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기용 사태 복기를 통해 보는 대중과의 소통

 

맹기용은 결국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진하차를 선택했다. 몇 주 전에 이미 찍었던 분량이 다 방영되었고 그 후에 찍은 분량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하차 수순을 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맹기용은 용기를 내 프로그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대중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사실 맹기용이 이렇게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사태는 맹기용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를 출연시켜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제작진의 실수들이 겹치면서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셰프라면 거기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했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냉장고를 부탁해>는 대중들이 맹기용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그리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것은 큰 실수였다. 왜냐하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새로운 인물을 들이고 내는 일이 그저 제작진의 자의적인 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은 시청자들과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그러니 철저히 시청자들 입장에서 누가 나가고 누가 들어오는가에 대해 면밀히 그 생각과 감정들을 읽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마치 가족에 누군가를 새로 입양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장고를 부탁해>는 처음의 소소함을 훌쩍 벗어나 이제 가장 주목받는 예능 중 하나로 떠올랐다. 셰프의 전성시대를 만든 만큼 그 셰프들에 대한 대중들의 검증은 더 면밀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MBC <나는 가수다>가 점점 위상이 높아지면서 출연 가수들에 대한 검증이 치열해졌던 것과 똑같은 양상이다.

 

따라서 맹기용을 이 프로그램에 제대로 안착시키려 했다면 그의 진솔한 면면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도무지 이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모습부터 시작했다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나오지 않고 떡 하니 앉아 그것도 실험적인 요리로 첫 선을 보였다는 건 무리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맹모닝 샌드위치로 첫 번째 논란이 터졌을 때도 제작진은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했다. 그랬다면 최현석 셰프나 김풍의 SNS를 통한 메시지들이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와 세 번째 출연해서 연속으로 2연승을 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맹기용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것은 제작진이 여전히 맹기용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엇나간 대중들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맹기용을 지원하는제작진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맹기용을 위한 듯 만들어져 붙여진 프로그램 말미의 편집본은 사족이나 다름없었다. 이 상황이 되면 이제 대중들은 맹기용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뜻과는 반대의 각을 세우는 제작진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이런 논란이 터질 때마다 착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심지어는 너무 괜찮은 사람인데 왜 그런 논란이 터지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대중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건,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건 제작진이 아니라 시청자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에게 제작진이 좋다고 좋아할 의무 따위는 없다. 오히려 싫어할 권리는 있지만.

 

나영석 PD는 예전 <삼시세끼> 어촌편에 장근석 논란이 생겼을 때 재빨리 그를 통편집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때 필자와 만난 나영석 PD는 개인적으로 장근석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또한 대중들의 싫어할 권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그 진위나 이유와 상관없이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생각을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진이 먼저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논란이 더 커져 제작진도 맹기용 당사자도 더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맹기용은 그래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 사실 이번 사태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가 프로그램에 의해 스토리텔링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제작진의 실수가 크다는 점에서 그의 능동적인 하차는 그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요리가 부족하다면 좀 더 배우면 된다. 만일 방송을 원한다면 그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찾으면 된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아니어도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맹기용 사태를 복기함으로써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지금의 대중들과의 소통법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든 대중들의 불편함이 소소한 의견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견으로 등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유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초기의 시점을 놓치게 되면 사태는 더 커지고 결국 대중들과 대립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중들과 대립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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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맹기용 논란, 끝없이 제기되는 까닭

 

이번엔 레시피 도용 논란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맹기용을 출연시킨 후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첫 출연에서부터 줄곧 제기되어온 자격 논란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가지치기를 해가는 형국이다. 그는 연달아 2연승을 거뒀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영 곱지만은 않다. 항간에는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건 이 문제가 맹기용의 문제에서 점점 프로그램의 문제로 커져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호사다마(好事多魔). 현재의 <냉장고를 부탁해>에 딱 어울리는 얘기다. 가장 잘 나가던 그 시점에 맹기용이 출연하면서부터 이런 논란을 반복해서 겪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사실 초반에 간단히 진압될 수 있는 논란이었다. 처음 맹기용 출연에 대해 대중들이 불편함을 드러냈을 때 그걸 선선히 수용했으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맹기용에 대한 예의를 거론하며 계속 방송을 내보냈다.

 

문제는 이것이 맹기용 본인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만일 처음 만든 맹모닝논란으로 조기 퇴진되고 그것을 맹기용 자신도 선선히 받아들였다면 그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송 강행은 이미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맹기용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는 그를 두둔하는 셰프들의 이야기까지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번 오징어를 이용해 만든 소시지, 이른바 오시지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어 보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 대한 써니의 리액션이나 셰프들의 반응 하나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맹기용에 대한 불편한 시선 때문에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레시피 도용이라는 문제제기 역시 사실 <냉장고를 부탁해>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즉 이 프로그램은 <한식대첩>이 아니다. 경합 자체보다는 15분 만에 한정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보이는 일이 중요한 것. 어딘가 있는 레시피를 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터지는 건 맹기용에 대해 대중들이 갈수록 불편한 시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엄친아 이미지와 짧은 요리 기간에도 불구하고 쉽게 방송과 광고에 입성한 이미지는 이런 불편함을 더욱 크게 만든 요인들이다. 맹기용은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어찌 보면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대중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존재처럼 인식됐다는 점이다.

 

이건 캐스팅 논란에 가깝다. 그러니 방송을 통해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제작진 입장에서는 대중들의 이런 반응이 의외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을 볼 권리를 시청자가 가진 만큼, 시청자들을 보지 않을 권리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맹기용은 이런 시선 속에서는 열심히 하고 또 대결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진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콘텐츠로 승부해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그 어떤 쿡방과도 차별화된 콘텐츠가 이 프로그램을 주목시켰고 거기 출연한 셰프들 또한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만 갖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좋은 콘텐츠와 함께 필요한 건 소통능력이다. 소통의 부재는 작은 일도 크게 만든다. 우리가 메르스 사태를 통해 겪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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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참여의 용광로, <마리텔>의 인기 비결

 

기미작가에 이어 이젠 초딩작가다? ‘초딩작가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야유회 버전 방송 대결에서 새롭게 참여한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미녀 도우미로 쓴 막내작가의 캐릭터다. 이은결이 키가 초딩이라고 소개한 이 막내작가는 억지로 끌려나와 목을 몸과 분리된 것처럼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여줘 보는 이들을 폭소케 만들었다. 단 몇 초의 등장일 뿐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여느 출연자 못지않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이런 반응은 이미 백종원 셰프의 음식을 맛보는 인물로 등장했던 기미작가에게서도 발견됐던 일이다. 음식을 맛보고 그 놀라운 맛에 동공이 커지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 특유의 동작은 프로그램의 과장된 편집을 통해 캐릭터화 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날 야유회 버전 방송에서 백종원은 기미작가가 광고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기미작가와 초딩작가. 이밖에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극한직업 PD’로 불리는 PD의 존재감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예정화 코치와 기묘한 커플 요가 자세를 선보이고, 안 되는 굳은 몸을 억지로 펴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 PD극한직접 PD’라는 캐릭터로 자리했다. 다시 돌아온 예정화 코치가 이 PD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그 날 방송에서는 또 어떤 고통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분명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주인공들은 아니다. 단 몇 초 등장해 잠깐 맛을 보거나 보조를 해주는 역할을 할뿐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이들의 존재감은 웬만한 게스트들보다 더 주목받을까. 바로 여기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소통과 참여라는 보이지 않는 두 축의 힘이 열광의 진원지로 자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반응과 그 리액션이 가장 중요한 방송이다. 백종원이나 이은결, 예정화 같은 메인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방송 콘텐츠가 반이라면 그 콘텐츠를 보는 네티즌들의 리액션이 나머지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한 줄로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댓글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고 때로는 출연자들의 콘텐츠보다 더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정화 코치가 아이유의 좋은 날을 키를 낮춰 부르자 흐린 날’, ‘경상도 민요’, ‘고막아 미안해같은 댓글들이 따라붙는다. 워낙 노래를 못하자 카메라맨이 투입되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가 보여지자 붙는 카메라맨 재능낭비, ‘고막에 근육생김’, ‘첫 운동 고막 강화운동같은 댓글들은 방송 장면 위에 덧붙여지며 입체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야유회에 어울리는 음식을 물어보는 백종원에게 캠핑엔 역시 남의 살이라는 댓글이 붙고,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지적에 대해 백종원이 자가 붙은 건 다 설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설명하며, “매실에 넣으면 매실청. 포도에 녹이면 포도청(?)”이라고 하자 붙는 마음에 녹이면 심청...’이라는 댓글은 이 프로그램에서 댓글이 가진 웃음의 지분이 얼마나 큰 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댓글이 이렇게 방송 출연자들과 어우러지는 그 소통과 참여의 현장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가진 진짜 힘이다. 방송은 출연자들만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이제는 방송인들과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방송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기미작가나 초딩작가 그리고 극한직업 PD가 그렇게 짧은 순간 등장하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만드는 지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사실상 저 일반인들의 댓글 참여와 비슷한 차원으로 방송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미작가는 댓글의 리액션 같은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인물이고, 초딩작가는 댓글이 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그대로 해주는 인물이다. 또 극한직업 PD는 네티즌들이 가진 로망(?)과 따라잡기 힘든 고통을 동시에 대변해 보여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작게 시작한 듯 보여도 그 파괴력이 커진 것은 이처럼 출연자와 제작진의 소소한 접근처럼 보이는 작은 창들이 저 무한하게 열려진 소통과 참여의 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그램을 키우는 건 규모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은 그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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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도 하는 일을 왜 정부는 못하나

 

때로는 각각 떨어진 사안들이 하나의 문화적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요즘 들어 연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회자되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백종원, 다른 하나는 메르스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이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그 사이에 소통이라는 단어 하나를 집어넣으면 그 연결고리를 쉬 알아차릴 수 있다. 메르스 사태는 갈수록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초동대처가 좀 더 빨랐다면, 또 감염 병원에 대한 정보가 빨리 공개됐더라면 지금처럼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 유포를 막으려는 이유로 정기준(윤제문)은 미개한 백성들에게 한글은 혼동을 주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든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논리를 저 나치의 괴벨스에게서 가져왔다고 말한 바 있다. 정기준은 한글 같은 파괴력 있는 정보체계를 마치 전염병처럼 본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은밀히 저들끼리 해결하려다 오히려 세계 제1의 감염자를 낸 병원을 보면 여전히 정보의 소통에 대한 시대착오적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이 시기에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소통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저 쿡방 열풍에 기댄 셰프의 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가 하고 있는 쿡방은 그래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한 상징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 개인방송들의 대결은 콘텐츠 대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그건 콘텐츠가 아니라 소통의 대결이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보여주거나 밀고 나가면 시청자들을 우수수 빠져나간다. 결국 소통에 실패한 프로그램들은 폐쇄되고 만다.

 

백종원이 주목받게 된 것은 그가 애플보이라고 불리게 된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그의 쿡방을 보며 별의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트집을 잡아 사과하라고 한다. 이를테면 그냥 초장에 찍어먹는 건 정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고 초장에 사과하세요라는 댓글이 붙고, “믹서기가 영 시원찮다는 말에 믹서기 비하 발언이라고 사과하란다. 또 카메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고추를 꽂았다는 표현을 해 ‘19금 발언이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사과 요구에도 그는 선선히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플보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닉네임이다.

 

이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사과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갖고 있는가를 가늠해보면 백종원에 대한 그 무수한 사과 요구, 그럼에도 소통을 끊지 않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주고받음이 대중들에게 주었을 훈훈한 미소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있었나. 남 탓하기 바빴던 것은 아닌가.

 

백종원은 방송에서 종종 카메라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날리며 구수한 멘트로 직접 시청자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괜찮쥬?”하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살짝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짜 소통을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지금 백종원이 셰프 그 이상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소통에 실패하면 모든 걸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은 저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국가와 국민의 소통이랴. 국민들은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들어주고 반응해주며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습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건 백종원도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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