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혼', 섣부른 재결합 요구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건
이하늘의 집, 그것도 이하늘의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전 아내 박유선이 아침을 차리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들은 이혼했고 그래서 더 이상 부부가 아니지만, 마치 친구처럼 편해 보인다. 연애 시절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그 때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다지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모습이지만, 이들은 이혼한 부부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이들의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관찰하는 신동엽과 김원희는 이혼한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혹여나 '악순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박유선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이하늘은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고 한다. "너무 가까워지면 또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심지어 이하늘은 자신이 최근 쓴 노래의 가사에 '이별 노래'가 많은데 한창 힘들 때 쓴 노래라 가사가 세다며 걱정해도, 박유선은 "뭐가 어때"라고 쿨하게 받아준다. 이하늘은 그 힘들 때 쓴 가사라 "과대 포장한 거"라고 말한다. 박유선은 이하늘이 이혼하고 많이 변했다며 그것이 "이렇게 지내서" 변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은 알고 있다. 서로 무언가 맞지 않아 이혼을 했지만, 그 이혼을 통해 갖게 된 '적당한 거리두기'가 이들이 이제 편안히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이유라는 걸.
이혼은 이처럼 서로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하는 것만큼 선택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걸 이하늘과 박유선은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어쩌면 이건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이혼을 바라보는 마땅한 시선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의 엇나간 관계와 어쩌면 헤어진 이후에도 느껴지는 애틋함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MC들이나 제작진은 섣불리 재결합을 운운하지만, 그런 애틋함 또한 이혼이라는 '적당한 거리'에서 가능해진 거라는 걸 적어도 이하늘과 박유선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최고기와 유깻잎의 이야기가 프로그램 바깥에서도 시끌시끌했고,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시아버지, 장모까지 악플의 상처를 겪게 된 건, 이 프로그램이 유지했어야 할 적당한 거리가 지켜지지 않아서였다. 이혼한 후 생겨난 거리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선을 넘어 '재결합'까지 부추기는 분위기는 관계를 오히려 엇나가게 만든다. 어느 한 사람에 집중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이혼이라는 파경의 이유가 다른 사람 때문인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것이 방송에 나가는 상황은 그들의 관계를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진짜 리얼 상황을 담은 관찰카메라라고 이야기되지만, 사실 엄밀히 들여다보면 완전한 리얼이라 볼 수는 없다.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나 2박3일 간 같이 시간을 보내게 한다는 상황은 리얼일 수 없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설정이고, 거기서 보이는 영상들은 세간의 입에 오르면서 이들 관계에 개입하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혼한 부부가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일어나겠나.
그래서 중요한 건 프로그램이 출연한 이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이혼을 선택하게 된 걸 존중하는 일이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서로 좋은 감정을 갖게 될 수는 있지만, 그것과 재결합은 또 다른 문제 아닌가. 분명 어떤 문제가 있어 그것이 갈등이 되어 헤어졌던 이들이 다시 만나 함께 시간을 가지면서 소통하고 그래서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거기까지가 이 프로그램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 투입된 아이돌 박세혁과 김유민의 첫 등장을 보면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출연자들에 깊이 관여하는가를 잘 드러낸다. 즉 예고편에 들어간 사전 인터뷰에서 다소 센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걸 가감 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처가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박세혁의 이야기가 예고편에 나온 걸 본 김유민의 어머니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 모습은 방송에도 보였다.
김유민과 그의 부모가 함께 차를 타고 박세혁과 2박3일을 지낼 장소로 가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4자대면'의 폭풍전야를 예고하는 듯한 장면으로 연출됐다. 하지만 정작 도착해서는 김유민만 차에서 내려 들어가는 상황이었고, 예고편 때문에 만나자마자 싸울 것처럼 보였던 그들은 의외로 툭탁대며 대화를 해나가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김유민이 겪은 산후조리의 힘겨움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박세혁이 이혼의 빌미를 준 것처럼 보였지만, 박세혁 역시 그 시기 처가살이에서 느낀 소외감 같은 것들이 토로되면서 서로 각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이렇게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에 대한 서운함만 있던 이들이 대화를 통해 조금씩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해가는 과정은 <우리 이혼했어요>가 이혼이라는 소재를 과감히 가져와 보여주는 괜찮은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보인다. 결혼 3개월 후 별거하고 또 3개월 후 이혼에 이른 두 사람의 관계에 섣부른 개입이나 예단은 자극적일지는 몰라도 출연자들에게는 불편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으니. 결혼만큼 이혼도 당사자들에게는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존중해야 한다.(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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