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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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이 다큐에 열광한 까닭

D.H.Jung 2012. 9. 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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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피쉬>,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맛

 

새롭게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이 동시에 시작했던 지난 8월18일,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주말극의 동시출격으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이 날 이 두 드라마는 <슈퍼피쉬>라는 다큐멘터리에 무릎을 꿇었다. 시청률 13.8%. 같은 시간대의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은 11%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그 후에는 자극으로 무장한 주말극이 이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을 앞질렀지만, 그래도 12%대의 고른 시청률을 유지한 <슈퍼피쉬>의 저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슈퍼피쉬'(사진출처:KBS)

<슈퍼피쉬>의 그 놀라운 저력은 그림 같은 압도적인 영상과 그 속에 담겨진 흥미로운 내용이 잘 어우러진 결과다. 거친 목탄으로 그려진 그림에서 시작해 서서히 영상으로 바뀌는 오프닝은 <슈퍼피쉬>의 영상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크기의 참치가 펄떡 펄떡 뛰고, 고대 로마시절부터 전해져온 참치 잡이 방식인 마탄차(학살이란 뜻이다)는 바다를 피와 희뿌연 정액으로 물들인다. 말리의 안토고 호수에서는 1년에 딱 한 번 허락된 고기잡이를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호수로 뛰어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라오스 곤파펭에서는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듯한 급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 물고기 잡이가 벌어지고, 중국에서는 삼키지 못하게 목줄을 감은 가마우지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를 보여준다. 이 모든 장면들은 고속 카메라에 담겨 펄떡임 하나, 튀는 물방울 하나까지 세세하게 담겨진다. 육안으로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다큐 안에 그득 채워지는 것은 고속 카메라, 헬리 캠 같은 인간의 시각을 넘어서는 카메라 영상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슈퍼피쉬>에 빠져들게 한 것은 이런 시각적인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니다. 물고기의 생태가 아닌 물고기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시간적으로는 태곳적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전 지구 곳곳까지 파고 들어가 살펴보는 이 다큐의 지적인 호기심은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이 다큐는 사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물고기를 잡아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문명의 발달과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고, 쉬 상하기 마련인 물고기를 오래도록 저장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며, 물고기가 종교와 만나 어떻게 세계사를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실로 지구와 인간의 역사는 물고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 다큐의 증언이다.

 

<슈퍼피쉬>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시선이다. 지중해에서 북유럽, 아프리카, 중국, 라오스, 호주 등등 거의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 다큐는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고기와 인간의 공존을 마치 옆 동네 일처럼 담담히 펼쳐 보여준다. 바로 이런 시선은 굳이 지구촌 운운하지 않아도 우리 인류가 국가와 민족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동질성을 드러내준다. 물고기를 주제로 하지만 거기서 보편적인 인류사의 중요한 자산인 쌀, 소금, 종교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얼마 만에 맛보는 다큐의 맛인가. KBS의 <차마고도>, <누들로드>나 MBC의 <남극의 눈물> 같은 눈물 시리즈 다큐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전율이다. 주말 저녁 비슷비슷한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닫는 주말극에 지친 이들에게 그래서 <슈퍼피쉬>는 편안하고도 놀라운 지적인 여행을 떠나게 해주었다. 일상화된 영상의 시대, 일상적인 다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럴수록 제대로 된 다큐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 <슈퍼피쉬>는 오랜 만에 그 다큐의 갈증을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