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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조금씩 먹고 살고 있다"..낮은 데로 임한 '유퀴즈'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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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대동물수의사.. '유퀴즈'의 우직한 시선을 기대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소의 해를 맞아 이를 특집으로 꾸민다고 했을 때, 다소 뻔한 예상했던 게 사실이다. 소띠 출신 누군가가 나온다거나, 소와 관련된 인물들이 나올 거라는 것. 사실 이 특집에 등장한 이들은 모두 소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었다. 이를 테면 소띠 프로게이머 '무릎' 선수나, 큰 동물들을 치료해 매일 소를 접하는 대수의사 이한경 원장이나, 소몰이 창법의 SG워너비 김진호 같은 출연자들이 있었으니.

 

하지만 <유퀴즈>는 단순하게 카테고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소라는 동물이 가진 특성 중 '우직함'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초대했다. 즉 게임 철권 프로게이머 '무릎'이 초대된 건 소띠 프로게이머이기도 했지만, 그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현역으로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한 채 소처럼 우직하게 버텨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장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65회 우승을 했는데 100회 우승을 채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붓글씨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면서, '소처럼 우직하게' 서예의 길을 걷고 있는 이정화 서예가도 마찬가지였다. <해를 품은 달>, <미스터 션샤인>, <호텔 델루나>, <육룡이 나르샤> 같은 작품들의 붓글씨를 대필해온 이정화 서예가는 이제 겨우 31세. 하지만 7살 때부터 시작해 걸어온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의 붓글씨가 놀라운 건 그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들이 더해진 글씨를 쓴다는 것이고, 대필을 했던 것처럼 쓰는 연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캘리그라피에 가까운 글씨도 척척 써내는 이정화씨는 마치 그림 같은 붓글씨로 <유퀴즈>를 유재석과 조세호가 걷는 모습으로 써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날치 밴드의 유진과 함께 세계투어를 하며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도 했던 그는 프리랜서로서 수입이 많지 않아 "조금씩 먹고 살고 있다" 했다. 한 달에 20만원을 못 벌 때도 있다는 그는, 그런 어려움보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유지하고픈 '순수한 마음'이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작아지는 게 더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여러모로 사람들이 찾지 않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일이 '서예'지만, 그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그래도 끝을 놓지 않고 있으면 반드시 필요한 서예가로 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가장 기대되는 개그맨'으로 소개된 김민수와 김해준은 아마도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점점 사라져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 속에서도 유튜브 같은 새로운 길을 내며 끝까지 개그맨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에서 섭외됐을 게다. 그간 시상식 소감에서도 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계속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로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했던 유재석이었다. 그래서 그는 '소의 해' 특집에 개그맨 후배들을 초대해 그래도 우직하게 계속 그 길을 가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소진료를 28년 째 하고 있다는 대동물수의사 이한경씨가 섭외된 것도 단지 소를 주로 진료한다는 단순한 의미 때문은 아니었다. 소나 말 같은 대동물(큰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그는 소가 '산업동물'이다 보니 소의 가격보다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 경우 진료를 끝까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은 대동물수의사라는 직업이 반려동물 수의사와 달리 '큰 돈'이 드는 진료가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분야를 선택하는 이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할 그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가 이 특집에 섭외된 진짜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SG워너비의 김진호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소몰이 창법을 했기 때문에 섭외된 게 아니라, 그가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이 다른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재능기부에 가깝게 고3 졸업식이나 병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무료로 노래를 해주며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 "빈 주머니로 만나서 같이 무언가를 노래로 나누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스타가 되기 위한 가수의 길이 아니라, 노래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길. 그래서 그의 노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길거리로 나가지 못하고, 그래서 그 곳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유퀴즈>는 그래서 그 대안으로 특별한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섭외해 방송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은 아니어도 다소 유명한 이들, 성공한 이들이 섭외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에 대한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유퀴즈> 소의 해 특집이 보여준 것처럼, 저마다의 위치에서 심지어 그 직업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누군가는 그 일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우직하게 그 길을 가고 있는 그런 이들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유퀴즈> 역시 우직하게 이런 길을 가기를.(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