얼굴에 튄 채로 살짝 웃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앞에서는 공손한 척 예를 다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천명공주(신세경)에게 “도망쳐라!”하고 명령할 때, 그 숨겨진 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시티홀’의 고고해(윤세아) 역시 같은 부류다. 이름처럼 앞에서도 고고한 척 우아함을 떨지만 사실은 뒤에서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똑같은 미소짓는 악녀의 자질을 가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조국(차승원)을 취하기 위해 그녀는 신미래(김선아)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목적은 그러나 조국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획득하려는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우아한 악행은 때론 자본이 행하는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악녀들이 이처럼 감정을 숨긴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악역이 아니고 악녀냐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점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보다는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그만큼 볼만해졌다는 얘기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대결하는 것은 바로 구은재(장서희)라는 여성이고, 이것은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고은성, ‘선덕여왕’의 미실-덕만, ‘시티홀’의 고고해-신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에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갈등 구조 속에 빠질 수 없는 멜로라인이 결부되면 그 대결구도는 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악녀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바로 감정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해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유독 악녀들이 많고 그녀들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전쟁신이 MBC사극에 위치하는 곳

사극에서 전쟁이라는 스펙터클이 가지는 힘은 자못 크다. 다른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그 장면 자체가 대단한 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김명민)이 치르는 일련의 해전들은 마치 스포츠 중계처럼 방영됐다. 예고편에서도 마치 한일전이라도 치르듯 '이번엔 어디서 벌어진 무슨 해전이다'하고 자막이 붙었고, 실제로 사극을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그 관점으로 스펙터클한 전쟁의 흥미진진함을 만끽했다.

'태조 왕건', '대조영' 같은 일련의 KBS 대하사극이 주말의 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능수능란한 전쟁과 전투신의 연출이었다. MBC와 SBS에서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그 노하우를 단번에 체득하기는 어려웠기에 사극 하면 KBS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것은 고구려 사극에 와서 정점을 이뤘다. 물론 '주몽'이 특유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늘 아킬레스건처럼 따라오는 건 '소소한 전쟁 신'이 가진 왜소함이었다. SBS는 '연개소문'의 단 2회 동안의 전쟁 신을 찍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 붓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KBS는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를 통해 역시 지존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쟁사극이 요령부득인 MBC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허준', '상도' 같은 전쟁이 아니라도 인물들 간의 미션들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구축하는 그런 사극들이 MBC사극에 자리했다. MBC 사극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태왕사신기'부터였다. 엄청난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완성도에 공을 들인 결과, '태왕사신기'는 CG와 전쟁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 한 단계 높은 성과를 보여줬다. 그리고 '선덕여왕'에 와서 이제 MBC사극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던 전쟁사극의 한계를 한 발 넘어서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의 신라와 백제 간에 벌어진 전쟁 에피소드가 남달랐던 것은 스펙터클에 충실하면서도 디테일을 잊지 않는 연출 덕분이었다. 김서현(정성모)이 이끄는 신라군이 아막성을 얻기 위해 벌이는 공성전에서는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상황에 성벽을 뛰어오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떨어지는 등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덕만(이요원)과 동료들이 처음 전쟁을 접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이를 차츰 적응해가는 과정을 놓치지 않는다.

고립되어 백제군에게 포위된 덕만과 화랑들이 원진을 짜고 대항해가는 장면 역시 인물의 감정을 살림으로써 왜소해 보이는 전투를 극적 긴장감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설원랑(전노민)이 백제군을 속이기 위해 벌이는 고육지책은 전쟁 스펙타클의 또 한 요소인 전술적인 묘미를 안겨주었다. 백제군을 물리치고, 동시에 정적이랄 수 있는 김서현과 김유신(엄태웅)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거양득을 취하는 모습은 전쟁과 정치가 맞물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실 '선덕여왕'의 이러한 전쟁 장면들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은 그 비교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저 '적벽대전' 같은 작품과 비교한다면 '선덕여왕'의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전투에도 못 미치는 장면으로 치부될 수 있다. 또 일련의 명장면이라 일컬어지는(예를 들면 '불멸의 이순신'의 해전들이나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 같은) 장면들과 비교해도 여전히 소소한 느낌을 벗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터클의 완성도는 노하우도 노하우지만 기본적으로 제작여건과 함수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이 보여준 전쟁 신의 가치를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최근 들어 사극에서의 전쟁 스펙터클은 디테일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싸우고 누가 전쟁을 이끌었고 어떻게 이겼는가 하는 그 교과서적인 내용의 전달보다는, 전쟁 속에서의 인물들의 실감나는 심리나 그 관계들이 엮어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거대한 전쟁과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시청자들을 방관자로 세워놓던 스펙터클에서, 이제는 그 속에서 같이 뛰는 스펙터클을 대중들이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덕만과 그 일행을 앞세운 '선덕여왕'의 전쟁 신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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