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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공항 가는 길', 김하늘의 감성멜로 가을에는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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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아 좋다, <공항 가는 길>의 감성멜로

 

오랜만에 보는 정통 감성멜로다. 아주 천천히 전개되는 것 같지만 감성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어찌할 도리 없이 넘쳐 흘러내리는 그런 감정의 경험. KBS 새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멜로는 지금껏 드라마들이 첫 회에 폭풍전개를 쏟아 붓는 그런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터트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젖어간다고 할까.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첫 회 최수아(김하늘)와 말레이시아에 딸 효은(김환희)을 유학 보내며 딸의 룸메이트인 애니의 아빠인 서도우(이상윤)와 얽히는 과정은 그래서 조금은 느슨한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딸들을 해외에 두게 된 부모로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최수아와 서도우가 인연을 갖게 된다는 점은 신선했다.

 

최수아가 노트북으로 화상통화를 할 때, 효은의 노트북에 비춰진 반대편 책상 애니의 노트북을 통해 서도우가 고국을 그리워하는 딸을 위해 한국의 갖가지 풍경들을 담아주는 장면을 보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각각 다른 공간에 놓여 있지만 부모에서 딸들로 또 그 딸들을 위하는 부모들끼리의 마음이 오가는 것이 그 장면에 한꺼번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집을 찾았다가 해외에 딸을 보내고 자신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최수아에게 서도우가 전화를 걸어 딸들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는 장면도 두 사람의 관계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조금씩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사실 최근 드라마들을 보면 마치 조급증에나 걸린 것처럼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첫 회의 기세가 드라마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맥락 없이 남녀가 우연히 만나 그 해프닝이 첫 회에 일찌감치 사랑으로 발전하는 드라마들은 너무 성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마치 이미 정해진 짝짓기 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공항 가는 길>은 그런 점에서 보면 차근차근 진행되어 무리함이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이 이 드라마가 밋밋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첫 회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애니가 절망하고 그러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서도우와 그가 애니의 아빠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스튜어디스 최수아는 그래서 드디어 미묘한 관계의 선을 넘기 시작한다.

 

해외에 딸을 보낸 부모의 공감대가 딸을 잃은 아빠, 그것도 그 딸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던 아빠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물론 서도우도 최수아도 모두 결혼한 기혼남녀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서도우는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며 딸을 거기 묻어달라고 말하는 아내 김혜원(장희진)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한다. 최수아는 기장인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사내 연애로 결혼했지만 직업적 특성상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아예 모른 척 지나치기 일쑤. 서도우와 최수아의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관계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멜로의 틀을 보이는 것 같지만 <공항 가는 길>은 그 접근 방식이나 인물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해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미 결혼한 사이에서 갖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들이 그저 불륜의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일상에 던져진 파문이나 삶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운명적인 경험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가을에, 무엇보다 김하늘이라는 배우와 정말 잘 어울리는 감성 멜로다. 물론 그 감성이 어느 정도의 선까지 나갈 것인가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잔잔한 바다 밑으로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조류들이 뒤엉키듯 그 감정들이 점점이 묻어나는 <공항 가는 길>의 감성 멜로는 의외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그것이 어떻게 치유되는가에 대한 과정으로 이 감성 멜로가 그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