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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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너'의 끝에서 되새겨보는, 이 서사예능의 색다른 맛

D.H.Jung 2021. 1. 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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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너3', 서사예능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 가능했던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범인은 바로 너>가 시즌3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은 지난 2018년 시즌1이 공개된 후, 지금껏 달려온 대장정의 마무리다. 사실 이 대장정의 시작점은 SBS <런닝맨>이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끝에서 되새겨보면 <런닝맨>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범인은 바로 너>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이른바 '서사예능'이라는 색다른 지점이다. 

 

이번 시즌3의 부제는 '잠재적 범죄자 리스트'다. 그래서 매 회 각각의 사건들이 펼쳐지면서도 그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성을 갖고 있다. 법으로 심판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사건 배후의 조직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것은 시즌3 이야기의 구성이면서, 각각의 사건들이 갖는 구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넣어뒀던 간장게장이 사라지고 그걸 가져간 범인(?)을 찾는 소소한 사건을 추리해가다가 갑자기 한 인물이 살해되면서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커져나가고, 그 사건은 그 후 벌어진 비밀도박장에서 손목이 잘린 채 죽은 사체와 사택 옥상에서 굵어죽은 사체에게 벌어진 사건들과 다시 연결되면서 그것이 각각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식이다. 

 

물론 8회에 걸쳐 구성된 많은 사건들이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건 이 시리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좋은 방법도 아니다. 대신 매회 매 사건 속에 던져진 추리의 미션들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출연자들에 몰입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8회에 구성된 사건들을 보면, 물론 살인사건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액션이 가미된 부분도 있고, 공포나 미스터리, 멜로가 가미된 부분도 존재한다. 

 

이처럼 완벽한 유기적 연결이 이뤄지지 않는 건 <범인은 바로 너>가 보여주고 있는 리얼 예능의 캐릭터쇼와 드라마의 극적 요소의 연결 자체가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 예능이 신박한 건 캐릭터들이 들어가서 게임처럼 사건을 추리하고 풀어나가는 예능적 요소가 갖는 돌발적인 흐름과, 드라마가 하나의 메시지나 스토리를 제시하기 위해 그려나가는 인위적 상황을 연결해 놨다는 점이다. 

 

<범인은 바로 너>는 제작진이 전체 판을 그림으로써 던져놓은 드라마틱한 상황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출연자들이 들어가 경험하며 추리해나가면서 돌발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제작진이 완성된 어떤 흐름을 그려나가려는 방향과, 그 안에서 움직이며 그 흐름을 따라가거나 혹은 엇나가는 방향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8회에 걸쳐 각각의 사건들이 진행되고, 그것이 거대한 한 사건으로 귀결되는 제작진의 의도가 100% 구현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드라마틱한 상황은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팔이 잘리고 사체가 사라지는 연쇄 살인사건으로 등장하는 스릴러다. 이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닝맨>과는 다른 선택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즉 <런닝맨>은 초창기에 다양한 드라마틱한 장르들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했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통한 게임 예능화의 경향을 보인 바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보다는 예능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바로 너>는 예능적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추리적 재미에 예능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대신 드라마틱한 상황의 스토리를 구사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예능이 추구하는 이완적인 웃음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

 

<범인은 바로 너>는 그래서 <런닝맨>에서 시작했지만 캐릭터쇼의 웃음보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추구함으로써 '서사예능'이라는 색다른 지점에 도착하게 됐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예능도 매회 그저 웃음으로 휘발되는 어떤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흐름의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처럼 기억되는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런닝맨>식의 웃음을 기대한다면 어딘지 모자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예능도 하나의 서사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이야기와 추리의 재미에 빠져본다면 <범인은 바로 너>는 색다른 예능의 맛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 부분은 어쩌면 시즌3까지 뚝심 있게 걸어온 <범인은 바로 너>의 가치와 의미가 아닐 수 없다.(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