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의 ‘로이액추얼리’, 스토리텔러다운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들

로이 액추얼리

로이킴은 어딘가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달달하지만 때론 격정을 향해 쏟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늘 힘겨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추운 겨울, 더더욱 한기가 느껴지는 마음에 로이킴의 노래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먼저 귀를 호강시키지만, 거기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울려퍼지는 요동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노래와 더불어 따뜻함이 묻어나는 가삿말이 주는 힘이기도 하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로이킴의 단독콘서트 ‘로이 액추얼리(Roy actually)’는 ‘사랑’을 테마로 삼았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오마주한 ‘로이 액추얼리’는 최근 그가 신곡을 발표한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이라는 곡에서 연결된 서사로 관통되는 무대였다. 

 

콘서트는 로이킴이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다가가 사랑에 대해 물어 담아낸 인터뷰 영상으로부터 시작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눔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물론이고, 절절한 연인의 사랑까지 담아낸 그 영상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가 그려냈던 다양한 사랑의 양태들이 이 콘서트를 통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대는 로이킴이 그간 얼마나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았는가를 증명하는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여의도에서 보게 된 잘 차려입고 캠코더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상상해 썼다는 ‘할아버지와 카메라’가 노년 부부의 사랑을 담았다면, 어릴 적 추억을 그리며 썼다는 ‘어른으로’는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라고 어른이 되어 말하게 됐다는 화자의 가삿말이 절절한 공감을 담았다. 또 세상을 떠난 반려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홈(Home)’에서는 ‘웃으며 마중을 나가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선물’이라는 가사가 지친 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기에 충분했다. 

 

로이킴은 ‘로이 액추얼리’라는 오마주에 걸맞게 자평 ‘최초의 라이브 뮤직 드라마’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화면 가득 영화 같은 장면들과 내레이션이 얹어지고 그 스토리에 마치 OST처럼 ‘그때 헤어지면 돼’, ‘우리 그만 하자’, ‘그때로 돌아가’, ‘잘 지내자, 우리’를 연달아 부르는 독특한 무대가 펼쳐졌다. 로이킴의 노래에도 특징적인 스토리텔링을 극대화한 완성도 높은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로이킴은 공연 장인이라는 평에 걸맞는 무대 센스와 소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애인과 밀당이라도 하듯 나누는 관객들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깜짝 선보이기도 했고, 모두가 기립해 답답한 현실을 한방에 날리는 흥겨운 시간들 또한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는 자신의 절친이 했던 짝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미발매곡 ‘그대의 두 눈을 보고 말하고 싶어요’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짝사랑의 애절함이 스토리와 어우러져 관객들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로이킴이 ‘로이 액추얼리’에 담아낸 건 세상에 대한 대단한 메시지 같은 그런 건 아니었다. 그가 담으려 한 건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연인의 사랑을 넘어서 사람으로서의 인간애 같은 것들 또한 포함하는 것이란 점에서 답답하고 ‘정신없는’ 요즘 같은 시절에 소박하지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해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유독 추운 겨울, 따뜻함 또한 커진 시간이었다.(사진:웨이크원)

겨울에 특히 잘 어울리는 하현상, 따뜻한 슬픔 ‘Elegy’

하현상 콘서트 'Elegy'

“나이 먹을수록 더 당당하고 앞에 나서야 하고 이래야 되는데 저는 더 숨기만 했던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자주 보실 수 있게 얼굴 많이 바추겠습니다. 숨어 있는 가수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현상 콘서트 ‘Elegy’에서 하현상은 관객들에게 수줍게 그렇게 말했다. 숨어 있는 가수, 하현상.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지만 관객들은 어쩌면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때면 소년미 가득한 어색함이 묻어나고, 그래서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이는 하현상이어서 오히려 팬들의 마음은 더 애틋해지고 촉촉해지니 말이다. 

 

그 숨기를 나서기보다 좋아하는 가수 하현상이 연말 콘서트 ‘Elegy’로 관객들 앞에 섰다. 뒤에서 비추는 조명에 그림자 같은 음영으로 무대에 선 하현상은 특유의 읖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연주하는 기타에 맞춰 노래한다. 그 조용하게 시작하는 목소리에 관객들도 조금씩 빠져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뒤쪽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서 오케스트라가 내는 스트링 사운드와 비트감을 얹어주는 밴드 사운드가 웅장하게 겹쳐진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조용한 감정들이 하나하나 끌어내지고 모아지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뭉쳐 하늘 위로 붕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Elegy’ 콘서트의 첫 오프닝 곡으로 부른 신곡 ‘비행’이 그렇다. 

 

‘비가’라는 뜻을 가진 ‘Elegy’라는 제목처럼,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은 이별, 슬픔 같은 정조들을 담았다. ‘비행’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처음 만난 그 때로 날아가는 마음으로 표현했다면,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향기’ 역시 이별의 아픔을 사라져가는 향기에 빗대 노래했다. 또 ‘계절비’가 어느 비 내리는 날 스쳐가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사랑이 떠나버렸다는 걸 알게 된 비감을 담았다면, ‘나도 모르게’는 떠난 이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이야기했다. 

 

콘서트는 이 신곡들과 더불어 지금껏 사랑받았던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올렸다. ‘Laputa’, ‘불꽃놀이’, ‘사랑이라고 말해줘’, ‘데려가줘’, ‘등대’, ‘집에 가는 길’, ‘파도’, ‘어떤 이의 편지’ 등등. 싱어 송 라이터라는 지칭에 걸맞게 본격적인 활동을 한 지 5년여만에 놀랍게도 이토록 많은 명곡들이 채워져 있다는 게 콘서트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본인 스스로 숨어 있는 가수라 표현한 것처럼 방송활동보다는 음악활동에 전념해 온 결과다. 

 

그런데 이번 앨범명이자 콘서트의 제목인 ‘Elegy’가 담고 있는 슬픔의 정조는 침잠하는 그런 슬픔이 아니다. 그건 슬픔을 켜켜이 쌓아 올려 찾아낸 기쁨이라고 해야할까. 아픔이 살아있다는 증명이듯이, 슬픔은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걸 하현상은 이 앨범과 콘서트에 담았다. 처연하게 시작하던 노래가 점점 그 감정이 고조되고 하늘 위로 떠오르다가 차분히 갈무리되는 듯한 그 일련의 과정들이 그렇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밴드 사운드가 좌청룡 우백호처럼 하현상의 기타와 피아노 솔로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며 곡을 고조시키는 모습은 이 외롭고 슬픈 자아를 혼자가 아니라며 껴안아주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아티스트와 팬은 닮기 마련일까. 극 ‘I’가 아닐까 생각되는 건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다. 곡이 끝나고 나면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지지만,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조용 조용히 경청하는 관객들이다. 수줍은 하현상의 말 몇 마디에 역시 수줍게 관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물론 간간히 “하현상 넌 내 거야!”라고 외치는 관객의 목소리가 폭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이 콘서트는 차분하다. 흔히들 뜨거운 열기가 콘서트의 묘미라 여길지 모르지만, 다소 내향적인 이들에게는 따뜻함이 뜨거움보다 나을 때가 있다.

 

“제 노래를 들으시는 분들은 혼자 마음 속으로 우셨던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현상의 그 말처럼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감성으로 가득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콘서트였다. 그래서 조용히 감정을 꺼내놓고, 공감하고, 나아가 그 감정들을 폭발하듯 고조시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콘서트. 하현상의 말대로 ‘겨울에 더 어울리는’ 그의 노래는 30일과 12월1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시작으로 25일 부산, 28일 대구에서도 이어진다. (사진:웨이크원)

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에서 발견한 로이킴의 진심

로이 노트

“화려한 불빛들 그리고 바쁜 일상들 뒤에 숨겨진 초라한 너의 뒷모습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너의 무거운 어깨를 위해/ 너의 발걸음이 들릴 때 웃으며 마중을 나가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선물이었지-” 로이킴이 ‘Home’을 부를 때 그 가사 한 줄 한 줄이 스크린에 판서처럼 써진다.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에서 가슴까지 소리의 통로를 내며 들려오고, 가사가 머릿 속에 그림 같은 풍경들을 끄집어내자 그 공명에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먹먹해진다. 음률도 음률이지만, 스토리가 그려지는 가사와 어우러지는 무대가 주는 애틋함이라니. 2023 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의 한 풍경이다. 

 

‘로이 노트’ 왜 콘서트의 콘셉트를 노트로 가져왔을까 싶지만, 로이킴과 노트는 잘 어울린다. 로이킴을 말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싱어 송 라이터’이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그가 직접 쓴 가사와 어우러져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Home’을 부르기 전, 그 곡에 대해 로이킴이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반려견 싼쵸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소개해준 이야기는 그 가사들을 하나하나 더 곱씹게 만든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그래서 지친 나를 기다려주는 집과 하염없이 보호자를 기다리는 반려견의 그림을 겹쳐 놓는다. 

 

노트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처럼 로이킴의 노래는 디지털화되어 더 빨리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매력이 있다. ‘Love Love Love’나 ‘봄봄봄’ 같은 컨츄리와 포크풍의 단순하지만 흥겨운 리듬에 맞춰진 곡은 저 클럽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정경을 떠올리게 만들고, ‘북두칠성’ 같은 오케스트라가 어울리는 곡을 듣다보면 어두운 밤길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쏟아지는 별이 보이는 듯하다. 

 

살갗에서 울려대고 눈과 귀를 한없이 자극하는 노래들 속에서 한껏 피로해지고 때론 방어적인 우리를 발견하게 될 때, 로이킴의 노래는 쌩쌩 부는 바람이 아닌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살처럼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놓는다. 고음을 애써 진성으로 불러 자신의 목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가성으로 불러 바깥의 빈 공간들로 나머지를 넉넉히 채워주는 특유의 창법은 실크 같은 부드러움으로 아무런 저항감없이 심장까지 파고든다. 

 

견디는 세상이다. 버텨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이른바 ‘존버’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견디고 버티는 힘은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타격감 제로’로 만드는 거라는 걸 로이킴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똑같이 힘든 그 삶들을 꺼내놓고 함께 공감하면서 때론 ‘얼마나 아팠니’ 하고 묻고 그럼에도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해준다. 

 

아티스트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그 세상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내놓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세상에 영향을 미쳐 작더라도 세상을 바꿔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로이 노트’ 콘서트 커튼콜 엔딩 곡에서 최근 앨범 ‘그리고’의 타이틀곡인 ‘괜찮을거야’가 남긴 여운은 깊고도 길었다. ‘괜찮을거야’라는 가사를 거의 50번은 넘게 반복해서 외치는 로이킴의 외침은 마치 주문처럼 콘서트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그건 힘든 현실을 잘 버텨낸 우리들에게 로이킴이 건네는 위로면서, 또 잘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토닥이는 다짐 같은 것이었으니.(사진:웨이크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