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결'의 황정음, '하이킥'의 황정음

황정음이 '지붕 뚫고 하이킥'에 처음 캐스팅 되었다고 했을 때 대중들은 그녀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그것은 실제 연인으로서 김용준과 출연하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에서의 그녀의 이미지가 그다지 호감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용준의 철없는 여자친구로, 툭하면 울음부터 터뜨리고, 아이처럼 떼쓰는 모습은 그녀를 민폐형 캐릭터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통장잔고 200원'은 웃음을 주기보다는 이러한 민폐형 캐릭터와 연결되면서, 또 '우리 결혼했어요'가 주창하는 소위 '리얼'과 연결되면서 황정음을 진짜 비호감 캐릭터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에 서운대 학생으로 등장한 황정음은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하이힐에 매혹되어 들어간 가게에서 개가 하이힐을 뜯어먹어 그 비용을 대신 치르게 되고 그것 때문에 과외를 하게 되는 황점음은 이 시트콤에서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어 이거 좀 다른 걸' 하고 느끼던 순간, 그녀는 '떡실신녀'로 홈런을 터뜨렸다. 술에 만취해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민폐형 캐릭터는 귀여운 자뻑 캐릭터로 순식간에 변신했다.

그녀가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꾼 것이, 시트콤이라는 조금은 과장된 코미디 연기를 통한 것이란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먼저 생각해야될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이 과연 진짜 리얼이라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은 진짜 리얼의 모습을 상당히 닮았지만, 완전한 진짜 리얼은 아니라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리얼에 쇼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캐릭터는 실제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과장되고 증폭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결혼했어요'에서의 황정음은 상당히 빗나간 부분을 캐릭터로 증폭시킨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대중들이 바라는 점이 실제로는 리얼이 아니라 알콩달콩한 관계가 보여주는 판타지에 있었다는 것을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간과한 데 있다. 똑같은 실제 영상을 가지고도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그 안의 인물들은 전혀 다른 캐릭터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수근이 앞잡이 캐릭터라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는 초기 황정음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과는 부합하지 않는 캐릭터를 증폭해 보여준 셈이 되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지만 이렇게 초창기 모습으로 박힌 '민폐형' 이미지는 좀체 바뀌지 않았다.

이 이미지를 깨버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시트콤이라는 리얼과는 거리가 먼 장르에서다. 리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시트콤에서의 망가진 그녀의 모습을 통해 실제 연기자로서의 황정음의 이미지까지 바뀌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단순하게도 시트콤에서의 그녀가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웃음을 요구하는 시트콤에서 그녀는 아낌없이 망가져 주었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호감이 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리얼이 대세가 되어가는 현 시대에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캐릭터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캐릭터는 아무리 그 형식이 리얼이라고 해도 여전히 대중들이 기대하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리얼 형식의 쇼의 출연자들이 대중이 기대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쇼의 제작자들이 그 출연자가 가진 캐릭터에서 대중들이 요구하는 점을 뽑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결혼했어요'의 제작진은 대중들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했고.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제작진은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은 아니지만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 황정음은 시트콤이 요구되는 웃음 주는 캐릭터를 연기해냈고, 이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호감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박찬호는 아직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힘든 길을 홀로 걸어왔던 걸까.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 리거. 코리안 특급. 아예 이름보다는 코리안이라고 불렸던 사나이, 박찬호. IMF로 고개를 떨군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또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그 강속구를 던지던 손이 이제 딸 애린이의 앙증맞은 발을 씻긴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최고의 시간들과 최악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다시 도전을 하고, 그것으로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용기를 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들, 잘 웃는 아내와 아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96년 IMF 시절, 박찬호는 메이저 리그의 거구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5년간 84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계약. 박찬호에게는 최고의 시절들이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의 연속으로 트레이드를 거쳐 결국 마이너리그까지 내려간 그는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라가는 것만 배웠지 내려오는 걸 배우지 못한 박찬호에게 그것은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인표가 술회하는 것처럼 박찬호는 그 시간 속에서도 은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메이저 리그 마운드에 섰다. 과거의 영광은 아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박찬호. 'MBC스페셜-박찬호 편'이 보여준 것은 젊은 시절 박찬호라는 이름이 아니라 코리안이 되었던 박찬호가,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 코리안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한 달에 한 통 정도씩 날아오는 고국에서의 팬레터에 기분이 좋아지고, 집으로 찾아오는 지인들에게는 한국음식을 대접하며 한국에 대해 알려주는 그는 바로 그 한국이 던진 질타와 비난으로 죽고 싶은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잘 할 때는 잘 해주던 그 한국이 잘 안될 때는 마치 사라져줬으면 하는 것에 그는 화가 날 법도 했다. 그런 그였지만 그는 늘 한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한결같은 팬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의 라커룸 서랍 안에 놓여진 작은 태극기처럼, 그는 드러내진 못해도 늘 마음 속에 한국을 담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본선도 아닌 예선에 오키나와까지 날아왔다. 사실 뛸 필요도 없는 그런 경기였다. 그는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마지막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 1월, 185센티, 95킬로그램의 거구인 그는 눈물을 흘렸다. 국가대표 은퇴. 그것은 아쉬움과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짊어지게 된 한국이란 이름의 거대한 멍에가 그를 영광스럽게도 했고, 힘겹게도 했을 테니까.

박찬호의 성공과 추락과 재기는 마치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거의 비슷한 곡선을 그려온 박찬호와 우리나라는 그래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IMF 시절, 처음 박찬호가 당당히 메이저 리그의 마운드에 섰을 때 우리는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박찬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응원가이기도 했다. 그가 추락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박찬호를 더 이상 응원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MBC스페셜',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편이 보여준 것은 이 어려운 시기에 또 우리를 응원해주는 박찬호의 모습이었다.

다큐 속의 명사, 예능 속의 명사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명사와 사랑에 빠졌다? 명사(名士).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 스포츠 스타들 같은 이름난 유명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물론 예술가들 같은 유명인들은 다큐멘터리에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는 그 명사의 대열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연예인들의 출연보다는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의 출연이 대중들의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MBC 스페셜'은 일찍부터 대중적인 스타들의 일상적인 얼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스타 이영애는 물론이고 여자 역도선수 장미란, 배우 김명민,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그리고 이번 주에 조명될 박찬호까지 'MBC 스페셜'은 명사 다큐라는 한 형식을 구축해낸 셈이 되었다. 물론 처음 다큐멘터리가 스타를 다루는 것은 낯설었다. 따라서 그런 시도가 단지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명사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면면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는 김명민이라는 한 배우의 조명을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존재의 문제까지도 포착해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는 제목대로 우리가 몰랐던 인간 박지성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 방영될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에서는 우리네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그가 슬럼프일 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는 박찬호의 모습을 통해, IMF시절에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스포츠인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끝없는 슬럼프 끝에 이제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의 끈질긴 노력은 마치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듯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이른바 명사다큐의 경향은 'MBC 스페셜'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다큐멘터리의 한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히트곡의 비밀코드'를 다룬 'SBS 스페셜'에는 국내의 작곡가들, 중견가수,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해 일련의 히트곡에 존재하는 특별한 요소들을 이야기했다. 아이템 자체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유명 스타들이 늘 보여지던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조명된다는 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 방영되는 '매력 DNA,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매력 DNA라는 명제 하에 히딩크나 인순이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이 가진 매력의 요인을 포착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보다는 예술가나 스포츠 스타를 게스트로 출연시킴으로써 더 큰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출연해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중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것은 토크쇼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발레리나 강수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소설가 황석영, 이외수 등등 '무릎팍 도사'가 초빙한 명사들은, '무릎팍 도사'가 펼쳐놓은 한바탕 신명나는 토크의 굿판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이것은 '1박2일'에서 박찬호와의 하룻밤을 통해 얻어냈던 공감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연예인이 아닌 명사를 섭외하기 시작한 이유는 연예인에 집중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흔히 '저들끼리 노는 걸 우리가 왜 봐야 하느냐'는 한탄조의 말들은, 프로그램이 대중들과 나누려고 하는 어떤 공감이 이제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때 가능한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탈신비주의화 되고 있는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명사들 역시 어떤 친근함을 통해 대중들과 더 소통하려 하는 욕구가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명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명사 출연이 그 엄격한 형식에서 좀 더 대중적인 것을 향해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의 명사 출연은 지나치게 낮아져 있는 형식에 어떤 격을 더하고 게스트의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하나는 내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올리려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재의 프로그램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중간지점을 향해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장르만을 들어서 어느 것이 격이 높고 어느 것이 낮다고 인식하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따라서 그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본연의 형식이 갖는 본질적인 틀은 깨서는 곤란하겠지만, 대중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한 퓨전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와 예능 속으로 들어오는 명사들은 그 변화의 징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들의 영역파괴, 더 이상 성역은 없다

KBS '생방송 뮤직뱅크'의 한 풍경. '인디언 보이'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부르는 MC몽과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몇몇 아이돌들 사이로 이색적인 얼굴이 보인다. 본래부터 가수를 꿈꾸다가 개그맨이 되었고, 그 관성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고음불가'나 '야야야 브라더스' 같은 음악 개그를 선보였던 개그맨. '1박2일'의 앞잡이, 이수근이다. 그는 새로 낸 싱글앨범 '해피송'의 타이틀곡 해피송을 불렀다. 잠시 후, 가요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어려운 또 한 명의 얼굴이 무대에 올랐다. '주몽', '이산'에서 특유의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견미리. 그녀는 1집 '행복한 여자'를 내고 가수 데뷔를 했다. 음악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개그맨과 연기자. 그 풍경은 이색적이지만 이미 더 이상 이상한 풍경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맨과 가수, 그리고 연기자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봐왔다. 거기에서는 개그맨 이수근과 함께 MC몽이 형 동생 해가며 1박2일간 포복절도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생방송 뮤직뱅크'에서의 MC몽과 이수근이 같은 프로그램에 서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할 수밖에. 그런데 '1박2일'에서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인물 중에는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와 가슴 떨리는 멜로를 보여주었던 이승기도 있다. 가수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승기는 작금의 연예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영역 파괴(?)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인물이다.

드라마를 보면 이제 가수들의 주연급 캐스팅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 '태양을 삼켜라'의 성유리, '혼'의 이진은 아예 가수활동에서 연기활동으로 선회했고, '드림'의 손담비, '혼'의 티아라 지연, 또 앞으로 방영될 '맨땅의 헤딩'의 유노윤호는 가수이면서 연기에 도전하는 인물들이다. 한편 개그맨들의 드라마 출연도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뛰어난 감초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류담, '스타일'에서 에디터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개그맨 한승훈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연예인들이 자기 영역을 넘어서 타 분야까지 넘나드는 퓨전 경향은, 연예인 당사자들과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연예인 입장에서 보면 과거 이미지는 겹치지 않아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신비주의가 지나간 리얼리티 세상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수정되었다. 연예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즉 다양한 얼굴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연기든 노래든 개그든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박예진이 정극에서 멜로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패밀리가 떴다’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솔직한 모습이 되었다.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호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한편 제작진들은 영역 바깥의 인물들이 갖고 있는 인지도와, 새로운 영역 속에 들어왔을 때의 신선함을 주목했다. 개그맨이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당연한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가수나 배우가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새로운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영역 속에서 그 영역에 익숙해진 이들은 리얼이 대세인 현재의 쇼 속에서 자칫 인위적인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그 분야의 프로보다는 타 영역에서의 프로(따라서 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가 되는)가 오히려 각광받는 상황은 연예인들의 영역 파괴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영역파괴의 경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가는 특정 연예인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은, 이제 새롭게 진입하려는 신진 연예인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타 분야까지도 영역이 넓어지지만, 이것은 결국 몇몇 연예인들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드라마에서 젊은 배우들의 입지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데, 그것의 한 원인은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 ‘무한도전’의 ‘강변북로 가요제’ 앨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가수로서의 성공이 음악적인 성취보다 이러한 이벤트적인 요소에 좌지우지된다는 허탈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영역파괴의 경향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예 연예 생태계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앞으로 연예인은 말 그대로의 ‘탤런트(talent :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함)’의 의미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라진 생태계는 벌써부터 거기에 맞는 탤런트들을 포진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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